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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산책]큰 웃음 뒤에 가려진 세상 향한 비판, 웨민쥔 ‘웃음 시리즈’

웃음 뒤에 가려진 ‘조롱’ 혹은 ‘고통’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하얀 이를 가득 드러내면서 함박웃음을 짓는 남자가 있다. 이 남자는 우스꽝스러운 복장에 요상한 몸짓으로 역사의 한 현장에 등장하는가 하면, 명화나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다. 하지만 캔버스에 그려진 그를 보는 순간 우리의 표정은 웃기는커녕 점차 묘하게 일그러져 간다. 인물들의 모습이 무언가 괴기하고 공포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웃음에 담긴 의미는 대체 무엇일까?

냉소적 사실주의자 ‘웨민쥔’
중국 현대미술의 4대 천황이라고 불리는 웨민쥔(岳敏君, Yue Minjun, 1962~)은 냉소적 사실주의자(Cynical Realist)로 대표되는 현대미술작가다. 어려서부터 취미로 그림을 그리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석유공장에서 전기공으로 몇 년 간 일 하다가 전업 예술가가 되기 위해 1985년 허베이사범대 회화과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1985년은 중국의 신사조 미술운동이 활발하던 때였다. 1978년 이후 중국에 개혁개방정책이 이루어지면서 이전까지 국가의 정치적 수단에 불과했던 예술계는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서양의 휴머니즘과 모더니즘은 중국에서 한층 더 확산됐고, 중국의 청년 예술가들은 개인의 내면세계를 돌아보며 철학과 문학, 사상 등에 심취해 사회와 분리된 고독한 자아, 인간 존재의 의미 등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개혁개방은 사회 전반에 걸친 큰 발전을 이뤄낸 동시에 농촌과 도시, 연안과 내륙의 경제 격차가 확대되고 관료의 부정부패는 더욱 심화시켰다는 모순을 낳게 된다.

‘85 신사조 미술’ 운동권에 속한 이들의 작품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사회 환경에 대한 저항과 개인의 내적 욕구에 따라 고독과 반항, 허무 등을 주조로 한 극단적인 발산과 표현적 경향이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웨민쥔 또한 중국의 문화혁명과 개혁개방이라는 현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그로 인해 벌어진 혼란, 공허, 슬픔, 분노 등을 풍자하고자 했다.

작품 초기, 웨민쥔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자신과 주변 친구들이었다. 그러다 그는 1989년 발생한 톈안먼사태에 혐오감을 느끼고 작품 속 인물을 점차 더욱 과장된 표현이나 몸짓으로 그려진 화가 자신으로 대체했다. 그는 이에 대해 창의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줄 고정된 주인공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사회를 거부하는 데 자기 자신을 비웃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웃는 얼굴을 트레이드마크로 만든 그의 독특한 그림세계가 시작됐다.

[톈안먼사태(天安門) | 1989년 6월 4일, 중국 베이징 시 중앙에 있는 톈안먼(天安門, 천안문) 광장에서 개혁개방정책으로 공산당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던 학생 및 노동자, 시민들은 민주화를 요구했지만 중국 정부에 의해 무력으로 진압당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정치적 참극]

웃음 뒤에 가려진 ‘조롱’ 혹은 ‘고통’



▲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 590만 달러에 팔린 작품 '처형'(1995), 작품의 배경이 된 장소는 중국 톈안먼이다. [사진 출처=nytimes.com]

“내 작품 속 인물은 모두 바보 같다. 그들은 웃고 있지만 그 웃음 속에는 강요된 듯한 부자유스러움과 어색함이 숨어 있다. 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아무 생각도 없이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표현한다. 이들은 곧 내 초상이자 친구의 모습이며 나아가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자신을 ‘비관론자’라고 말하고 실제 평소에 잘 웃지 않는 웨민진은, 언제나 현실을 외면하듯 두 눈을 질끈 감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크게 웃고 있는 인물을 통해 급변한 중국 사회가 야기한 정치적, 사회적 혼란, 더불어 자신에 대한 조롱, 절망적 감정을 나타내고자 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건 웃음이 아니다. 고통, 슬픔 등 표현되지 않은 것들이 그 안에 들어 있다. 이러한 것들을 강조하기 위해 나는 역설적으로 웃음을 선택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회와 부딪힌 문제를 ‘웃음’이라는 방식으로 도피하며 해결하려 했던 웨민쥔. 하루빨리 그가 ‘진짜 웃음’을 짓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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