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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뉴스

신생아 용혈병을 막아낸 호주의 영웅 제임스 해리슨

60년간의 헌혈로 240만 명의 아기를 구하다



위인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걸까? 어떤 사람을 위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위인은 자신의 꿈과 이상을 품고 그것을 향해 어렸을 때부터 노력해온 사람, 그러면서도 그 꿈과 이상의 지향점이자 결과가 더 많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행복에 기여하는 것과 맞아떨어지는 사람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꿈과 이상은 본래 당사자가 그것을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뤄가야 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꿈과 이상은 그처럼 자기주도성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에 위인은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스스로 이룩해나가야 한다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작은 희망과 의무감으로 노력해왔을 뿐인데도 더 많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행복에 기여하는 참으로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는 그 때문에 당연히 위인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스스로의 강한 목표의식과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았기에 결코 그 반열에 들어설 수 없는 것일까?

수혈로 살아난 소년 제임스, 헌혈로 ‘나눔하는 삶’ 시작하다.
1951년 호주, 제임스 해리슨이라는 14살짜리 소년이 흉부절개 수술을 받은 뒤 깨어났다. 여러 명의 집도 의사들이 소년의 가슴에서 폐 하나를 떼어내고 다른 조처를 취하는 장시간의 대수술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수술을 하는 도중 다량의 출혈이 일어났다. 몹시 위급했다. 왜냐하면 제임스의 혈액은 아주 희귀한 혈액인 Rh-A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누군가가 헌혈을 통해 그에게 귀한 피를 공급해줬다. 덕분에 그는 살아서 석 달 뒤 병원을 떠날 수 있었다. 나중에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말해주었다.

“너는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수혈 받은 13리터의 피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단다. 그것을 기억해두거라.”

살아난 소년 제임스 해리슨은 그 말을 가슴에 깊이 새겨두었다. 아버지도 헌혈을 자주 하시는 분이었다. 소년은 당장이라도 헌혈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호주에서는 당시 헌혈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적어도 18살이 넘어야 헌혈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제한하고 있었다.

18살이 되자 제임스는 스스로 다짐한 대로 나아기기 위해 호주 적십자사 헌혈서비스를 찾아가 헌혈을 하기 시작했다. 헌혈은 아무리 자주해도 주사바늘은 늘 아프게 느껴진다. 바늘이 피부를 찢고 들어와 혈관을 뚫을 때마다 겪는 이 아픔은 여러 번 경험했다고 덜해지거나 사라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전에 겪은 또렷한 아픔의 기억 때문에 바늘이 피부를 찌르기 전부터 몸이 으스스 떨리면서 아픔의 기억이 마치 실제처럼 콕콕 밀어닥친다.

물론 그 가상의 아픔에 뒤이어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꿰뚫고 진짜 아픔이 어김없이 밀려든다. 그러므로 아픔은 늘 2차례, 2배의 강도를 고집한다. 찔리는 자는 운명 또는 인내만을 생각할 뿐 다른 출구는 없다. 제임스 역시 그랬다. 그는 눈을 꼭 감고 바늘이 있는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린다.



‘신생아 용혈병’ 백신 제작 위해 기꺼이 연구 대상자 돼
제임스가 처음 헌혈에 나서기 시작할 무렵, 호주는 태아들에게 닥치는 수천 건에 달하는 유산, 사산, 뇌결함 때문에 초긴장 상태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의료진들은 그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분투했다.

"1967년 무렵 호주에서는 해마다 수천 명의 태아기 죽고 있었어요. 의사들은 그 원인조차 알 수 없었고요. 정말 공포 그 자체였지요…. 얼마나 많은 임산부들이 유산을 했는지 몰라요. 설사 죽지 않고 태어난 아이도 뇌에 상당한 손상 입고 태어났어요.…”

호주 적십자사 헌혈서비스의 제마 포켄마이어는 당시 정황을 그렇게 전했다.

의사들은 연구 끝에 간신히 그 원인을 알아낼 수 있었다. 바로 오늘날 신생아 용혈병(HDN: hemolytic disease of the newborn)으로 알려진 Rh 부적합증 때문이었다. HDN은 임산부가 Rh- 혈액형일 때 임신한 태아기 Rh+ 혈액형을 가지면 일어나고 있었다.

이 병은 첫 번째 임신 때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첫 출산 후 태아의 혈액이 임산부의 혈액 안에 들어오면 임산부의 몸에 항체가 만들어지는데 이 항체가 다음번 임신에서 Rh+인 태아의 적혈구를 공격해 문제가 된다. Rh 항체가 태아의 적혈구를 공격하면 태아의 적혈구가 파괴돼 빈혈과 황달이 생길 수 있다. 또한 과도하고 지속적인 용혈로 인해 빈혈이 생기고 간기능부전, 심부전, 폐출혈 등을 일으키며 심지어는 자궁 내 태아 사망이 일어날 수 있다.

