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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자녀 논란에 수시 폐지하라? 교육계가 경계하는 이유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 이후 입시 공정성 논란이 다시 뉴스의 중심에 섰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54)의 딸 조모 씨(28)를 둘러싼 입시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지난 20일 조 씨가 한영외국어고 재학 시절 단국대 의대에서 2주가량 인턴을 하고 의학논문 ‘제1저자’로 등재되는 특혜를 받은 뒤 이를 ‘입시 스펙’으로 활용해 고려대 이과계열에 수시전형으로 입학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조 씨를 둘러싼 입시 비리와 교육 특혜 의혹은 조 씨가 고려대 졸업 후 진학한 서울대 환경대학원과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은 물론 외고 입학 과정까지 일파만파로 확대됐다. 관련 대학 학생들과 시민단체는 조 씨의 입시 비리 의혹 규명을 촉구하며 잇달아 집회를 열었고, 검찰은 지난 27일 서울대, 고려대, 단국대, 부산대, 한영외고 등을 전격 압수수색하기에 이르렀다.

치열한 격론이 오가는 조 후보자의 자질 논란과는 별개로 이를 바라보는 교육계의 시선은 복잡하다. 고위 공직자 검증 과정에서 불거진 입시 비리 의혹이 급기야 검찰 수사로까지 번지면서 교육계는 대입제도 개편안을 내놓은 지 불과 1년여 만에 또다시 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맞닥뜨리게 됐기 때문. 교육계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조 후보자 딸의 문제로 전체 논의가 다시금 ‘수시 vs 정시’라는 극단적인 프레임에 갇히는 상황이다. 제도 개혁 논의가 자칫 대결구도로 흐를 경우 장기적 시각으로 접근해야 하는 교육과 입시 전반을 휘청이게 할 수 있어서다.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이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조국 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 앞에서 입시 비리 규탄 및 수시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서울=뉴시스 



입시 비리 의혹에 “학종 폐지하라”… 왜?


조 후보자 딸을 둘러싼 입시 비리 의혹으로 ‘폐지’ 여론이 쏟아지고 있는 대상은 수시, 보다 정확히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다. 조 씨가 교수인 조 후보자 부부가 가진 인맥 등을 통한 특혜로 평범한 학생은 좀처럼 갖추기 힘든 ‘입시 스펙’을 쌓았고 이를 통해 많은 수험생이 선호하는 상위권 대학과 대학원을 손쉽게 진학했다는 것이 의혹의 주요 내용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론의 시선은 ‘적법성’보다 ‘공정성’에 쏠려 있다. 조 씨가 입학하는 과정에서 부정적인 방법을 쓰지 않았다 하더라도 집안 형편 등의 영향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입시에 성공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수능 성적을 중심으로 하는 정시나 학생부 교과 성적을 위주로 평가하는 수시의 학생부교과전형과 같은 전형보다는 학생들의 활동내용을 통해 역량, 잠재력 등을 종합적으로 정성 평가하는 학종이나 일부 남아있는 특기자전형에 화살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 특히 학종은 조 씨가 논란이 된 논문을 통해 입학한 전형인 입학사정관제를 이어받은 전형인데다 단계적 폐지 수순에 들어간 특기자전형과 달리 오늘날 대입에서도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여론의 집중 포화를 받고 있다.

실제로 조 씨의 입시 비리 의혹이 제기된 직후인 지난 21일 조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적선현대빌딩 앞에서는 시민단체인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이 조 후보자 사퇴 및 수시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금수저 전형으로 전락해 학생과 학부모의 정직한 노력을 유린하는 수시를 폐지하고 공정한 수능 위주의 정시로 대입제도를 전환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시확대추진 전국학부모회와 교육바로세우기운동본부도 지난 2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조 후보자 자녀의 대학 입학 논란 감사 및 수시 폐지를 촉구했다.

서울대, 고려대 등 관련 대학 학생들도 잇달아 집회를 열고 조 씨 자녀의 입학 과정을 철저히 규명하라고 밝히며 학종의 문제점도 함께 지적했다. 특히 서울대 학생들은 지난 23일 캠퍼스에서 진행한 촛불집회에서 ‘누가 학종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조국을 보게 하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기도 했다. 서울대의 슬로건인 ‘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는 문구를 변형해 공정성 논란에 휩싸인 학종을 꼬집은 것이다.



