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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시간으로 만드는 좋은 책 레시피

박은경 박은경의파워독서 원장이 말하는 ‘좋은 책’ 고르는 법



《‘책 읽기’의 중요성은 두 말하면 입이 아프다. 고입·대입에서 ‘독서활동’이 면접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대가 독서를 가리키고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가 요구하는 창의 융·복합 인재는 독서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깊이 있는 해석과 통찰, 그리고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적 사고는 독서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육현장도 이에 공감한다. 실제로 올해부터 도입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한 학기 한 권 읽기’ 등이 주요 정책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의 독서실태는 정반대의 행보를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고교생은 연간 평균 8.8권, 중학생은 18.5권의 책을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달에 겨우 1~2권의 책을 읽는 셈이다. 이는 ‘책을 읽어야 한다’고는 말하지만 ‘책을 왜 읽어야하고, 어떻게 읽고, 읽으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는 설명해주지 않는 상황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에 본 기획에서는 박은경 파워독서 원장의 도움을 받아 △독서를 왜 해야 하는지 △좋은 책이란 무엇인지 △책은 어떻게 읽어야하는지를 살펴본다. 가장 먼저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들어봤다.》

누군가 나에게 과거의 인물 중 만나고 싶은 이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조선의 소문난 책벌레 이덕무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그를 만난 건 안소영의 <책만 보는 바보>에서였다. 서자였던 이덕무는 물려받을 재산도 없었고 벼슬길에도 오르지 못할 처지였다. 그는 굶주림과 추위, 식구들 입에 밥알을 넣어주지 못하는 가장으로서의 삶의 무게를 책을 읽는 것으로 이겨낸 사람이다. 
 
이덕무는 부모님을 비롯하여 어린 동생과 자식들의 퀭한 눈을 보며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어 아끼고 아끼던 <맹자> 한 질을 팔아 돈 이백 전을 받았다. 책을 팔아 받은 돈으로 쌀을 산 날, 아리고 쓰린 마음을 달래려고 친구 유득공을 찾아간다. 유득공은 그의 딱한 사정을 듣더니 <좌씨춘추>를 팔아 술을 사오게 한다. 그리고는 책 잘 읽은 덕에 맹자에게 밥을 얻어먹고, 좌씨에게 술 한 잔을 얻어먹었다며 두 사람은 껄껄 웃는다. 

가난한 선비였던 이덕무가 책을 몇 권이나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쌀을 사기 위해 팔아야 할 책을 고르려고 책이 꽂힌 서가 앞에서 얼마나 서성였을까?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해서는 헌책방에 내 놓아도 잘 팔릴만한 책을 골라야겠지만 그렇다고 아끼는 책을 내놓자니 가난한 형편에 그 책을 다시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아마도 오랫동안 고민했을 것이다. 자신의 손때 묻은 책에 대한 애착으로 쉽게 팔아버릴 수 없어서 여러 권의 책을 들었다 놓았다 했을 그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책을 팔아야 하는 그도, 그의 책을 살 또 다른 이도 만족할 만한 ‘좋은 책’이어야 함을 얼마나 고민했을까 생각하면 내 마음도 덩달아 아파진다. 내가 이렇게 그의 마음을 잘 아는 건 나도 돈이 필요해서 이덕무처럼 책을 팔아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2011년 5월 26일, 나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온라인 서점에 내가 가지고 있던 책 중 377권을 팔아 84만9040원을 받았다. 나는 그 때 남편의 사업이 점점 힘들어져 단 돈 만원이 아쉬운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책을 팔아서라도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서 팔아야 할 책을 골랐는데 정말 쉽지 않았다. 그래서 좋은 책이란 무엇일까를 다른 사람과는 좀 색다른 방법으로 체득했다. 좋은 책이란 무엇일까? 사람의 얼굴 모양이 다르듯 좋은 책의 기준은 사람마다 모두 다를 것이므로 어찌 보면 ‘좋은 책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대답해야 한다면 나는 첫 번째로 ‘소중한 기억을 담고 있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들이 좋아하던 마르쿠스 피스터의 <무지개 물고기>와 토미 웅게러의 <크릭터>, 딸이 좋아하던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의 <잘 자요 달님>, 야시마 타로의 <까마귀 소년>은 책장을 열면 금방이라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스프링처럼 튀어나올 것만 같은 타임머신이다. 그래서 나는 그 책들을 팔지 못했다. 

