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코칭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나를 조종하는, 이기적 유전자

자연의 여러 행동 양상들을 ‘유전자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우리 인간은 친구와 함께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즐거워하고, 애인에게 프로포즈를 받아 행복해 하고, 주변에 어려운 이들이 보이면 도움의 손길을 내밀 줄 아는 주체적인 존재다. 그런데 만약 지금까지 해왔던 나의 모든 행위가 내 의지가 아닌 내 유전자에 의한 것이었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생물 진화의 주체는 유전자이며, 생물들은 모두 유전자의 자가복제 속에서 만들어진 기계적 존재라고 주장한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어보자.

<이기적 유전자> 본문 읽기

제 1장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진화–가장 근본적 질문에 대한 대답


어떤 행성에서 지적 생물이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생물이 자기의 존재 이유를 처음으로 알아냈을 때다. 만약 우주의 다른 곳에서 지적으로 뛰어난 생물이 지구를 방문했을 때, 그들이 우리의 문명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맨 처음 던지는 질문은 “당신들은 진화를 알아냈는가?”일 것이다. 지구의 생물체는 자신들 중의 하나가 진실을 밝혀내기 전까지 30억 년 동안 자기가 왜 존재하는지 모르고 살았다. 진실을 밝힌 그의 이름은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었다. 공정하게 말하면 몇몇 다른 사람들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하여 일관성 있고 조리 있게 설명을 종합한 사람은 다윈이 처음이었다. 다윈은 이 장의 표제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에게 우리가 이치에 맞는 답을 가르쳐 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생명에는 의미가 있는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등과 같은 심오한 질문에 마주쳤을 때 우리는 더 이상 미신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 저명한 동물학자 심슨 G. Simpson은 이 세 가지 중에서 마지막 질문을 제기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1859년 이전에 이 문제에 답하고자 했던 시도들은 모두 가치 없는 것이며, 오히려 그것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점이다.”

오늘날 진화론은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다는 사실과 같이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다윈 혁명의 함의는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대학에서 동물학은 아직도 소수의 연구 분야이며, 동물학을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조차 그 깊은 철학적 깊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철학과 인문학 분야에서는 아직도 다윈이 존재한 적조차 없었던 것처럼 가르친다. 이런 상황은 틀림없이 언젠가 달라질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은 다윈주의Darwinism를 지지하기 위함이 아니라 특정 논점에 대하여 진화론이 초래하는 결과를 두루 살펴보기 위함이다. 나의 목적은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생물학을 탐구하는 것이다.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학문상의 흥미는 차치하고라도 이 주제가 인간에게 중요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 주제는 우리 사회생활의 모든 면, 즉 사랑과 미움, 싸움과 협력, 주는 것과 훔치는 것, 탐욕과 관대함 등에 모두 관련된다. 콘라드 로렌츠Konrad Lorenz의 『공격에 대하여On Aggression』, 로버트 아드리Robert Ardrey의 『사회 계약The Social Contract』, 그리고 아이블-아이베스펠트Eibl-Eibesfeldt의 『사랑과 미움Love and Hate』도 이와 같은 문제를 다뤘다고 할 수 있으나 이 책들의 문제점은 그 저자들이 전적으로, 완전히 틀렸다는 데에 있다. 이들이 틀린 이유는 진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진화에서 중요한 것은 개체individual(또는 유전자)의 이익이 아닌 종species(또는 집단group)의 이익이라는 잘못된 가정을 하고 있다. …(중략)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이 유전자가 만들어 낸 기계라는 것이다. 성공한 시카고의 갱단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유전자는 치열한 세상에서 때로는 수백만 년 동안이나 생존해 왔다. 이 사실로부터 우리는 우리의 유전자에 어떤 성질이 있음을 기대할 수 있다. 이제부터 논의하려는 것은, 성공한 유전자에 대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성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정한 이기주의’라는 것이다. 이러한 유전자의 이기주의는 보통 개체 행동에서도 이기성이 나타나는 원인이 된다. …(중략)

