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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뉴스

책이 말한다 “사랑이 뭐냐고 마음껏 물어봐도 돼”

[박은경의 책상(冊想)] 책 <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와 <쥐를 잡자>로 보는 청소년 성교육



사랑은 아마도 인간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일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고딕소설의 대표작인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는 열여섯 살의 어린 나이에 유부남인줄 알면서도 시인이자 철학자인 퍼시 셸리에게 빠져든다. 당시 영국 사회에 널리 알려진 정치철학자 윌리엄 고드윈의 딸이었던 메리 셸리는 퍼시 셸리와의 사랑을 이어가기 위해 외국으로 도주한다. 아버지의 만류와 세상 사람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퍼시 셸리와의 사랑을 멈출 수 없었던 메리 셸리는 ‘사랑하면 안 될 사람’을 사랑하며 괴로운 삶을 살게 된다. 사랑의 기쁨과 죄책감을 동시에 갖게 된 그녀의 마음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상태였을 것이다.

그리고 아테네의 장군이었던 ‘포키온’의 아내도 사랑의 위대함을 온몸으로 보여준 사람으로 손꼽을 만하다. 포키온의 집에 방문한 알렉산드로스의 사신들은 포키온의 검소한 살림을 보고 놀랐을 뿐 아니라, 직접 빵을 굽는 포키온의 아내와 손님들이 씻을 물을 직접 우물에서 길어다 주는 그의 행동을 보고 놀란다. 알렉산드로스가 유럽은 물론 인도와 이집트까지 장악하게 되자 포키온은 아테네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정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마케도니아와 지혜롭게 협상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포키온의 협상을 일각에서는 평화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배신자가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알렉산드로스의 갑작스러운 사망 후, 포키온의 반대세력은 포키온을 죽이고 그의 시체를 불에 태워 길거리에 뿌리고 만다. 그리고는 그의 영면을 허락하지 않기 위해 그의 재를 묻어주는 사람 또한 가혹한 벌을 내리겠다고 한다. 그러자 포키온의 아내는 포키온의 재를 모아 물에 탄 후 마셔버린다. 포키온의 아내는 법을 어기면 처벌당할 것을 알면서도 남편에 대한 깊은 애정과 헌신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사랑의 힘으로 두려움을 극복한 것이다. 자신의 육체를 남편의 무덤으로 만들 생각을 한 포키온의 아내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새삼스레 메리셸리와 포키온의 아내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렇게 인간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사랑에 관해 생각해 보기 위해서이다.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은 이성 교제에 관해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만나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기념일을 축하하고 만난 지 며칠 되었는지를 세며 조금은 어설프고 조금은 위태롭게 그들의 관계를 유지한다. 그런가 하면 만난 지 하루 만에 “저희 헤어졌어요”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 ‘요즘 애들’의 사랑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성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우리는 아이들 앞에서 어떻게 ‘성’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고민스러운 나머지 “크면 저절로 알게 돼”라든가 “공부나 해”라는 말로 어색함을 대신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자꾸만 음지를 떠돌며 인터넷에 의지하고 마는 것은 아닐까. 10대의 자녀와 자연스럽게 ‘성’에 대해, 또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좋은 책 두 권을 소개할까 한다. 그것은 <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와 <쥐를 잡자>다.

<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는 결혼한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내가 읽어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일생 두 사람만의 삶을 잘 이어가겠다는 약속을 한 사람들의 결합이다. 몇십 년간 긴 시간을 사랑하며 잘 지내는 방법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노력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를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열정이 고조에 달했을 때 ‘그래. 이 사람이야’라는 생각을 하며 결혼한다. 그러므로 정작 결혼 이후에 사랑을 이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때때로 갈등이 빚어지기도 하고 이혼을 하기도 한다.

이 책의 내용 중 미국의 예일대학교 심리학과의 로버트 스턴버그 교수의 이론을 소개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그는 사랑의 세 가지 요소로 정열, 친밀감, 헌신을 꼽으며 이 세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매우 바람직한 사랑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정열만 있으면 일시적인 사랑으로 그치고, 친밀감만 있으면 우정과 별 차이가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헌신만 있으면 낭만적 감정이 없이 의무만을 수행하는 건조한 사랑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정열과 친밀감, 헌신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아야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뿐만 아니라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의 존 알란 리 교수는 사랑의 유형을 정열적 사랑, 유희적 사랑, 우애적 사랑 등으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한다. 정열적 사랑은 첫눈에 반하거나 상대방에게 깊이 빠져 버리는 사랑이다. 유희적 사랑은 사랑을 놀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다. 즐기기 위해 특정한 상대에게 몰입하지 않으려 하므로 이른바 ‘양다리 걸치기’도 서슴지 않는다. 우애적 사랑은 말 그대로 우정과 같은 사랑이다. 이 세 가지의 유형이 서로 섞이면 더욱 다양한 사랑의 형태가 나타난다. 이렇게 사랑의 유형을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이 어디쯤에 가 닿아 있는지를 들여다보게 된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이 읽고 자신과 상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 외에도 사랑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한 것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으로 뭉크의 <에로스와 프시케>, 프랑수아 제라르의 <에로스와 프시케>, 로댕의 <에로스와 프시케>를 비교하여 작가의 연애관이 그들의 인생과 작품으로 드러난 것을 비교하고 있다. 그리고 사랑의 유효기간과 사랑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법 등을 말하고 있는 것은 청소년의 ‘성’에 대한 호기심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흐름과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다. 

