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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뉴스

“철학 수업시간에는 뭐해요?”… 그럼에도 한영외고가 철학을 가르치는 이유

이영선 한영외고 철학 교사가 말하는 ‘고교생에게 철학이 필요한 이유’



“선생님, 철학 수업시간에는 도대체 뭐해요?”  

우리 학교 입학설명회에 참석한 예비 신입생 학부모들이 묘하게 불만스러움을 풍기는 뉘앙스로 내게 추궁하는 질문이다. 신입생들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철학 수업 첫 오리엔테이션 시간마다 따지듯 물어오곤 한다. 

철학은 현재 우리 학교에서 교양 교과 중 하나로 운영하는 교과목이다. 그러나 1학년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두 시간씩 배정되어 있을 정도로 비중이 높은 편이다. 물론 철학 수업은 시험을 치르지 않고 성적에도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학부모와 학생 입장에서는 부담이 없는 수업인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철학은 일반적으로 대학 입시와 동떨어진 교과로 여겨지기 때문에, 철학 수업 시간에 자거나 혹은 다른 과목을 공부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교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럴수록 철학 수업 시간에 학생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이며, 학생과 어떻게 학습해서 어떤 결과를 도출해야 하는지를 철학 교사로서 충분히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 과목선택권 높인 새 교육과정 덕분에 철학 배운다 

우리 학교는 교양 교과로 운영할 수 있는 일반 선택 과목 10개 과목 가운데 철학 교과를 선택했다. 이처럼 다른 학교에서 운영하지 않는 교과를 우리 학교에서 선택 운영할 수 있는 것은 새 교육과정 도입 덕분이다. 7차 교육과정 이후 2009개정 교육과정, 그리고 올해부터 고등학교에 적용될 2015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기본적으로 학생 선택 중심 교육과정이 운영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가 심화되면서 학생 한 명 한 명의 필요에 부응하는 개별 맞춤형 교육을 통해 학생의 삶과 의견이 존중받는 교육활동이 필요해졌기 때문인데, 이는 곧 산업화 시대에 만연했던 표준적이고 획일적인 교육과정과 경쟁 중심의 효율성 논리가 더 이상은 유효하지 않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무쪼록 이러한 변화에 따라 최근에는 학생이 자신의 흥미와 적성 그리고 진로에 맞게 자유롭게 교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제도적으로) 전 교과목을 학생 수요에 맞춰 편성할 수는 없기 때문에 학교의 교과 교육과정 편성이 매우 중요해지게 되었다. 학교와 교사는 학생이 주어진 상황을 주도할 수 있는 주체적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는 한편 학생이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필요한 능력을 길러주는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측면에서 교육과정을 편성한다. 즉, 학생이 교과목을 스스로 선택하여 자신의 진로를 개척해갈 수 있도록 진로 및 진학 등을 고려하여 융통성 있게 교육과정을 편성하는 것이다. 우리 학교 교육과정에 편성된 철학 교과는 그러한 고민의 산물이다.  