이 책에서 나는 유전자의 이기성gene selfishness 이라는 기본 법칙으로 개체의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모두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지 보이고자 한다. …(후략)

제 6장 유전자의 행동방식

이기적 유전자와 이타주의

이기적 유전자란 무엇일까? 그것은 단지 DNA의 작은 조각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원시 수프에서처럼, 그것은 온 세상에 퍼져 있는 특정 DNA 조각의 모든 복사본들이다. 우리가 원한다면 언제라도 적절한 용어로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유전자가 마치 의식적으로 목적을 갖고 있는 듯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이기적 유전자의 목적이 무엇인가 질문할 수 있다. 이기적 유전자의 목적은 유전자 풀 속에 그 수를 늘리는 것이다. 유전자는 기본적으로 그것이 생존하고 번식하는 장소인 몸에 프로그램 짜 넣는 것을 도와줌으로써 이 목적을 달성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유전자가 다수의 다른 개체 내에 동시에 존재하는 분산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 장의 핵심은 유전자가 남의 몸속에 들어앉아 있는 자신의 복사본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개체의 이타주의로 나타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전자의 이기주의에서 생겨난 것이다. …(후략)

제 11장 밈-새로운 복제자

문화, 문화적 돌연변이

지금까지 인간에 관해서는 특별히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러 인간을 제외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내가 ‘생존 기계’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동물’이라고 하면 식물이 제외될 뿐만 아니라 몇몇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인간까지도 제외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전개해 온 논의는 명백히 진화의 모든 산물에 적용될 수 있다. 만약 어떤 종을 예외로 치려면 특별히 타당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속하는 인간이라는 종을 특수한 존재로 볼 만한 타당한 근거가 있을까? 그 대답은 ‘예’일 것이다.

인간의 특이성은 대개 ‘문화’라고 하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잘났다고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과학자의 입장에서 이 단어를 쓴다. 문화적 전달은 유전적 전달과 유사하다. 기본적으로는 유전적 전달이 더 보수적이지만 일종의 진화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말이다. …(중략)

문화적 진화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은 우리 인간이라는 종이다. 언어는 많은 예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의복과 음식의 유행, 의식과 관습, 예술과 건축, 기술과 공학 등 이들 모두는 역사를 통하여 마치 속도가 매우 빠른 유전적 진화와 같은 양식으로 진화하는데, 물론 실제로는 유전적 진화와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러나 유전적 진화에서와 같이 그 변화는 진보적이다. 현대 과학은 실제로 고대 과학보다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우주에 관한 우리의 이해는 시대와 더불어 변화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개선되어 가고 있다. 확실히 폭발적 진보가 이루어진 것은 르네상스 이후의 일이다. 그전에는 침울한 정체기가 있었고 유럽의 과학 문화는 그리스 시대 이후 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제5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유전적 진화도 안정된 정체 기간 사이사이 갑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나면서 진행되는 것일지 모른다. …(후략)

제 13장 유전자의 긴 팔

유전자냐 개체냐

이기적 유전자론의 한가운데에서 모종의 불안감이 회오리친다. 이것은 가장 근본적인 생명의 매개체가 몸인지, 아니면 유전자인지에 대해 우리가 갈팡질팡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독립된 DNA 자기 복제자라는 마음 설레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것은 샤무아(영양의 일종-옮긴이)처럼 펄쩍펄쩍 뛰면서 자유로이 다음 세대로 옮겨지고, 일회용 생존 기계에 잠시 모였다가도 죽음을 면치 못하는 생존기계를 끊임없이 갈아타며 각각의 영원한 미래를 향해 매진하는 불멸의 코일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생물 개체의 몸 그 자체를 보는데, 그 각각은 분명히 하나로 긴밀히 연결되고 통합된 기계로서 뚜렷한 단 하나의 목적을 갖는다. 생물체의 몸이, 정자나 난자에 실려 거대한 유전적 산거散居의 다음 여정을 출발하기 전까지는, 거의 서로 알지도 못했을 유전적 매개체의 느슨하고 일시적인 연합의 산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숙주와 기생자

