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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뉴스

[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 자녀의 스마트폰은 ‘폰’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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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당연해서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청소년기 자녀를 둔 부모에게 ‘스마트폰’은 골칫거리입니다. 부모와의 대화에서 쏟아내는 질문의 절반 이상은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줘야 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이었고, 부모마다 의견 또한 꽤 다양했습니다.

스마트폰에 대한 고민은 마치 ‘트롤리 딜레마(Trolley Problem)’를 연상시키듯 레버를 잡고 있는 부모의 어떠한 결정도 완벽할 수 없다는 한계를 보여줍니다. 우측으로 레버를 돌리자니 자녀가 스마트폰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을 지울 수 없고, 좌측으로 돌리자니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스마트폰은 역사적으로 '요즘 자녀' 세대만이 가진 특별한 ‘사물’입니다. 그리고 이 스마트폰은 최첨단 디지털 기술을 장착하여 우리를 마치 사물에 내면이 있는 것처럼 대하도록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환경까지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미국의 시사 평론가인 ‘러셀 베이커’가 말한 『저항주의』처럼 우리가 사는 모든 사물의 목표는 인간에게 저항해서 끝에는 인간을 무너뜨릴지도 모른다는 ‘사물의 역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가장 강력하게 전달하고 있는 사물이 바로 ‘스마트폰’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주는 것이 정당한 것일까? 에 대한 질문은 스마트폰의 ‘필요성’과 연결 지어 생각하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자녀에게 스마트폰의 존재란 소유하지 않으면 또래 관계에서 소외되고 구별되는 동시에 또래 문화를 공유할 수 없는 공백을 경험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지급하고 안 하고의 문제는 선택의 문제라기보다 대안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럼 대안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일부 부모 중에는 스마트폰을 허락하는 대신 사용 시간과 콘텐츠를 스스로 분류할 수 있도록 자율규제를 교육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스마트폰을 허락하지 않는 대신 스마트폰의 부재를 대비해 자녀에게 일정 시간 동안 PC 사용으로 필요한 공백을 채우도록 하는 부모도 있고 또, 자녀와 함께 부모도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가족의 규범을 공동으로 실천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도움이 되었던 것은 북 강연회를 통해 전국에 있는 서점을 방문하면서 그곳에서 만난 아이 중 누구도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아이는 없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부모 손에 이끌려 서점에 도착한 아이 대부분은 스마트폰 대신 ‘책’을 쥐고 있었고, 엄마와 함께 책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로 흥미로웠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예전에 야구장에 가거나 미술관을 갔을 때 야구장과 미술관에서 스마트폰을 하는 아이는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스마트폰에 대한 고민의 해답은 부모의 ‘대안’과 합의된 ‘규범’에서 찾아야 한다는 논리로 압축됩니다. 또, 스마트폰을 허락하지 않겠다면 자녀가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줄 것인지와 또래 관계와의 공백을 어떻게 채워 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함께 뒤따라야겠습니다.

그리고 부모로서 자녀의 스마트폰을 대하는 방식이 ‘허락’에만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줄지 말지에 대한 고민보다 중요한 것은 자녀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의 ‘정체’를 제대로 이해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우리는 스마트폰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은연중에 자녀의 스마트폰을 '전화기'의 개념으로 이해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토록 자녀의 스마트폰에 대해 관대하고 무감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자녀의 스마트폰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해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질문은 중요한 질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자녀의 스마트폰은 ‘폰’일까요? ‘폰’이 아닐까요?" 너무도 당연한 질문 같아 보이지만 분명한 것은 자녀의 스마트폰은 ‘폰’이 아닙니다.

그럼 ‘폰’이 아니면 무엇일까요? 자녀에게 지금의 스마트폰은 ‘폰’이 아니라 초고속 인터넷이 장착된 휴대용 컴퓨터이자 휴대용 카메라이며, 또 휴대용 오디오이자 수많은 영상을 마음대로 골라 볼 수 있는 미디어 플레이어입니다. 여기에 빵빵한 와이파이까지 있다면 우리 자녀는  얼마든지 지역과 국가를 넘나들 수 있는  무비자 여행객이 됩니다.

이렇게만 보면, 마치 스마트폰이 자녀에게 완벽한 사물로 보이지만 사실 스마트폰이 감추고 있는 것은 다른 데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스마트폰 안에 존재하는 ‘사이버 공간’입니다. 이 ‘사이버 공간’은 ‘무통제’, ‘무감각’, ‘무보호’라는 자녀를 위협하기에 최적화된 3대 요소를 갖춘 채 재미와 다양성으로 자녀에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자녀의 스마트폰 속에는 저 같은 경찰관도, 학교 선생님도, 게다가 부모는 더더욱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런 예를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부모 중 밤늦은 시간에 자녀를 술집이 밀집한 골목길에 방치하고 돌아올 수 있는 부모가 몇 명이나 될까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죠. 그런데 어찌해서 스마트폰은 술집보다 더 위험한 골목길이 많은 곳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녀가 늦게까지 스마트폰을 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을까요? 손가락 터치 한 번이면 선정적인 콘텐츠를 볼 수 있고, 또 터치 한 번이면 왜곡된 정보를 학습할 수 있는가 하면, 심지어 터치 한 번이면 우리 자녀가 사이버 도박에 입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자녀의 스마트폰인데 말입니다. 맞습니다. 저는 지금 스마트폰에 대한 부모의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부모는 자녀의 스마트폰을 허락하고, 안 하고의 문제 이전에 스마트폰이 ‘폰’이 아니라는 정확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앞으로 자녀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그 어떤 ‘스마트폰의 역습’도 대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이번 글에서 중요한 두 가지를 얻었습니다. 하나는 스마트폰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곧 자녀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태도가 될 거라는 사실과 두 번째는 스마트폰의 사용에 있어서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것이 바로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규범의 완성’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부모에게 이 두 가지가 중요한 이유는 스마트폰이 자녀 손에 쥐어지면서 부모는 점점 더 자녀를 관찰하기 힘들어졌고, 또 스마트폰 속 자녀의 행동을 알 방법이 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부터 자녀의 스마트폰은 절대 ‘폰’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자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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