<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가 사랑을 다양한 각도로 분석한 책이라면 <쥐를 잡자>는 주인공 주홍이를 통해 청소년이 겪게 되는 성의 혼란과 가정, 학교,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안아주고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주홍이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낙태를 선택하지만 죄책감과 상실감으로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삶의 스위치를 끄고 만다. 이 소설은 주홍이가 임신하는 과정을 과감히 생략하고 상대가 누구인지도 드러나지 않는다. 주홍이가 임신의 결과를 해결하는 방법에 주목하여 독자에게 많은 생각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소설의 발단이 주홍이의 임신임에도 불구하고, 절반의 책임이 있는 상대방에 대해 일언반구 없다는 점이 매우 특이하다. 작가가 이러한 구조를 선택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미혼모 특히 어린 미혼모에 대한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려 한 작가의 주도면밀함이 느껴진다.

<쥐를 잡자>는 1, 2, 3으로 각각의 장이 반복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1은 담임인 최 선생님, 2는 주홍이의 엄마, 3은 주홍이의 입장에서 사건이 전개되는 구조이다. 표지의 단순함과 건조함이 소설의 내용이 주는 무거움과 불안, 우울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컴퓨터의 마우스가 그려져 있는데 중요한 소재인 ‘쥐’와 영어 마우스(Mouse)가 맞물려 중의적 관계를 잘 전달하고 있다.

선생님과 주홍이의 엄마, 그리고 주홍이는 각자 두려움을 안고 있다. 반 아이들의 놀이 ‘쥐를 잡자’ 게임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긴장감을 더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과연 그들은 자신의 바람대로 쥐를 잡았을까. <쥐를 잡자>는 ‘미혼모의 낙태는 필요악인가? 살인인가?’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할 뿐 아니라 주홍이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우리 사회의 잘못된 편견과 몰이해를 단단히 꼬집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엔가 있을 또 다른 주홍이가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나는 이 책으로 여러 해를 수업하고 있다. 최근 중1 학생들과 이 두 권의 책으로 수업을 했는데 학생들에게 들은 몇 가지 놀랍고 가슴 벅찬 이야기를 옮겨 볼까 한다. 남학생 A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 남자들이 바람을 피우거나 성공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랑을 작위적으로 끌고 가는 경우를 많이 봐서 자신도 어른이 되었을 때 그런 사람이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책들을 읽고 나니 자신이 아름다운 사랑을 키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어 안심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대다수의 학생들이 학교의 성교육에 대해 아는 내용을 반복하는 따분한 수업으로 느끼고 있었다. 학교의 성교육이 성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하는데 반해 이 두 권의 책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를 주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여학생 B와 C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관심이 가는 이성을 보면 어떻게 하면 그 아이의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만 생각했었는데, ‘나는 그를 균형 잡힌 시선으로 제대로 선택한 것일까?’를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사춘기라는 다리를 건너가기 위해 많은 경험을 하고 있다. 아이들 스스로 사랑과 성에 대해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려는 시도를 하고 있음을 느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열만을 마음에 담은 채 내달리면 상대에게 몰입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어 조금은 고민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성적 판단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랑을 머리로만 할 수는 없다. 이성에게 첫눈에 반할 것을 결심하거나 진정한 사랑을 시작해야겠다고 날짜를 정해 놓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랑은 언제 어떻게 불현듯 찾아올지 모르는 특별한 손님과도 같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중세나 근대가 아니라 제도권 교육과 법으로 인정하는 성인의 기준이 잡혀있는 시대이므로 아이들은 자신이 어른이 될 때까지 사랑을 너무 크게 키우지 말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이 존재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사랑의 다양한 면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고 고민을 풀어놓을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 두 권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아이들은 피임기구나 육체적 변화에 대해서도 나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도 어디선가에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조금 편하게 궁금증을 해소 할만 한 곳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학을 맞은 요즘, 지금이야말로 아이들과 부모, 그리고 친구들과 건강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그들이 예쁘고 단단한 사랑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박은경 박은경의파워독서 원장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에듀동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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