지난 2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중앙광장에서 조국 후보자 자녀의 고려대 입학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학내 집회를 연 고려대 학생들. 서울=뉴시스

 

‘공공의 적’ 학종, 교육계에서는 왜 선호할까

사실 입시 공정성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학종에 대한 여론이 악화된 것이 오늘내일의 일은 아니다. 국정농단 주범인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이나 교무부장인 아버지가 쌍둥이 딸에게 시험지를 유출한 이른바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 등이 터질 때마다 같은 날 같은 시험을 치러 성적대로 대학에 입학하는 ‘정시’ 옹호론이 제기됐고 이와 가장 상반되는 위치에 있는 ‘학종’ 폐지론이 그 뒤를 이었다. 여기에 올 초에는 특권층이 학종 입시를 위해 고액 입시 컨설턴트를 고용하는 내용을 그린 드라마 ‘스카이캐슬(SKY캐슬)’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학종은 다시 한 번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교육계에선 여전히 학종을 미래 교육에 부합하는 입학전형으로 여기며 옹호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당장 학생을 선발하는 주체인 대학이 대체적으로 학종을 선호한다. 평가에 경제적·시간적 비용이 더 들더라도 학생 개개인의 상황을 고려해 역량과 잠재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대학의 인재상에 좀 더 부합하는 인재를 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성적에 맞춰 입학한 학생보다 비교적 대학에 대한 충실도와 만족도가 높다는 점도 대학이 학종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다. 성적에 따른 ‘줄 세우기’식 입시를 벗어나면 입시 성적에 따라 한국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힌 ‘대학 서열’이 완화될 수 있다는 기대도 한몫한다. 실제로 <에듀동아>가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10개 대학의 입학처장을 릴레이 인터뷰한 결과 이들 대학 모두 학종에 대한 깊은 신뢰를 나타냈다.

일선 고교에서도 학교생활 전반의 내역을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학종이 고교 교육 정상화에 기여한다는 평가가 전반적이다. 이 때문에 교육 현장에선 입시 관련 이슈로 학종을 향한 과격한 논의가 전개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한 대학 입학처 관계자는 “대입제도는 교육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장기적 시각에서 안정적으로 꾸려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번 논란과 같이 국민적 관심이 큰 입시 이슈가 터지면 여론에 의해 대입제도가 단편적으로 영향을 받는 일이 드물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주석훈 서울 미림여고 교장도 “학종은 학교생활을 중심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고교 교육 정상화에 크게 기여한 전형”이라며 “설령 문제가 있더라도 폐지와 같은 과격한 논의보다는 보완을 위한 생산적 논의가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미래 향한 교육개혁은 시작됐는데…

교육계에서 ‘수시 폐지, 정시 확대’라는 과격한 논의를 경계하는 이유는 또 있다. 2015 개정 교육과정과 고교학점제를 도입하는 등 입시 위주 교육을 탈피하고 학생 개개인의 다양성을 살린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개혁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수능 성적에 따른 ‘줄 세우기’식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정시를 확대하는 것은 교육개혁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다. 우리나라처럼 상위권 대학 진학 수요가 높은 사회에서 입시제도 손질 없이 교육환경을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미 앞서 진행된 여러 공정성 논란으로 학종에 대한 대대적인 보완 작업이 단계적 계획에 따라 이뤄지고 있으며 정시 또한 2022학년도부터 30% 이상 확대된다는 점 또한 조국 자녀 논란에 잇따르는 ‘정시 확대’ 여론에 조심스러운 이유로 작용한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대입제도에 대한 공정성, 투명성 논란을 이유로 교육부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지난해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과 고교 교육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엔 학종 공정성 제고방안도 담겼다. 교육부가 지난 27일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학생부종합전형을 위해 교육부는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설명자료를 내고 학종 도입 역사와 공정성 확보 조치 경과 등을 갑자기 설명한 점 또한 이러한 배경이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주석훈 교장은 “현재 제기되는 대입제도에 대한 공정성 논란은 이미 지난 3년간의 공론화 과정과 숱한 논의를 통해 보완책이 마련됐고 2022학년도 대입전형안도 나왔다. 여기에 고교학점제와 같은 교육혁신도 시작됐는데 이러한 전반의 이해 없이 과거의 잣대로 학종과 수시를 폐지하고 정시를 확대하라는 과격한 주장은 선동과 다를 바 없다”며 “그런 선동이 국가교육의 근간을 흔들고 교육혁신 자체를 무력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입시업계에서도 같은 의견이 나왔다. 유성룡 1318대학진학연구소장은 “지금 제기되는 논란에 따른 새로운 대입전형안과 공정성 보완책 등이 나와 현재 시행되고 있거나 시행을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깊이 있는 문제 제기라고 보기 어렵다”며 “입시제도는 장기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하며, 다른 이해관계보다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정확한 진단과 대안이 있는 비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경회 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입시에 관한 관심이 높다 보니 대입제도도 여론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경향이 있는데, 여론에 휩쓸리면 방향을 잃을 수밖에 없다”며 “인재 선발에 있어 ‘수시와 정시’라는 이분법적 논의와 공정성을 위한 획일화가 이뤄지는 것은 특히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듀동아 최유란 기자 cy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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