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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뉴스

돈을 잔뜩 찍어내면 저물가시대를 벗어날 수 있을까?

저물가시대입니다. 실제 물가상승률이 0% 수준입니다(심지어 지난해 9월에는 -0.4%였다). 물가가 오르지 않는 세상이 됐습니다. 실제 주위를 둘러보면 진짜 가격이 잘 안 오릅니다. 우리 동네 설렁탕값은 8천 원에서 멈춘 지 오랩니다. 10여 년 전 3만 원을 넘나들던 피자는 최근엔 2만 원 정도면 꽤 먹을 만합니다. 10년 전 10만 원 정도였던 A 유명미용실의 남성 파마요금은 이제 가족회원에 가입하고 쿠폰을 쓰니 5만5천 원에 가능합니다. 오르는 건 가스요금 같은 공공요금뿐입니다.


 

저물가시대 시이~작!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자꾸 내려가는 것을 디플레이션(Deflation)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사실 물가가 본격적으로 내리는 디플레이션 수준은 아닙니다. 그래서 디스플레이션(DISinflation)이라는 용어가 나왔습니다. 쉽게 말해 인플레이션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 상황…. 그러니까 ‘물가가 오르지 않는 상황쯤’ 되는 겁니다.

 

소비자물가가 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국민의 소득이나 구매력이 따라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물가가 오르지 않는 게 아니고 가격을 못 올리는 겁니다. 찜질방 사장님이 예전처럼 쉽게 요금을 1~2천 원 올리지 못하는 겁니다(올리면 손님이 뚝 떨어지니까~). 가격을 올리지 못하니 자영업자들의 소득도 오르기 쉽지 않고, 가격을 올리지 못하는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은 크기가 자꾸 작아집니다.

 

그런데 우리 국내총생산(GDP)은 해마다 2%씩은 높아집니다. 가격도 오르지 않고, 소비도 그대로라면 어떻게 GDP가 오를 수 있을까? 이유는 기업과 특히, 상위 몇 %의 소득이 빠르게 높아지기 때문입니다(지난해 우리 상위 0.1%의 소득은 14억 7천만 원이다/국세청). 그래서 이들이 주로 구매하는 상품이나 서비스 가격은 여전히 크게 오릅니다. 모 유명 브랜드의 가죽 핸드백인 버킨백(Birkin bag, Jane Birkin이라는 유명 가수의 이름에서 유래됐지만 정작 이 가수는 자신의 이름을 쓰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다)은 10년 전 500만 원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1천5백만 원이 넘습니다. 그래도 잘 팔립니다. 그러니 가격을 계속 올립니다. 이들의 소비가 더해져 GDP 통계는 자꾸 높아지는데, 다수의 실질 소득은 그만큼 따라 올라가지 못하는 겁니다.

 


물가가 오르면 GDP는 자동으로 오른다


GDP는 이렇게 모든 국내 소비를 더 해 계산됩니다(지난달에 자세히 설명해 드렸죠?). 그런데 물가가 오르면 그 거래가격이 당연히 오릅니다(1,000만 원짜리 승용차가 1,100만 원으로 가격이 오른 뒤 팔렸다면 GDP는 100만 원 더 오른다). 따라서 물가가 오르면 자동으로 GDP가 오르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이건 마치 체중이 올라 펀치력이 좋아진 것과 같습니다. 통계는 좋아지는데 사실 우리 국민의 삶은 크게 개선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GDP를 계산할 때 명목GDP 말고, 이 물가인상분을 뺀 실질GDP를 따로 계산합니다(체중 증가분을 뺀 실질 펀치력 증가를 계산하는 것이다). 이 실질GDP가 진짜 우리가 새로 창조한 부가가치의 합입니다. 그리고 명목GDP를 실질GDP로 나눈 ‘GDP디플레이터’는 현실적인 물가 상황을 말해줍니다(앗 자꾸 어려워진다). 그 GDP 디플레이터가 지금 20년 만에 최저치입니다.

