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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뉴스

[진학사 홍성수의 “바른 공부”] 무협지를 읽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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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나는 성적이 매우 우수한 친구를 곁에 두고 공부를 했던 적이 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도 주위에 공부를 별로 많이 하지 않는 것 같은데, 성적이 잘 나오는 친구를 본 적이 있을 것 같다. 나의 친구도 그런 부류였다. 학교 수업시간에 잠도 많이 자고, 쉬는 시간에는 농구공을 들고 뛰쳐나가고, 야자 시간에 공부만큼 다른 짓도 많이 하는 학생이었다. 물론 나도 나름대로 수업시간에 많이 자고, 쉬는 시간에도 자고, 야자 시간에도 자고 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왜 나는 저 아이처럼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을까 하며 억울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궁금하기는 했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무슨 교재로 문제를 푸는지, 필기 내용이 나랑 차이가 많이 나는지 등등이 궁금했던 것 같다. 그래서 곁눈질을 가끔 했던 것 같다.

공부를 별로 안 하는 친구였지만, 곁눈질을 하며 본 친구의 모습은 공부를 할 때 정말 높은 집중력으로 남들 신경 안 쓰고 집중한다는 점이 좀 특별해 보였다. 흔히 하는 말 대로 “공부할 때는 공부하고 놀 때는 노는” 전형적인 학생이었다. 그런데 또 하나 특별해 보이는 것이 있었다. 수학이나 과학, 영어 등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국어 만큼은 어떤 교재로도 문제 푸는 모습을 못 봤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와 같은 내신 기간이 아니면 국어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특이하게 모의고사 성적은 국어가 항상, 거의 만점에 가까웠었다.

국어 공부를 하는 모습을 잘 보지 못했다고 했는데, 이 친구가 책을 아예 읽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야자 시간이면 선생님 눈을 피해 무협지를 그렇게 많이 읽었다. 나는 무협지나 판타지와 같은 분야에는 관심이 없어 친구가 있는 책들이 어떤 책인지 잘 몰랐지만 책에 붙은 번호만 보더라도 20~30여권씩 되는 정말 긴 분량의 책들이었다. 보통의 남학생들이 몇 번씩 읽는다는 필독도서 삼국지 10권짜리도 힘들게 읽고, 태백산맥이나 아리랑 같은 책들도 읽다 지쳤던 나로서는 정말 신기했다. 그 친구는 그 긴 책을 정말 빨리 읽어 내려갔다. 삐딱하게 앉아서, 조금 과장을 덧붙이자면 정말 몇 자 읽지도 않는 것 같은 스피드로 책장을 넘기곤 했다.

그 때는 사실 그냥 머리가 좋은 놈인가 보다 하고 넘겼었다. ‘다른 것도 잘 하는데, 국어적으로는 특히 머리가 좋은가 보네.’하고 말이다. 사실 별로 이런 생각까지 하지도 않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었다. 그런데 직장을 갖고 이후에 학생들을 상담하면서, 또 요즘 까다로워진 수능 국어에 힘들어 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그 친구 생각이 자꾸 난다. 정보를 찾을 때 네이버나 구글보다 유튜브를 더 많이 활용하는 요즘 세대는 현 시대에 맞는 인재들로 성장하겠지만, 글로 이루어진 것에서 중요한 정보를 기억하고 찾아내기에 지금 세대는 글을 읽는 경험이 너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내 친구는 무협지를 다독하면서 글에서 중요한 내용만을 간추려 읽어 내리는 기술을 습득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또 그렇게 다독하다 보니 중요한 내용을 머리속에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은 것이 아닐까 싶다. 어느 나무가 빽빽한 숲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거미줄에 매달려 바람이 멈추기를 기다리는 거미와 더 거센 바람이 불어 거미줄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하루살이 사이에서 벌어지는 두 검객사이의 눈빛 교환을 하나하나 다 읽어 내려간 것이 아니라, 그 숲에서 일어난 결투와 그 결과에 주목하면 중요한 정보를 빠르게 캐치해 내며 읽어 내려갔기 때문에, 대충 읽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서 중요한 정보만을 쏙쏙 꼬집어 내려가며 많은 책을 읽지 않았을까?

국어 성적을 잘 받기 위해서는 글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그리고 또 빠르게 읽어 내려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은 어떤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선생님이 알려주신 것들을 새로운 글들에 적용해서 읽고 문제 풀이해보는 훈련을 통해서 습득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만큼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어느 과목이 성적을 올리기 제일 어렵냐는 질문에 ‘국어’라고 대답하는 학생들 및 선배들이 많다. 하지만 수학이나 다른 과목만큼 시간 투자를 많이 했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대답하는 학생들 역시 많다.

이번 방학에 다른 과목에도 열심히 대비해야 하겠지만, 국어에 어려움을 느끼는 친구들이라면 국어에도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꼭 국어 문제집을 풀어 보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공부 시간 사이의 짬나는 시간에 유튜브를 찾아보기 보다는 인터넷의 아무 글이라도, 꼭 신문의 사설이나 훌륭한 글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냥 단순히 재미와 흥미위주의 소설이라도, 텍스트를 읽으면서 여유시간을 활용하면 무언가를 ‘읽는’ 연습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습관이 국어 성적을 올리는 첫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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