…(중략) 자연 선택의 근본적인 단위로 생존에 성공 또는 실패하는 기본적인 것, 그리고 때때로 무작위적인 돌연변이를 수반하면서 동일한 사본의 계보를 형성하는 기본 단위를 자기 복제자라고 한다. DNA 분자는 자기 복제자다. 자기 복제자는 앞으로 우리가 살펴보겠지만 어떠한 이유로 거대한 공동체적 생존 기계, 즉 운반자 속에 모인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운반자는 우리 자신과 같은 개체의 몸이다. 따라서 몸은 자기 복제자가 아니다. 그것은 운반자이다. …(중략) ‘개체 선택’이냐 ‘집단 선택’이냐에 대한 논쟁은 누가 운반자가 될 것이냐에 대한 진정한 논쟁이다. 그러나 개체 선택이냐 유전자 선택이냐는 논쟁거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유전자와 생물 개체는 서로 다른 상호 보완적인 역할, 즉 자기 복제자와 운반자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불멸의 자기복제자

…(중략) 원칙적으로, 그리고 사실상 유전자는 개체의 체벽을 통과하여 바깥세상에 있는 대상을 조종한다. 그 대상 중 어떤 것은 무생물체고, 어떤 것은 다른 생물이며, 또 어떤 것은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확장된 표현형의 힘이 방사상으로 뻗은 그물눈 중심에 유전자가 들어앉아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있는 대상물은 여러 생물 개체 속에 들어앉은 여러 유전자가 미치는 영향력의 그물이 합쳐지는 지점이다. 유전자의 긴 팔에는 뚜렷한 경계가 없다. 세상 전체가, 멀거나 가까운 표현형에 미치는 유전자의 영향을 잇는 인과의 화살로 가득 차 있는 셈이다.

우연이라기에는 실제적으로 너무 중요하지만, 필연이라 하기에는 이론적으로 불충분한 사실을 하나 추가해 두자. 그것은 이들 인과의 화살이 뭉쳐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자기 복제자는 더 이상 바닷속에 제멋대로 흩어져 있지 않다. 이들은 거대한 군체, 즉 개체의 몸속에 포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뭉쳐진 자기 복제자가 표현형에 초래하는 결과는 세상 전체에 균일하게 분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개의 경우 그 개체에 응집되어 있다. 그러나 이 지구에서 우리에게 이다지도 낯익은 개체라는 존재가 반드시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우주의 어떤 장소든 생명이 나타나기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유일한 실체는 불멸의 자기복제자뿐이다.

유전자에 휘둘리지 않고 유일하게 맞설 수 있는 생물, 인간

자기 복제 능력을 가진 유전자가 우연히 생긴 뒤, 시간이 지나면서 소진되는 구성 요소 분자를 대신해 생존하기 위해 유전자는 운반자 즉, 개체를 만들어 낸다. 유전자는 그저 존재할 뿐이지만, 계속 존재하기 위해 개체의 뇌와 신경계를 프로그래밍 해서 통제한다. 그러한 통제의 결과 개체는 이타적 또는 이기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유전자의 생존’을 위한 과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동물의 세대, 성(性), 사회적으로 보이는 개체의 배신, 사기, 협력, 보복 등의 행위는 모두 이러한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며, 이타적 행동을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로 자신과 공통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행동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문화를 전달하는 ‘밈’의 존재와 능력으로 인해 주체적으로 우리 삶을 설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됐다. 이 지구상에서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유전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 즉, 인간의 몸과 정신은 인간 고유의 것이며, 유전자의 부산물로서 태어났지만 우리는 우리의 의지에 따라 그것을 거부할 수 있고, 이타적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고, 선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 출처=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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