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사회뉴스

예술은 우연으로부터… “창조의 본질은 ‘발견하는 눈’”

사비나미술관 ‘뜻밖의 발견, 세렌디피티’展
이세현, 함명수, 이명호 등 작가 21인 ‘영감의 순간’
 
“내가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그 생각은 곧 또 다른 형태의 사물로 변화한다.”(파블로 피카소)
 
창작의 계기가 된 최초의 발견은 뜻밖의 선물처럼 찾아오곤 한다. 이러한 우연적 발견을 창조적 결과물로 전환한 대표적 사례로 피카소의 <황소 머리>를 꼽을 수 있다. 피카소는 자신의 아파트 주변에서 주워 모은 폐품들을 분류하다가 가죽이 늘어지고 스프링이 없는 자전거 안장과 알파벳 M자 형태의 운전대 손잡이를 우연히 발견하는데, 이에 영감을 받아 안장은 황소머리, 운전대 손잡이는 황소 뿔로 탈바꿈한 신개념 조각품을 만들어낸 것. 누구나 무심코 보고 지나칠 수 있었던 폐자전거의 자전거 안장과 운전대 손잡이인데도 오직 피카소의 예리한 눈만이 뿔이 달린 황소머리를 볼 수 있었던 것. 피카소는 우연한 발견이 위대한 창조로 이어지는 창작방식의 새로운 길을 열어준 셈이다. 
 
이처럼 최초의 발견은 어디에서 시작됐으며 발견의 의미는 무엇인지, 뜻밖의 발견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진행돼 예술품으로 완성됐는지 그 해답을 찾는 장이 마련됐다. 사비나미술관은 신년기획전 ‘뜻밖의 발견, 세렌디피티’를 통해 작가 21명에게 창작의 영감을 선사한 최초의 이미지와 이를 발견한 순간을 공개한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생각지 못한 귀한 것을 우연히 발견하는 능력을 뜻한다. ‘세렌디피티적’ 발견을 경험한 작가들의 일화, 작가노트가 작품과 함께 전시됐다. 
 



 
보드랍고 포근해 보이는 붓터치가 특징인 함명수의 작품은 1991년 읽은 ‘새로움의 충격 모더니즘의 도전과 환상’이란 책 표지에서 비롯됐다. 표지에는 독일 초현실주의 작가 메레 오펜하임의 <모피 찻잔>의 이미지가 실려 있었는데, 강렬한 모피 이미지는 작가의 기억 속에 새겨진 어릴 적 모친과 누이가 털실 뜨개질하는 모습과 결합해 이때부터 붓터치만으로 털의 질감을 모사하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됐다. 작가 특유의 털 질감을 재현하는 기법이 탄생하게 된 계기다. 
 
양대원과 한기창의 영감의 순간은 모두 병원에서 찾아왔다. 1997년 양대원은 병원 로비에 전시된 암세포 사진을 봤는데 사진 속 형상이 검은 사람들 무리로 보였다고 한다. 대학 화학과 재학시절 배웠던 분자구조와 유사했으며 수많은 검은 풍선이 끈적끈적한 액체에 가득 들어차 뒤엉켜있는 느낌이었다. 작가가 그간 생각해왔던 세상 속 인간의 모습을 암세포의 검고 동글동글한 형상에서 발견하게 된 것이다. 신생아의 모습과 죽음의 상징인 암세포가 오버랩되면서 지금의 동글동글하고 속이 텅 빈 검은 풍선의 조합으로 이뤄진 ‘동글인’이 탄생하게 됐다.
 
한기창의 세렌디피티적 발견은 교통사고 경험에서 비롯됐다. 1993년 당시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해있었는데 진료실에 엑스레이 필름을 봤다. 온몸이 골절된 상태의 본인의 엑스레이 사진은 끔찍하기보단 뼈 이미지에서 명암의 단계적 변화가 마치 먹의 농담처럼 나타나는 것처럼 보였단다. 이번 전시 출품작 <뢴트겐 정원>은 종이와 먹을 벗어난 새로운 형식의 한국화인 동시에 엑스레이를 통해 자신이 받은 죽음과 고통의 경계에서 만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치유의 결과물이다.
 



 
유근택은 200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분수대 앞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분수가 뿜어내는 물줄기에 매료됐다. 분수는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익숙한 소재였지만 그날따라 작가의 눈에 들어온 분수의 물줄기는 풍경에 진동을 빚어내며 풍경을 분할하거나 해체하기도 하는 비현실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분수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자연의 이치를 위반한다는 것, 즉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역발상적 개념이 그에게는 무척 흥미롭게 다가온 것이다. 이는 그에게 폭포와 분수의 특성을 통해 동서양의 문화적인 차이를 비교해보는 계기가 됐다. 이때부터 시작된 <분수> 연작을 통해 동서양이 만나는 지점과 두 세계가 확장되는 개념을 연구하는 등 회화의 근원을 집중 탐구하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오고 있다.
 
창조적 아이디어와 발상은 행운이나 기적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창조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지름길은 따로 없다. 관찰과 실험, 몰입, 인내심 등 노력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예술적 결실을 맺을 수 있을 터. 뜻밖의 발견을 창작물로 빚어낸 작가 21인의 76점 작품을 통해 각자의 세렌디피티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4월 25일까지.


 
Copyrights ⓒ 조선일보 & 조선교육문화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9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