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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고 입학 후… 언제나 1등이었던 내가 1등이 아니라 힘든가요?

최정곤 부산과학고 교사 “지금은 자신을 돌아봐야 할 때”


 
얼마 전 기말고사가 끝났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평소 하지 못했던 동아리활동, 전람회 준비 등으로 바쁘다. 그런데 몇몇 학생이 나를 찾아와 물리 인터넷강의를 들으려고 하니 허락 해달라고 했다. 교내에서 자습시간에 다른 곳에서의 활동은 담당교사의 허락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험기간이 끝났기에 이들의 말이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어 “무엇 때문에”라고 물었더니, 아이들은 “물리가 어려워 2학기 중간고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허락은 했지만 내가 잘못 가르쳤나 하는 생각과 지금은 자신을 돌아봐야 할 시긴데 하는 생각이 겹쳐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기는 70년대 말과 80년대 초 사이다. 그 시절에도 과외를 받거나 학원을 다녔던 친구들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자율학습을 강제로 시키지 않았으니 도시에 사는 학생들 중 경제적 여유가 있는 친구들은 학원가에서 유명한 강사들의 수업을 듣기도 했다. 사교육을 받을 형편이 못되는 나는 늘 학교에서 자습했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묻고 답하며 익혔다. 그때 우리들의 목표는 남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대학에 입학하는 것일 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했다. 

대학에 입학해 내가 하고 있는 공부가 나에게 맞는가하고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뾰족한 답을 얻기는 힘들었다. 돌아갈 용기는 더욱 없었던 것 같다. 치열하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고 보냈던 것이다. 요즘도 가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기는 할까, 아니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할 때 가슴 뛰기는 하는가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렇게 살아간다고 나는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다. 고등학생 때 치열하게 고민했어야 하는 것인데 때를 놓쳐 버린 것이다.

지금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과학에 재능이 있는 과학영재들이다. 우리는 그들이 미래를 이끌어나갈 리더가 되어주길 바란다. 그것은 대부분의 학교가 지향하는 비전이기도 하지만, 과학고이기에 그 의미는 남다르다. 리더가 되라고 해서 꼭 위대한 사람이 되라는 말은 아니다. 작은 집단에서 역할을 할 수도 있고, 큰 집단에서 지도자가 될 수도 있다. 어디 있든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 낼 수 있는 사람이길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돌아보지도 못하고 그 순간에만 매몰된 사람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1학년은 한 학기를 보내면서 중학교에서 상상도 못했던 성적을 받아 고민을 하는 학생이 많다. 그들은 중학교에서는 빛나는 위치에 있었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할지라도 현재는 아니다. 그들은 지난날의 빛나던 때를 다시 얻는 것에만 급급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도 똑같은 상황을 겪는다고 한다. 어느 곳이든 상대적 위치는 있기 때문이다. 다른 점은 나이와 학교 급의 차이이고, 같은 점은 둘 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점검하고, 새롭게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2, 3학년도 마찬가지다. 2학년은 조기졸업으로 진학하는 학생과 3학년으로 진급하는 학생으로 나뉜다. 조기 졸업하는 학생은 3학년과 같은 입장이다. 그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를 충분히 고민하면서 대학을 선택해야 한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 혹은 주변의 시선에 휘둘려 대학을 선택하면 안 된다. 대부분 후회와 좌절만 기다린다. 3학년으로 진급하는 학생들은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새로운 눈으로 자신을 돌아보면서 현재 위치와 목표 사이의 간격을 생각해야 한다. 

꿈을 이루는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사람이다. 그들은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갈 길도 알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고, 가슴 떨리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부모님이나 주변에서 좋다고 평을 하는 대상에 현혹되지 않는다. 멀리 바라보되 이뤄야 할 작은 목표를 갖고 조금씩 나아간다. 이것이 그들이 꿈을 이루는 이유다.  

그들의 최고 장점은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작은 목표를 언제나 수정할 수 있는 유연함과 끝까지 해내려는 투지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때로는 바위산을 기어 올라가야 하고, 목까지 차는 물을 건너야 할 때도 있다. 그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들은 언제나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와 끊임없이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청춘이 빛나는 것은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의 바탕은 성찰이다. 앞만 보고 달리면 낙담과 후회만 남는다. 무조건 노력한다고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그것은 무모한 소모일 뿐이다. 이루고 싶은 것을 알 때 필요한 것도 알게 된다. 터널 속을 달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목표를 알고, 자신과 주변을 통합할 수 있을 때 끝까지 갈 수 있는 저력이 생긴다. 

‘결정적 시기’라는 것이 있다. 인간의 발달 단계에서 여러 발달 과업들이 획득되는 최적의 시기라는 의미다. 1학기가 끝난 지금이 고등학생 모두에게 그 시기다. ‘내가 누군가’, ‘나의 꿈은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등을 끊임없이 물어야 할 결정적 시기이다.   

▶최정곤 부산과학고 교사 

▶에듀동아 김지연 기자 jiyeon01@donga.com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에듀동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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