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7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교육뉴스

[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 죄송하지만, 체벌은 끝났습니다

기사 이미지

얼마 전 후배로부터 자녀의 체벌과 관련한 ‘웃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정에서 자녀들 간에 벌어지는 사소한 다툼은 끊이지 않는 연속극과 같아서 이 또한 가족만이 연출할 수 있는 드라마이고, 자녀가 성장하는 데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입니다.

후배의 이야기는, 어느 날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이 중학교 1학년인 누나와 말다툼을 하다 아들이 누나에게 욕설을 해서 이내 아빠에게 일러바쳤답니다. 주범은 어느새 자기 방으로 줄행랑을 쳤고, 욕설은 어떤 상황에서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후배는 베란다에 있던 물걸레 자루를 뽑아서 아들 방으로 향했습니다. 아들은 문 반대편에서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물기 묻은 말투로 “제발 때리지 말라”고 외쳤답니다. 그 말을 들은 후배는 더 화가 나서 문을 쿵쾅거렸고 끝내 아들은 문을 열어주었지만, 후배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아들은 안 맞으려고 방어 자세를 취하면서도 스마트폰을 치켜들고서 후배를 촬영하고 있더라는 겁니다.

“안 때린다고 어서 약속해! 잘못한 거 알고 있고, 나도 후회하고 있다고.”
“휴대폰 안 치워? 어디서 누나한테 욕을 해?”
“아빠가 때리면 난 경찰에 신고할 거야. 그리고 이 영상 증거로 줄 거야!”   

후배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힘으로 붙잡아 아들을 때리려고 했지만 재빠른 아들은 죽기 살기로 도망을 다니면서도 마치 특종 장면을 놓치면 안 된다는 듯 촬영은 포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아내의 중재로 야단법석은 일단락되었지만, 후배는 이번 일로 조금 충격을 받은 듯했습니다.

아마 이러한 황당한 사례가 후배 가정만의 에피소드는 아닐 겁니다. 요즘 아이들의 학습력은 뛰어나다 못해 매우 엉뚱하며, 자신의 스마트폰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정도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 또래끼리 터득한 ‘생존방식’이자 그들만의 비상대책 회의를 통해 얻어낸 ‘대처방안’입니다.

유쾌하면서도 안쓰러워 보이는 후배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체벌’에 대한 심오한 이야기를 그리 심오하지 않게 풀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의하실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부모들은 여전히 체벌을 하고 있으며, 자녀를 위한 체벌은 당연한 훈육이라 여깁니다. 또 저 역시 체벌을 실제로 겪은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일단 체벌은 부모의 ‘사유(思惟)’가 좀 필요해 보입니다. 부모는 체벌의 이유를 ‘자녀의 훈육’이라 말하고, 자녀의 잘못을 교육적으로 수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체벌이 정말 교육적일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되는 이유는 체벌의 방식과 상황 그리고 체벌의 정도가 부모와 자녀에게 다른 감정을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체벌은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사회가 어떻게 해석했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시대의 허락 여부에 따라 허락과 금지가 혼용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체벌을 ‘해야 한다’와 ‘하지 말아야 한다’를 쉽게 논할 수 없는 것이, 우리 부모조차 체벌의 경험을 한 탓에 체벌의 경험이 부모의 당연한 훈육이라며 끈질기게 붙잡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체벌은 보통 물리적인 제재만을 말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물리적  체벌 외에도 일상에서 자녀를 깎아내리거나 무시하고, 치사하게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부모의 정서적 체벌 또한 자녀의 발달과 인지구조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이 정서적 체벌이 물리적 체벌보다 오히려 더 아프고 더 오래간다고 아이들은 말합니다.

제가 만나는 10대 청소년들은 체벌 당시의 감정을 ‘짜증 난다, 무섭다, 겁이 난다, 슬프다, 화가 난다, 공포스럽다, 끔찍하다, 비참하다’라고 표현했습니다. 특히 체벌을 경험한 아이 중 누구도 부모의 기대처럼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게 더욱 놀라웠습니다. 결국, 자녀에게 체벌은 교육의 효과를 기대하기보다 오히려 자녀가 부모에게 ‘반감을 품게 되는 타당한 이유’이자 부모와 벽을 쌓는 ‘착공일’에 불과합니다. 

체벌의 효과성을 두고 그 어떤 연구에서도 교육적으로 효과가 있다는 결과는 없습니다. 대신 체벌에 대한 부정적인 연구 결과는 쉽게 찾을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2016년 미국 텍사스대학교 엘리자베스 거쇼프 교수의 연구는 체벌이 자녀에게 반사회적 행동과 공격적 성향을 심어줄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를  보여줍니다. 이 연구는 장장 50년간의 자료를 분석한 것이라 체벌의 역기능을 부정할 수 없는 연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체벌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체벌로 인해 자녀가 가질 수 있는 ‘폭력의 내면화’입니다. 이러한 내면화는 폭력이 정당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체벌을 당하는 자녀가 표면적으로 문제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서 부모가 안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중요한 진리입니다. 그래서 체벌은 어떻게 효과적으로 교육할 것인가에 대한 ‘지향점’을 찾는 노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체벌에 대한 해답을 김희경 작가의 『이상한 정상 가족』이라는 책의 내용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이상한 정상 가족』이라는 책에는 체벌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익숙한 『말괄량이 삐삐』의 아동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젊은 시절 어느 여성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평소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는 믿음이 강했던 젊은 엄마는 어느 날 어린 아들이 말을 듣지 않자 매로 가르치려고 아들에게 회초리를 가져오라고 시켰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은 회초리를 찾으러 나갔다가 한참 만에 울면서 돌아와서는 엄마에게 작은 돌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초리로 쓸만한 나뭇가지를 찾을 수 없었어요. 대신에 이 돌을 저한테 던지세요.”

아들은 엄마가 나를 아프게 하길 원하니까 회초리 대신 돌을 사용해도 되리라 생각했고, 천진한 아들의 이 말이 비로소 엄마에게 아이의 눈을 통해 상황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아들에게 한 짓이 무엇인지 깨달은 엄마는 아이를 끌어안고 한참을 같이 울었고, 그 순간 자신이 했던 결심, 앞으로는 절대로 아이를 때리지 않겠다는 서약을 잊지 않기 위해 그녀는 아들이 주워온 ‘돌’을 잘 보이는 부엌 선반 위에 올려두었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후배에게 전달해 주고 제안도 했습니다. 이제 이 글을 읽고 있는 부모님께도 같은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부모님, 죄송하지만 체벌은 끝났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자녀를 위해 마음속 ‘돌’ 하나를 간직하며 자녀를 대해주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결국 자녀를 움직이는 건 부모의 체벌이 아니라 눈물이었다는 것도 함께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관련기사

9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