특히나 <잘 자요 달님>은 딸아이가 잠자리에 들 때마다 읽어주던 책이다. 그러면 아이는 방안의 모든 사물들에게 차례로 “잘 자요, 베개. 잘 자요, 커튼. 잘 자요, 유리창. ....... 잘 자요, 내 머리카락. 잘 자요 엄마의 눈썹. ..... 잘 자요, 구름.....”이라고 잠자리 인사를 끝도 없이 반복하며 나와 정신적 스킨십을 하던 고마운 책이다. 그러니 그 책이야말로 좋은 책이다. 다시 말하면 처음부터 좋은 책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책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느냐 혹은 그 책으로 무엇을 경험했느냐에 따라 ‘좋은 책이 되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번째로 좋은 책이란 ‘편견을 깨뜨릴 수 있게 하는 책’이다. 글의 양이나 책의 두께로 판단하지 말고 그 책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어떤 부모들은 그림책을 저학년이나 유아들의 전유물로 여기는 탓에 고학년 수업에 넣으면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책은 ‘어린이도 읽는 책’이지 ‘어린이만 읽는 책’이 아님을 모니카 페트의 <행복한 청소부>를 읽으면 이내 알 수 있다. <행복한 청소부>는 행복의 기준이 타인의 시선에 고정되어 있는지 내 안에 있는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의 내가 작고 초라해도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오늘 하루를 잘 살아갈 수 있다면 내일의 나를 만나는데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는 힘을 지닐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나는 이 책도 팔 수 없었다. 

글 밥이 길기 때문에 어렵거나 수준 높은 책이고, 글 밥이 적기 때문에 쉽거나 수준이 낮은 책이라고 여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글자 수로 훌륭한 책인지 아닌지를 결정한다면 소설은 훌륭하고 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일까? 한 가지 예로 함복민 시인은 그의 시 <가을>을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라고 군더더기 없이 단 한 줄로 썼다. 하지만 이 시는 단 한 줄에 매우 많은 것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산문보다도 힘이 강하다. 그러니 글의 길이로 그 책이 전달하는 메시지의 경중을 따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 좋은 책의 기준이 될 만 한 것은 ‘내가 즐거운 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처럼 호불호가 나뉘는 것도 거의 없으리라. 똑같은 책인데도 어떤 사람은 재미있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때가 있다. 관심사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이순원의 <아들과 함께 걷는 길>과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을 재미있게 읽었다. 삶을 꾸려가면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들을 담담히 말하고 있는 좋은 책이라서 나는 이 책도 팔지 못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 책을 재미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아무리 좋은 명작이라고 하더라도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 책을 읽기가 어렵기 때문에 처음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부터 책을 읽기 시작하여 점점 영역을 넓히는 게 좋을 것이다.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많다. 나의 관심을 끌어당기는 책을 찾기만 하면 된다.

좋은 책을 찾기 위해서는 각 도서관 홈페이지와 인터넷 서점의 홈페이지, 블로그 등 다양한 정보를 활용하여 나에게 맞는 책을 찾아보는 수고를 기꺼이 해야 한다. 이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나 권장도서목록에만 의지하지 말고 가끔은 도서관과 대형 서점에 직접 가서 실제로 그 책을 만나보는 것이 좋겠다. 왜냐하면 책의 내용은 물론이고 문체, 판형이나 디자인도 책의 흥미를 끄는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도 목차와 미리보기 몇 쪽 만 보고 책을 샀다가 끝까지 읽지 못한 경험이 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책을 사서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책장을 덮지 않으려면 꼼꼼히 살펴보고 살 것을 권한다. 