 


물가가 자꾸 낮아지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일단 좋아요. 휴대전화 가격도 싸지고, 휘발유 가격도 내리고, 나쁠 게 없습니다. 기업도 생산하면서 원자재 가격이 내려가니까 처음엔 나쁠 게 없습니다. 그런데 정도가 있죠. 자꾸 물가가 내려가면 사람들은 이제 더 내려갈 것이라고 소비를 줄입니다. 특히 자동차나 아파트, 결혼 같은 중요한 소비를 미룹니다. 그럼 기업은 생산을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일자리가 줄어들고 결국 우리 모두 주머니가 가벼워집니다. 다 함께 가난해집니다. 근본적으로 물가가 내려간다는 말은 우리 시장에서 ‘뭘 사겠다는 힘-총수요!’가 낮아진다는 겁니다. 이건 경제에 매우 위험한 신호입니다. 실제 1929년 미국의 대공황이나, 80년대 일본의 장기침체 모두 총수요가 줄고 물가가 하락하면서 발생했습니다. 피셔 방정식으로 유명한 피셔교수(Irving Fisher)는 심지어 “우리 모두가 파산해야 디플레이션이 끝난다”라고 말했을 정도니까요.

 

디플레이션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반대로 수요가 높아져 인플레이션이 생기면 돈의 가치는 하락하지만, 경제에는 활기가 돌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한국은행은 해마다 2% 정도 적당하게 물가가 오르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합니다(올해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치는 2.0%다. 한국은행은 물가가 너무 오르지 않게 하는 기관인데, 최근에는 물가가 너무 내리지 않게 하는 기관으로 변신 중이다.)

 


자 그럼 우리도 돈을 더 풀어야 하나?


그럼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지지 않으려면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 혹시 한국은행이 돈을 잔뜩 찍어내면? 그래서 그 돈을 남대문시장 앞에서 마구 시장에 나눠주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우리 시장에 필요한 ‘수요’ 이상으로 공급된 돈은 정확하게 물가를 끌어올리고, 그만큼 인플레이션이 발생합니다. 돈의 가치가 내려가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 마나입니다. 만약 노란 은행잎 하나를 1만 원권으로 교환하기로 약속한다고 해도. 1만 원의 가치가 그만큼 떨어져 결국 은행잎 하나 가치가 돼 버리는 겁니다.

 

물론 경기가 너무 식어서 디플레 우려가 커지면 이 방법은 ‘어느 정도’ 까지는 유효합니다. 쉽게 말해 냄비의 물이 너무 식는다면 뜨거운 물을 적당하게 넣는 겁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들 이렇게 합니다. 미 연준(FED)이나 유럽중앙은행(ECB), 그리고 일본중앙은행(JOB)은 연간 수백조 원을 시장에 풀었습니다. ‘양적완화’라고 하죠. 중앙은행이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을 인수하는 겁니다.

 

그럼 그만큼의 현금이 정부로 들어가고 정부는 그 현금으로 시중에 현금을 공급합니다. 일본은 물가가 2%로 오를 때까지 계속 양적완화를 할 계획입니다(이러다 보니 올해 일본은행의 총자산은 572조 엔. 우리 돈 6,400조 원이 넘는다. 그중 85%가량이 채권이다. 다시 말해 빚이다).

 

 

사실 시중에 돈을 푸는 제일 쉬운 방법은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는 겁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대출을 더 받기 시작하고 은행에 있는 돈이 시중에 풀려나오면서 경기가 좋아집니다(지난 100년 동안 지구인이 개발한 가장 흔한 또 가장 확실한 경기부양법이다). 하지만 잘못하면 너무 돈이 풀려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선진국은 이미 기준금리를 다 내려서, 더 내릴 기준금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이자율이 내려가면 다들 대출받아 아파트를 사기 때문에 쉽게 금리를 못 내립니다.

 


만약 우리도 진짜 디플레 시대가 온다면?


우리 한국은행도 그래서 양적완화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금융통화위원회(시중에 돈을 얼마나 풀까를 결정하는 한국은행의 회의, 1년에 8번 열린다)에서 실제 우리도 양적완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마이너스 물가시대가 성큼 다가온 겁니다. 지금까지 “예전에 300원 했던 아이스크림이 이제 2천 원이나 한다”고 말했다면 이제 “예전에 7천 원 했던 자장면이 이제 5천 원밖에 안 한다”는 시대가 올 수도 있습니다.

 


하나만 더…


많은 사람이 양적완화로 진 빚을 어떻게 갚을 거냐고 물어봅니다. 답은 “아무도 모른다” 입니다. 지나치게 빚을 많이 져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는데, 그 해법도 ‘정부가 빚내서 시장에 돈을 푸는 것’입니다. 경제학은 아직도 이 방법을 추천합니다. 그 빚의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빚을 갚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경제학자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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