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코칭

책상은 왜 ‘책상’이라고 부를까?

페터 빅셀, <책상은 책상이다>로 알아보는 언어의 특징



이 세상에 많은 동·식물들은 다양한 방법을 이용해 서로 소통을 합니다. 돌고래는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 초음파를 이용하고요, 얼룩말은 반가운 친구를 만나면 귀를 세우고 이를 드러내며 ‘힝힝’거리는 소리를 냅니다. 또 아프리카에 사는 시칠리드라는 물고기는 자신의 몸 색깔을 바꿔 기분 상태를 나타내기도 해요.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어떻게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할까요? 우리가 소통을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바로 ‘언어’입니다. 우리는 다른 어떤 동물들보다도 고차원적인 언어를 사용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해서 모두 ‘언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언어라고 부르는 것들은 어떤 조건을 가져야 할 지 오늘 소개하는 책을 통해 생각해보도록 해요. 바로 피터 벡셀의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단편소설입니다.

작품 돋보기 | <책상은 책상이다>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한 남자의 이야기
여러분에게 소개하는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책은 페터 빅셀이라는 스위스 작가의 단편소설입니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은 한 늙은 남자인데요. 화자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그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주인공인 늙은 남자는 화자가 그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 ‘쓸데없는 일’처럼 느껴질 만큼 지극히 평범한 모습입니다. 또한 이웃과의 교류도 없이 단절된 외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어요. 소설은 자신의 단조롭고 반복적인, 그리고 무료한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는 남자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런 일상에서 벗어나길 기대하지만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남자는 문득 사물을 붙여진 이름대로 불러야 하는 것에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곧바로 재미있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그것은 바로 사물의 이름을 서로 바꿔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남자는 이렇게 하면 자신의 단조로운 삶이 달라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 책상이 그 책상이구먼.”하고 그 남자는 중얼거렸다.
“언제나 똑같은 책상, 언제나 똑같은 의자들, 똑같은 침대, 똑같은 사진이야. 그리고 나는 책상을 책상이라고 부르고 사진을 사진이라고 하고, 침대를 침대라고 부르지. 또 의자는 의자라고 한단 말이야. 도대체 왜 그렇게 불러야 하는 거지?” 

‘왜 침대를 사진이라고 하면 안 되지?’ 그 남자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껄껄 웃기 시작했다. 옆방 사람이 벽을 두드리며 “거 좀 조용히 합시다.”하고 고함을 지를 때까지 그는 웃고 또 웃었다.
“이제 모든 것이 달라질 거야.” 그는 이렇게 외치면서, 이제부터 침대를 ‘사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피곤하군, 이제 사진 속으로 들어가야겠어.”라고 말하고는 침대 위에 누웠다.

‘나만 알 수 있는 말’을 만들다
이후 남자는 아침에 눈을 뜨면 한참 동안 사물들을 어떻게 부를지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물과 단어들의 이름을 바꿔 부르기에 이르렀죠. 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그 자신도 ‘발’이라고 불렀고, 발은 ‘아침’이라고 불렀고, 아침은 ‘남자’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남자의 언어생활. 과연 그는 이러한 변화로 그토록 바라던 행복을 찾을 수 있었을까요?

침대는 사진이라고 불렀다. 책상은 양탄자라고 불렀다.
의자는 시계라고 불렀다. 신문은 침대라고 불렀다.
거울은 의자라고 불렀다. 시계는 사진첩이라고 불렀다.
옷장은 신문이라고 불렀다. 양탄자는 옷장이라고 불렀다.
사진은 책상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사진첩은 거울이라고 불렀다.

‘울리다’는 ‘세우다’라고 한다. ‘일어나다’는 ‘시리다’라고 한다.
‘시리다’는 ‘보다’라고 한다. ‘눕다’는 ‘울리다’라고 한다.
‘올라서다’는 ‘펼치다’라고 한다.

