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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인문학] 일제강점기, 농민의 '고향'에서 해방을 꿈꾼다!

-일제강점기 고향에 돌아간 '김희준'의 눈으로 보는 농촌의 현실
-학생 길잡이 중고생 진로·진학 월간지 '나침반 36.5도' 다시보기



경향소설의 기념비적인 작품, 이기영 <고향>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19년 3월 1일, 일제에 의해 나라가 강제로 병합된 뒤 고통스러운 식민지 생활을 해야 했던 조선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거리로 뛰쳐나왔고, 목이 터져라 만세를 외쳤다. 당시 2,000만이었던 조선의 인구 약 10분의 1인 약 200만 명이 참가한 엄청난 시위였다.

전례 없는 우리 민족의 거센 저항에 일제는 통치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전처럼 헌병 경찰을 내세워 폭력으로 조선인을 억압하던 ‘무단 통치’가 아닌, 조선의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는 이른바 ‘문화 통치’를 시행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겉으로는 조선인을 존중하는 척하며 뒤로는 조선인들을 더욱 교묘하게 감시하고 탄압하는 ‘민족 분열 통치’였다. 민족 분열 통치가 심화되던 1920년대 중반, 우리 민족을 이간질하고 수탈하는 일제의 통치 방식으로 인해 농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바로 그 당시 일제강점기 몰락해 가는 농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형상화한 이기영의 <고향>을 읽어보자.


- 이 기사는 <나침반 36.5도> 매거진 3월호 p.76에 6p 분량으로 수록된 내용입니다.
- <나침반 36.5도> 매거진을 읽고 학교생활기록부 독서활동에 기록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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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기영 (1895~1984)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농민소설 작가. 호는 민촌(民村). 1895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고 1918년 논산 영화여학교에서 근무하다 3·1운동을 계기로 현대 문학예술에 관심을 갖게 됐다.

1922년 일본 동경 세이소쿠 영어학교에서 유학하던 중 관동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했는데, 이 기간 동안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게 된 그는 1924년 <오빠의 비밀편지>로 등단한다. 1925년부터 카프(KAPF,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 활동을 주도하면서 경향문학의 대표작가로 독보적 위치를 점하다 1945년 해방 직후 월북했다.

대표작으로는 단편소설 <농부 정도룡>, <종이 뜨는 사람들>, <홍수>, 중편소설 <서화(鼠火)>, <돌쇠>, 장편소설 <고향>, <인간수업>, <두만강> 등이 있다.


식민지 조선 농민의 삶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고향>


이기영의 <고향>(1933)은 조선일보에 약 10개월간 250여 회에 걸쳐 연재된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이광수의 <흙>, 심훈의 <상록수>와 함께 한국 농촌소설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이야기는 식민지 시대의 농촌 현실을 배경으로 지주와 소작인 사이의 대립을 중심으로, 노동자로 각성해 가는 몰락한 농민들, 빈농과 노동자들의 투쟁 모습 등이 나타난다. 농촌의 정황과 농민들의 의식 성장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도 농민들의 실천적인 행동을 담아내고 있다.

[줄거리] <고향>은 일본에서 유학을 하다 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지식인 ‘김희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진보적 이념에 눈을 뜬 그는 자신이 유학을 떠나기 전보다도 더 황폐해진 고향의 변화를 위해 직접 소작인이 돼 농사를 지으며 농민을 위한 계몽 활동을 펼친다.

이 과정에서 희준을 중심으로 한 소작인들은 마름 안승학과 갈등을 빚게 되는데 이 싸움에서 농민들은 결국 ‘안승학’의 양보를 얻어낸다.


<고향> 본문 읽기


<고향>의 배경은 1920년대 중반의 충청도 원터 마을이다. 작품 속에서 이 마을은 전형적인 농촌이면서도 읍내를 가까이에 두고 있어 당시 근대화의 영향권 아래에 놓여 있는 지역이다. 5년 만에 귀국한 희준이 깜짝 놀랄 정도로 읍내는 급격한 도시화, 근대화의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근대의 물결은 ‘고향’ 원터 마을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고, ‘난데없는 제사 공장’이 들어서서 일시적으로 농촌 지역의 노동 수요를 창출하는 한편, 인근의 처녀들을 노동자로 전환시키고 있었다.