의사들은 이 신생아 용혈병을 막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포착했다. 매우 드물지만 이 병에 대한 항체를 가진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의 혈액으로부터 혈장을 분리해 처치과정을 거쳐 임산부에게 주사하면 막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연구자들은 마침내 이 항체를 가진 사람을 찾아낼 수 있었다.

바로 호주 뉴사우스 웨일즈주에 사는 제임스 해리슨이라는 남자였다. 당시까지 제임스는 근 10년 동안 전혈 헌혈을 해오고 있었다. 연구자들은 제임스 해리슨을 찾아 달려갔다.
 


“제가 실험용 기니피그가 되라는 거더군요. 두 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절 찾아와서 제 혈액이 필요하다고 하자 그대로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겠다고 했습니다.” 



호주 신생아 240만 명을 구한 제임스의 혈액
모든 것은 헌혈자의 기부로 이뤄졌다. 대신 적십자사는 그에게 100만 호주달러에 해당하는 생명보험을 들어줬다. 그는 목숨을 걸었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상 보상은 없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고 서명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안티-D 프로그램’이라고 부르는 Rh 부적합증 백신 제작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제임스는 이 프로그램을 위해 2주마다 적십자사로 가서 헌혈하는 일을 50여 년 동안 계속했다. 이 프로그램 이전 10년의 헌혈기간을 더하면 60여 년 동안 헌혈을 해온 것이다.

호주 적십자사 연구자들은 머지않아 제임스가 헌혈한 혈액으로부터 신생아 용혈병을 막는 백신주사제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백신에는 ‘안티-D’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뒤로도 그는 헌혈을 계속했다. 안티-D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후 그의 혈액은 백신의 원료로 쓰여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목숨과 행복을 지켜낼 수 있었다.

호주 적십자사의 한 관계자는 그의 공헌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해리슨씨의 헌혈로 우리는 그동안 수백만 개의 안티-D 백신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아시나요? 호주에서는 임산부의 약 17%가 이 안티-D 백신이 필요해요. 우리 적십자사 헌혈서비스가 추산하기로는 그가 이 나라 아기 240만 명의 목숨을 구하는 데 도움을 준 거예요. 모든 안티-D 백신 앰플에는 제임스의 혈액이 들어가 있고요… 그 생각만 하면 저는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제임스 해리슨의 혈액이 어떻게 자연적으로 신생아 용혈병의 항체를 가질 수 있었는지는 아직 과학적으로 완전하게 규명되지 않고 있다. 그래도 가장 유력하게 제시되는 이론은 그가 14살 때 흉부절개수술을 받은 뒤 석 달 동안 수혈 받은 과정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추정이다. 실제로 그는 수혈 받은 몇 년 뒤 의사로부터 자신의 혈액이 Rh-에서 Rh+로 바뀌었다는 말을 들었다.
 


‘헌혈 하나로 누군가를 살린다면 1,000번인들 어떠랴’
그는 자신을 과도하게 칭찬하거나 평가하는 것에 대해 손 사레를 친다. 그리곤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아마도 제 유일한 능력은 내가 헌혈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헌혈, 그게 제 유일한 재능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를 대단하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그에게 ‘황금 팔을 가진 사람’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호주 정부는 그의 공을 높이 사 1999년 그에게 나라에서 가장 명예로운 증표인 호주 훈장을 수여했다.

2013년 그는 마지막으로 1,173번째 헌혈을 했다. 호주에서는 81살 이후에는 헌혈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헌혈의 날, 그가 헌혈을 하는 자리에는 그의 혈액으로 생명을 구한 아기들이 엄마의 품에 안겨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이룩한 일은 여러 가지 면에서 기적과도 같은 성격을 띤다. 가정법을 빌면 이렇다.
 
1. 그가 18세 때 스스로 한 다짐대로 헌혈의 길에 나서지 않았더라면…
2. 그가 안티-D 프로그램이 완수될 때까지 10년 동안 헌혈을 계속하지 않았더라면…
3. 그가 만일 전량 헌혈을 하지 않았더라면…
4. 적십자사가 그의 전량 헌혈의 성분을 정확히 분석하지 않았더라면…
5. 그 기록을 정확하게 보관관리하지 않았더라면…
6. 그가 1000여 차례가 넘는 주삿바늘의 아픔과, 2주마다 집에서 적십자사 헌혈서비스까지 왕복하는 수고를 이기지 못하고 지쳐버렸더라면…
7. 그가 81살 때까지 1,173번에 이르는 헌혈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고 강한 혈관을 갖고 있지 않았더라면… 

만약 이 같은 가정 중에 하나라도 사실로 이루어진 것이 있다면 그는 과연 그 많은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을까? 그의 강한 신념과, 신이 도왔다고 할 만큼의 운이 따랐을 때 그는 비로소 위인이 될 수 있었다. 

*사진 출처 : today.com, dailymail.co.uk, npr.org, cnn.com, cater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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