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9 (화)

  • 흐림동두천 6.7℃
  • 구름조금강릉 11.5℃
  • 흐림서울 8.6℃
  • 대전 11.9℃
  • 맑음대구 13.1℃
  • 구름많음울산 12.6℃
  • 구름조금광주 14.1℃
  • 구름많음부산 13.4℃
  • 구름많음고창 10.7℃
  • 맑음제주 15.6℃
  • 구름많음강화 7.9℃
  • 흐림보은 9.9℃
  • 흐림금산 9.7℃
  • 맑음강진군 14.8℃
  • 구름많음경주시 13.8℃
  • 맑음거제 13.8℃
기상청 제공

오피니언

[권재원 칼럼] 공정한 시험이라는 미신 속에 감추어진 희생, 여성

(사진=kbs 캡처)

[에듀인뉴스] 교육학 학위도 없고 현직 교사도 아닌 다만 전직 사교육업자들이 교육 전문가 행세를 하는 세상이다. 공교롭게도 그들은 학종을 교사들의 ‘미신’이라며 조롱하기까지 한다. 대통령마저 이들의 손을 들어주며 수능 정시 확대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학종이 미신일까? 혹시 이 역시 수능으로 대표되는 ‘시험’에 대한 공정성의 믿음이야 말로 미신이 아닐까?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시험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모든 지원자가 똑 같은 문항을 풀도록 설계된 표준화 시험이다. 시험이라고 하면 당연히 이런 표준화 시험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역사는 생각보다 짧다. 가령 조선시대 과거시험에는 정답이 없었다.


모든 응시자가 정답이 정해진 똑 같은 문항 세트를 푸는 시험은 1950년대 이후 미국에서 도입되었다. 요즘은 진보 교육 쪽에서 이런 획일화된 시험문제를 비판하지만, 당시에는 진보적인 교육학자들이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평등이라는 이념 때문이다.


시험에는 눈이 없다. 따라서 남성, 백인, 중산층을 여성, 소수민족, 빈곤층과 구별하지 않는다. 누구나 정답에 체크하면 득점이며, 오답에 체크하면 감점이다. 이 얼마나 공정하고 평등한가?


그러나 불과 20년만에 공정성의 신화는 깨졌다. 표준화 시험이라 할지라도 사회경제문화적 배경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음이 밝혀진 것이다. 우선 몇 개의 선택지 중에 정답을 고르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표준화 시험의 특성상 그 선택지에 들어가는 용어나 개념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 선택지에 들어가는 용어나 개념들은 주로 중산층 학생들이 교과서 뿐 아니라 일상 생활, 가정에서도 자주 보고 듣는 것들이 많다.


또 표준화 시험을 준비하는 시간, 이른바 ‘시험공부’ 역시 중산층 이상의 계층에게 유리하다. 시험공부를 하려면 방해 받지 않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자기만의 공부방이 있느냐 없느냐는 시험공부에 아주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1980년대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학생 가정환경조사서에 공부방이 따로 있는지 물어보는 경우를 기억할 것이다. 그 시대에는 형제가 보통 3-4명 정도였기 때문에 공부방이 있다는 것은 방 네 개 이상의 집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중산층 이상이 아니면 불가능한 조건이다.


더구나 시험공부에는 돈이 든다. 시험공부는 교과서를 외운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시험문제의 다양한 패턴을 미리 익혀 두지 않으면 설사 교과서를 달달 외우더라도 주어진 시간 안에 그 많은 문제를 풀어 맞출 수 없다. 시험문제의 다양한 패턴을 연습해야 한다. 교재를 구입해서 연습을 해야 한다. 사교육을 받으면 금상첨화다.


이처럼 표준화 시험은 매우 공정해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 큰 불공정을 감추고 있는 기만적인 평가 방식이다. 더구나 표준화 시험은 이 공정성을 빌미로 창의성, 도덕성, 비판적 사고능력 등과 같이 평가해야 할 많은 부분들을 포기한 불완전한 평가이기도 하다. 공정성 하나 내 걸고 이 중요한 것들을 포기했는데 공정성마저 의심받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유독 표준화 시험이 공정하다는 신화가 널리 퍼져 있는 까닭은 빈곤층 학생이 머리띠 동여매고 독하게 공부하여 명문대에 진학하고 높은 지위에 올라간 옛 신화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아들과 딸'은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했던 70~80년대 사회상을 통렬하게 풍자했다. 후남이 쌍둥이 남매인 귀남의 뒷바라지를 위해 꿈을 포기했을 때, 여성 시청자들은 후남에게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한숨을 쉬고 눈물을 흘렸다.(사진=mbc)
드라마 '아들과 딸'은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했던 70~80년대 사회상을 통렬하게 풍자했다. 후남이 쌍둥이 남매인 귀남의 뒷바라지를 위해 꿈을 포기했을 때, 여성 시청자들은 후남에게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한숨을 쉬고 눈물을 흘렸다.(사진=mbc 캡처)

지금 그 머리띠들이 정권의 중요한 자리들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성공 뒤에는 잔혹사가 감춰져 있다. 그들은 자기 재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고 믿겠지만 그 성공의 배후에는 다른 가족의 엄청난 희생이 깔려 있다. 그들이 시험공부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다른 가족들이 희생한 것이다.


한 사람의 시험공부를 위해 다른 가족 구성원들의 자원을 빼앗아 집중시킨 것이다. 그 수혜자는 거의 예외없이 아들이고, 희생자는 그 누이들이었다.


머리띠 동여맨 가난한 집 아들에게 중산층 못지 않은 시험공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수 많은 딸들이 고등학교 혹은 중학교만 마치고 집을 떠나 공장과 사무실에 다녔다. 덕분에 아들에게는 노동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공부방, 그리고 학비와 책값이 생겼다.


다른 가족들도 칼잠을 자는 한이 있더라도 이 아들 하나를 위한 공부방만은 어떻게 쥐어짜더라도 만들어 주었다. 그 딸들이 과연 그 아들보다 재능과 열성이 부족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수능 정시가 공정하다고 입을 모으는 사람들 중 유독 50대 이상 남자들이 많다. 그들은 시험의 공정성의 산 증거로 자신을 내세운다. 그나마 그들 중 ‘우골탑’이니 ‘향토 장학금’이니 하면서 고생해서 학비 마련한 부모님에 대한 감사를 드러내는 쪽은 염치 있는 편이다.


이들은 신기할 정도로 얼마든지 명문대학에 진학할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빠, 혹은 남동생을 위해 기회를 포기한 누이들의 희생은 모른척 한다. 아니, 정말 모른다.


개천에서 용난다? 개천에서 그 용 한 마리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미꾸라지, 가재, 개구리가 갈리어 나갔는지 모른다. 그들을 갈아 만든 엑기스를 먹고 단 한 마리의 용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진 용들이 옛 방법이 공정한 것 아니냐며 우기고 있다.


아직도 시험의 공정성을 신화처럼 믿고 있는, 그리하여 노력으로 성공했다고 믿고 있는 우리나라의 이른바 자수성가한 남성들은 누이들의 희생 없이 과연 자신들이 중산층 학생들과 공정한 시험 경쟁을 할 수 있었을지 되돌아보기 바란다.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관련기사

9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