○ 철학자와 사상 달달 외우는 수업 아냐 

그럼 철학 교과에서는 무엇을 가르칠까. 학부모와 학생이 가장 어렵다고 여기는 수학 교과에서 수학사와 수학자를 학습하지는 않는 것처럼 고등학교 철학 교과는 철학사(史)와 철학자(者)를 가르치고 배우는 교과가 아니다. 고등학교 철학 교과는 청소년으로서 자기 삶을 성찰하고 학생으로서 교과 지식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삶과 교과의 문제들을 철학적으로 파악하고 탐구하는 과목이다. 논증과 토론 등의 의사소통 방법을 통하여 합당한 근거와 보편적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며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민주 사회의 시민으로서 타인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철학 교과의 단원별 내용 체계를 살펴보면, Ⅰ단원 자아론에서는 청소년으로서 나의 삶과 교과의 문제를 재료로 삼아 자신의 미래의 삶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자기 확신을 획득하도록 도전해 본다. Ⅱ단원 인간론에서는 진정한 자기의 삶이 되도록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능력을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그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점검해 본다. Ⅲ단원 세계론에서는 인간이 사는 세계가 어떤 모습을 띠고 있는 지 파악하고, 이런 세계상을 비판함으로써 세계상과 인간 삶의 관계를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한다. 마지막 Ⅳ단원 가치론에서는 지금보다 나은 삶을 구상한 후, 실현해야 할 근거를 다각적으로 탐구해서 유의미한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자기완성을 달성할 수 있다는 확신을 체득한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행정가였던 프랜시스 베이컨이 ‘Knowledge is power’라 말한 것처럼, 앎의 양과 질이 삶의 모양과 수준을 규정한다. 즉, ‘인간은 자신이 아는 만큼 산다’라는 명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철학의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철학함’의 근본전제이다. 여기서 철학함이란, 포스텍 이진우 교수의 「다원주의 시대의 철학적 리더쉽」 강연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모든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 지식의 근거를 추적하고 지식과 삶을 관련짓는 것이다. 나아가 신체, 욕망, 감성, 정서, 이성을 포함한 모든 인간 능력을 총체적으로 발휘하여, 자기 삶의 문제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자기의 앎을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이해하는 인간적 활동인 것이다. 이 점에서 고등학교 철학은 고등학생들이 지금까지 교과별로 흩어져 있는 지식들의 근거를 바탕으로 비판적 사고 역량, 의사소통 역량, 논술 역량, 가치 정립 역량, 그리고 타인과의 공감 및 연대 역량 등을 배경하는 데 기여한다.  

○ 철학으로 학생부종합‧논술전형이 추구하는 인재 역량 기른다

이와 같은 철학함의 실천 방식으로 나는 수업 시간에 ‘철학적으로 글 읽고 생각하기’를 진행한다. 교과서를 포함한 다양한 텍스트를 읽으면서 특정 주제가 어떤 맥락에 의해 작성되었는가를 독해한다. 파악한 쟁점에 관해 의견을 진술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핵심 개념을 이해하고, 글쓴이가 제시하는 핵심 주장과 근거를 ‘전제-결론’의 논증 형식으로 재구성한다. 재구성된 논증이 타당성, 건전성, 합리성 등을 충족하고 있는지 검토하게 한 후, 마지막으로 쟁점에 대해 위의 텍스트와 대립하는 주장을 담은 다른 텍스트를 찾아서 그 근거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한다.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다음 단계로 ‘철학적으로 토론하고 글쓰기’도 가능하다. 쟁점과 관련된 학생의 견해를 피력할 수 있는 자료를 조사해 오도록 한다. 그리고 학생은 준비한 자료를 그대로 읽기보다는 자신의 언어로 진술하도록 하며 주어진 쟁점에 입장을 갖는다. 또한 각자 적절한 근거를 토대로 상대방의 견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후, 마지막으로 [문제 제기-일반적인 견해 또는 자신의 견해 제시-해당 견해의 문제점 지적과 반론 제시-반론에 따른 새로운 문제점과 그에 대한 해결책 제시]의 서·본·결 구성을 갖춘 한 편의 글쓰기를 시도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철학 교과의 본질과 목적을 따라가다 보면, 최근 대학 입시에서 70% 이상을 선발할 정도로 비중이 높은 수시 전형 가운데서도 특히 학생부종합 전형과 논술 위주의 전형에서 추구하는 인재의 역량과 일맥상통하는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등학교 교양 교과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철학 교과가 대학 입시와 별개의 과목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학부모와 학생의 오해가 분명하다. 

아마도 나는 내년에도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질문에 “철학해요”라고 다소 뻔뻔하게 대답할 것이다. 다만 이러한 오해가 다시 불거지지 않도록 철학 교사로서 정보사회가 제공하는 각종 매체를 활용하여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학생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문제 제기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이다. 물론 학생 역시 범교과적 차원에서 ‘왜?’, ‘무엇을’, ‘어떻게’라는 물음을 제기하는 과정을 통해 철학적 자각에 도달한 후, 준비하는 입시 상황에 대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확인할 수 있는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교사와 학생은 ‘철학함’이라는 공동 작업을 수행하면서 ‘진로 중심의 진학’이라는 목표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다. 



에듀동아 김수진 기자 genie87@donga.com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에듀동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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