네 번째로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책을 읽고 난 후 ‘질문이 생기는 책’이다. 누구나 행복하게 오래 살고 싶어 한다. 그런데 나탈리 배비트의 <트리갭의 샘물>이나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읽고 나면 ‘영생을 얻는 게 과연 행복한 일일까?’하는 생각과 함께 ‘과학의 발달이 인류의 행복을 보장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과학이 제공하는 편리함에 길들여진 인간의 욕구처럼 그동안 당연하게 여기던 가치관도 이렇듯 작가의 렌즈를 통해 비친 책속의 세상을 들여다보면 새로운 관점으로 바뀌기도 한다. 

책은 때때로 우리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기도 하고,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낯설고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게도 한다. 하루하루 삶을 살면서 일상을 떠나 매일매일 여행을 떠날 수 없으니 책 속으로라도 여행을 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다섯 번째로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 책은 ‘내가 성장함에 따라 점점 다르게 보이는 책’이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겠지만 한 번 읽은 책을 시간이 흘러 또 다시 읽었을 때 예전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경험은 또 다른 기쁨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자>의 공통점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들도 팔지 못했다. 특히나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자>는 무슨 이유에선지 절판된 지 오래다. 새로 주문하여 살 수 없으니 더 귀하다.

헤밍웨이가 200번이나 고쳐 썼다는 성실함의 소산인 <노인과 바다>가 나이 들며 점점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살라오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삶 그 자체를 포기하지 않아야 함을, 우리의 삶이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바다에서 벌이는 사투처럼 철저히 홀로 헤쳐 나가야 하는 것임을, 그리고 비록 소득 없이 커다란 고기의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로 항구로 돌아와도 내일 또 고기를 잡으러 나갈 채비를 해야 함을, 침묵 아닌 침묵으로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책 속의 글과 내 삶이 버무려져 글자 하나하나가 나의 온 몸에 닿는 공기처럼 내 숨과 함께 들어와 온 몸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좋은 책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다보니 잊었던 그 일, 아니 애써 잊고 싶었던 ‘책을 팔아야만 했던 그 일’이 또렷이 기억났다. 좋은 책의 기준을 말하며 새삼스레 잊고 싶었던 그 날을 들출 수 있는 것은 어느 새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이제는 나의 힘겨운 삶과 마주할 용기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어려움을 이겨내야 할 힘든 시간을 책은 나에게 친구가 되어주었고 나를 지탱하게 하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이 글을 쓰며 책꽂이를 한 번 둘러보니 서로 자기 얘기 좀 해달라고 눈짓을 보내는 좋은 책들이 많다. 책을 판 그 날 이후로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꼭 필요해서 다시 산 책들도 간간히 있고, 내 책꽂이에 새로 입주한 책들도 있다. 모두 다 반가운 책들이다.

이덕무가 쌀을 사기 위해 팔았던 <맹자> 7권을 그 뒤로 다시 샀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이덕무와는 비교자체가 불가능한 사람이지만 책을 팔기 위해 라면상자에 책을 채워 넣던 그 새벽, 나 혼자 흘린 눈물은 이덕무가 유득공을 찾아간 마음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내가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책만 보는 바보>를 꺼내 아무데고 펼쳐지는 대로 몇 장 씩 읽으면 그날 하루는 그냥 견딜 만 했다. 이렇듯 좋은 책은 처음부터 만들어져 우리의 손에 오는 게 아니라 나와 함께 새로운 책으로 거듭나고 나의 삶과 함께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싶다. 원고가 작가의 손을 떠나면 세상 어디로 가게 될 진 모르지만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더해져 각각 다른 이야기가 되기도 할 듯 싶다.

▶박은경 박은경의파워독서 원장  

▶에듀동아 김지연 기자 jiyeon01@donga.com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에듀동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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