2. 돌아온 아들


김희준(金喜俊)이는 동경에서 나온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오 년 동안에 고향은 놀랄 만큼 변하였다. 정거장 뒤로는 읍내로 연하여서 큰 시가를 이루었다. 전등, 전화가 가설되었다.

C사철(私鐵)은 원터 앞들을 가로 뚫고 나갔다. 전선이 거미줄처럼 서로 얽히고 그 좌우로는 기와집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중략) 그러나 그동안 변한 것은 그뿐만 아니었다. 상리로 올라가는 넓은 뽕나무밭 ―. 개울 옆으로는 난데없는 제사 공장이 높은 담을 두르고 굉장히 선 것이었다. 양회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가 밤낮으로 쏟아져 나왔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이 밭 가운데는 뽕나무가 약간 심기고 한 귀퉁이에는 잠업 전습소(蠶業傳習所)라는 누에 치는 강습소가 빈약한 널판집 십여 간 속에 붙어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농촌 지역으로 침투한 자본은 농민들의 생활을 여지없이 파괴시킨다. 1920년대 중반은 자본주의적 토지 소유 관계를 목적으로 일제에 의해 실시된 ‘토지 조사 사업(1910~1918)’과 산미 증산 계획의 여파까지 겹친 시기다.

따라서 소박하나마 평화로운 생활을 누리던 소지주와 자작농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하면서, 급격한 계층 분해의 양상을 띤다. 가혹한 소작료는 기본이요, 곡가는 마치 연중행사처럼 폭락하고 더불어 고리대금업까지 판을 치면서 농민을 극심한 기아와 죽음으로 내몬다.

빚을 감당하기 버거워 자살한 박 서방의 일이나 술지게미로 겨우 연명해 나가는 농민들의 생활은, 극도로 궁핍해진 농촌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는 일본, 혹은 일부 한국사학자들이 ‘식민지를 통해 조선 사회가 근대화 될 수 있었다’라고 주장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이 실제로 얼마나 허구였는지 알 수 있다.



4. 춘궁


아래 장터 영생 양조소(永生釀造所) 문 앞 광장에는 오늘도 남녀노소의 군중이 몇 겹으로 둘러서서 목을 길게 빼들고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제가끔 빈 그릇을 들고 있다. 누루통통한 얼굴에 초라한 의복으로 간신히 살을 가리고 있는 그들은 흉년을 만난 피난민을 방불케 한다. 사실 그들은 먹을 것이 없었다.


5. 마름 집


원칠이는 십여 년 전만 해도 논섬지기나 농사를 짓고 큰 소를 먹이기까지 했는데 어느 해 흉년이 든 데다가 그해 겨울에 친상을 당하게 되자 상채를 몇 십 원 지기도 했지마는 그 뒤로 웬일인지 형세가 차차 줄기 시작하더니 어느 틈에 지금과 같이 가난뱅이로 떨어지고 말았다.

집안이 치패해 가는 꼴을 본 인동이는 보통학교 이 학년을 중도에 퇴학하고 부친과 힘을 합하여 농사를 악발리 지었다. 그래도 집안 형편은 갈수록 가난을 파고들 뿐이었다.

<고향>은 위와 같은 1920년대 중반의 사회적 현실을 배경으로 하여 농민들의 주체적 각성과 노농 동맹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작가 이기영은 이러한 문제를 이끌어 나갈 중심인물로 이 작품의 주인공인 김희준을 내세운다.

그런데 김희준은 동경 유학생이지만 이전의 농촌소설의 계몽적 지식인상이나, 다른 프로농민소설의 관념적 지식인상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 그는 폐쇄된 농민 의식을 깨우치고자 노력하는 인물이지만, 소소유자적 이기주의에 부딪혀 좌절하기도 한다.

또한 보수적이고 숙명론적 인생관을 지녔고, 자신의 불행한 조혼과 연애 문제로 극심한 내면적 갈등을 겪기도 하며, 자신 속에 은근 내재돼 있는 인텔리 근성과 소시민적 패배주의와 싸우기도 한다.