그러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남자에 이 나이 많은 발은 한참 동안 사진 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아홉 시가 되자 사진첩이 세워졌다. 그 발은 시려서 아침이 보이지 않도록 옷장 위에 펼쳤다.

더 큰 침묵을 부른 이상한 일상 탈출
늙은 남자는 자신이 바꾼 새로운 단어들을 공부하며 종일 이 일에만 매달렸습니다. 그러면서 차츰 사물들의 원래 이름을 잊어버렸죠. 그런데 행복하기 위해 변화를 시도한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려면 원래 사물의 이름이 뭐였는지 한참이나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지요. 그는 점점 더 사람들과 단절되고, 고독한 외톨이가 되고 맙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을 지경이다. 누군가가 “내일 선생님도 축구 보러 가실 건가요?” 하고 말하면, 그는 큰 소리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벌써 두 달째 계속 비가 내리고 있군요.”라든가, “제 삼촌이 미국에 계세요.”라는 말도 우습기는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그는 이 모든 말들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우스꽝스럽거나 재미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슬프게 시작해서 슬프게 끝나는 이야기다. 회색 외투를 입은 그 나이 많은 남자는 사람들과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건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람들이 그를 더 이상 이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때부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침묵했고, 자기 자신하고만 이야기했고, 더 이상 사람들과 인사조차도 하지 않게 되었다.

언어는 말소리의미라는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탕’이라는 단어를 보면, ‘사탕’이라고 하는 말은 말소리가 되고, ‘사탕’이라는 소리를 듣고 딱딱하고 달콤하며 동그란 어떤 과자를 떠올린다면 그것이 바로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언어는 말소리와 의미가 합쳐져 탄생합니다.
남자의 이야기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반드시 가져야 할 두 가지 특징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특징인지 한 번 살펴볼까요?

언어의 자의성, 책상을 책상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없다! 
먼저, 늙은 남자는 이처럼 자신의 마음대로 사물들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서 언어의 첫 번째 특징이 나타납니다. 바로 ‘언어의 자의성’입니다.

언어의 자의성이란 어떤 사물을 ‘반드시 이렇게 불러야 한다’라는 법은 없다는 말입니다. 마치 여러분의 이름이 왜 그렇게 지어졌는지에 대해 정답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나비를 ‘나비’라고 부르지만, 일본에서는 ‘조’라고 불립니다. 또 이탈리아는 ‘파르팔라’로 부르지요. 이는 모두 ‘나비’라는 곤충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부르는 말소리는 제각각입니다.

언어의 사회성, 공부할 때 받치고 쓰는 상을 ‘책상’이라고 하자!
하지만 그렇게 마음대로 불러서 결국 남자가 고립되지 않았느냐고요? 맞아요. 그것이 바로 두 번째, 언어의 사회성입니다.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인 약속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세상에 없던 물건을 만들었다면 그것의 이름을 마음대로 짓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이렇게 부르자’고 약속한 단어가 있다면 그 약속을 따라야 합니다. 마음대로 그 약속을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언어의 사회성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바꿔버린다면 이야기 속의 늙은 남자처럼 주변 사람들과 원활한 대화가 불가능하겠죠?

정보 플러스+  | 전지적 작가 시점

전지적(全知的) 작가(作家) 시점(視點)은 작가가 등장인물의 행동과 태도는 물론 그의 내면세계까지도 분석 설명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이다. 작가가 소설 속의 인물의 내면세계와 외부 세계를 모두 관장하며, 작가의 입장에서 인물의 행동과 심리 상태를 해석하기도 한다.

전지적 작가 시점은 서술의 각도를 자유롭게 이동시켜서 인생의 총체적인 모습을 다각적으로 그려 나갈 수 있다. 소설의 이야기가 작중인물이 아닌 이야기 밖의 서술자에 의해 서술되기 때문에 작중인물은 ‘그’라는 삼인칭 대명사로 지칭된다.

*사진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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