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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뉴스

[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 자녀를 노리는 위험한 '언어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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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글로 대체되어버린 시대에 아이들은 ‘텍스트’라는 글을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어의 지능이 아직 미성숙한 상태에서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언어력만으로 디지털 사회에서 쏟아져 나오는 언어의 생산량을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은 자녀를 노리고 접근해오는 ‘언어의 게임’에 대하여 함께 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중학생이 페이스북에서 ‘스마트폰 무료 나눔’이라는 글을 보고, 스마트폰을 받고 싶은 마음에 ‘나눔’ 신청을 했더니 글을 올린 사람이 “스마트폰을 무료로 받으려면 페이스북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중학생은 순간 개인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꺼림칙하긴 하지만 ‘나눔’이라는 언어가 주는 선량한 의미에 마음이 끌려 개인정보의 의심을 뭉개버리고 맙니다. 그 중학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국 페이스북이 해킹되는 피해를 받고 행여나 자신과 연결된 수백 명의 페이스북 친구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이 사례는 최근 소셜네트워크 플랫폼에서 자녀에게 ‘언어 게임’으로 접근해서 개인정보의 피해를 주고 있는 신종 ‘무료 나눔’이라는 사기 수법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게임’이 제기했던 의문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저작 『논리 철학 논고』에서 세상은 ‘언어’이고, 사실은 ‘문장’이며, 대상은 ‘이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철학적 탐구』에서는 언어는 환경, 문맥, 상황에 따라 달라지며, 사용과 실천에서 드러나는 일종의 ‘게임 놀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단어의 의미는 주어진 ‘언어 놀이’ 안에서 그 단어들이 사용될 때 가장 잘 이해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의 개인정보를 빌려주면 스마트폰을 공짜로 드립니다.’라고 글을 올렸다면 누구나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개인정보’가 주는 언어의 의미가 찝찝하다 못해 위험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또 ‘나눔’이라는 언어 대신 ‘공짜’라는 언어를 사용했다 하더라도 아이들도 이제 ‘공짜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회적 통념을 알고 있어서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나눔’이라는 언어는 지금까지 학습해 온 언어의 상황과 문맥을 완전히 바꿔 놓은 채 우리 아이들에게 착각을 일으킵니다. 

이 ‘언어 게임’은 학교에서 배우는 국어 능력이나 교육학에서 말하는 리터러시와는 좀 다른 개념입니다. ‘언어 게임’은 우리 자녀의 생활 영역 안에서 작동하며 특히, 스마트폰 속 ‘사이버 공간’에서 더 노골적입니다. 예를 들면, ‘사채’를 빌려준다고 하면 아무도 돈을 빌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채’를 ‘대리 입금’이라는 언어로 바꿔 자녀에게 접근합니다. ‘연체 이자’라고 하면 누구나 겁이 나서 돈거래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연체 이자’는 아이들에게 ‘지각비’로 접근합니다.       

또 최근 중고등학생 사이에서 문제가 되는 사이버 도박도 다르지 않습니다. ‘포커’, ‘바카라’, ‘블랙잭’ 같은 언어로 접근하면 아이들은 ‘도박’이라는 단어가 주는 불법적인 이미지 때문에 접근조차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사이버 도박은 ‘사다리’, ‘달팽이’, ‘타조’와 같은 동화 같은 언어로 접근해서 우리 아이들을 ‘타짜’로 만들고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성범죄’입니다. ‘조건만남’이라고 하면 아이들은 당연히 접근조차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조건만남’은 ‘**어장’. ‘돛*배’, ‘심*’ 등 청소년들이 즐기는 ‘랜덤채팅’의 한 모습인 척 친숙한 언어로 접근합니다. 그 밖에 수많은 유튜브 채널과 상업 광고들이 ‘언어 게임’을 통해 벌써 자녀 계층을 ‘구별 짓기’ 하고 있는 것 또한 작은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우리 사회가 점점 더 무례하고 비열해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며, 우리 부모가 자녀의 안전을 위해 더 세심한 통찰을 가져야 한다는 경각심을 느끼게 합니다.

안타깝게도 자녀를 둘러싼 언어는 이제 ‘최소한의 도덕’은 없어 보입니다. 지금의 부모가 청소년이었을 때만 해도 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공익 포스터와 표어’였습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자녀를 지키겠다는 최소한의 사회 윤리였으며, 가장 대중적인 시민교육의 의지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포스터와 표어가 붙어있던 자리에는 개업 광고와 관공서 납세 광고가 대신하고 있고, 심지어는 학교 앞 가로수와 가로수 사이에 ‘아파트 분양 광고’까지 버젓이 내걸리고 있는 지경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회의 태도 변화보다는 부모의 태도 변화에서 해법을 찾으려고 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단어의 의미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하면서 이 ‘언어 게임’에서의 해법을 ‘비판적 통찰’에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언어가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철학적 탐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각하지 말고 관찰하라.”         

이제, 부모의 역할은 ‘비판적 통찰’을 수행하는 데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부모의 ‘자각’입니다. 부모부터 자녀의 변두리 언어에 대한 비판적 통찰이 필요하며, 나아가 더 확실한 방법은 우리 자녀에게 이러한 ‘비판적 사고’를 저장시키는 데 있습니다.  이 ‘비판적 사고’는 우리 자녀가 ‘언어 게임’에서 완벽하게 이길 수 있는 ‘안전장치’인 셈입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비판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면 자녀는 선량한 단어를 보더라도 ‘왜?’라는 사고를 먼저 하게 되고, 다음으로 언어가 제시한 문장을 읽고 관찰을 시도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안전장치의 핵심 부품이 바로 ‘왜?’라는 의문부사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강의에서 ‘좋다, 아름답다’는 누군가의 주의를 끌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 자녀에게 접근하는 언어 또한 언어 자체에 묘약만 발라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유희나 미화를 통해 접근한다는 뜻입니다. 이 때문에 ‘언어 게임’을 단순한 단어의 착각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만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해법은 단 한 가지입니다. 우리 부모와 자녀가 함께 언어를 대하는 자각과 비판적 사고, 언어가 제시한 문장을 이해하는 관찰력을 기를 때 이러한 문제에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을 꼭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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