이렇듯 주인공 김희준이 관념적 계몽성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덕에, 그로 하여금 농민들의 생활 가운데로 침투해 그들의 문제를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



11. 달 밤


그는 동무들을 격려하며 일을 보다가도 가끔 이와 같은 적막을 느끼었다.
그런 때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웃고 떠들어도 자기만은 산중에 홀로 있는 사람같이 의식의 간격을 자아낸다.
‘이까짓 일을 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담!’
그는 자기의 생활이 무의미한 것 같았다. 인간이란 이렇게 하찮은 존재인가 하는 가소로운 생각도 난다.

그는 금시로 허무한 생각이 들어 가서 만사가 무심해졌다.
'무엇 때문에 사는가? ―. 놈들은 모두 조그만 사욕에 사로잡혀서 제 한 몸 생각하기에 여념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말로나 글로는 장한 소리를 하지만 뱃속은 돼지같이 꿀꿀거리는 동물이야! 그것들과 같이 일을 해보겠다는 나 자신부터 같은 위인이 아닐까?’ …(중략)

그러다가도 어떤 박자로 열이 올라서 다시 일에 열중할 때는 금시로 그는 어떤 희망에 날뛰어서 낙관을 하게 했다.
그‘ 렇다! 그들도 사람이 아닌가. 잘 지도하면 된다.’
마치 그는 숨죽었던 모닥불이 한동안 검은 연기만 토하다가 별안간 불길을 확 내솟듯이 청년의 왕성한 ‘열정’이 모든 곤란을 무찌르고 일어났다.
그러나 지금 희준이는 다시 고적하였다. 그는 김빠진 맥주처럼 맥없이 들길을 걸어갔다.

<고향>에서의 농민들은 단지 수동적인 계몽의 대상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비록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주인공 김희준을 각성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12. 김 선달


「말이 났으니 말이지 ― 참 아저씨도 아까 그러한 말씀을 합디다마는 그까짓 청년회는 무엇하러 가는 겐가? 그까짓 것들하고 무슨 일을 같이하겠다고. 하긴 자네가 나온 뒤로는 좀 달라진 것도 같데마는! 어떻게 했으면 오늘은 심심풀이를 잘할까? 하는 유복한 자식들이나, 그렇지 않으면 제 에미 애비가 뼛골이 빠지게 일을 해서 보통학교나마 공부를 시켜 놓으니까, 번둥번둥 처먹고 놀면서 ‘공’인지 급살인지 치러 까지르는 것들이 무슨 제법 큰 일을 하겠다는 말인가. 흥! 그래도 내세우는 말들은 장관이지 ―. 뭐? 그런 운동을 하면 몸이 튼튼해지고 먹은 게 소화가 잘된다고! 아니 못먹어서 부앙이 나 죽을 놈이 부지기수인데 돼지죽으로만 알던 지게미도 못 얻어먹어서 양조소 굴뚝을 하누님 쳐다보듯 하고 한숨을 짓는 이러한 살얼음판인데, 그래 기껏 걱정이 밥 먹은 것을 삭일 걱정이로구먼! 천하에 기급을 할 놈들 같으니!」

김 선달은 가래침을 탁 뱉으며 담뱃대로 상앗대질을 한다. 이때 희준이는 마치 그 말에 자기가 모욕을 당한 것 같아서 무색하기가 짝이 없었다. …(중략)

희준이는 김 선달에게서 무슨 자기와 공통 되는 것을 발견한 것 같은 것이 있자 심중에 진득한 생각을 갖게 하였다.
‘그렇다! 참으로 그런 자식들과 무슨 일을 할 것이냐?’
그는 비로소 자기의 가진 신념이 더욱 굳어지는 것을 느끼는 동시에 다시 한편으로 자기의 인테리 근성을 자책하기 마지않았다.

이 작품은 후반에 이르면 김희준을 중심으로 뭉쳐진 농민들의 의식이 수해를 계기로 마름 안승학과 대립하게 되는 소작 쟁의의 과정, 인순과 옥희(안갑숙)를 중심으로 한 제사 공장의 파업 과정을 보여준다. 식민지 현실의 상황을 포착하고, 또 인물들의 형상화에 있어 <고향>은 이전의 계급농민소설이 한계로 가지고 있던 도식성과 관념성에서 벗어났다.

■ <나침반> 3월호 해당 페이지 안내

* 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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