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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뉴스

[설 기획-엄마,를 말하다] ①드라마에 비친 ‘모성멸균 능력’, 현상인가 문제인가

[에듀인뉴스=송민호 기자] 아직도 생생한 기억이 하나 있다. 필자가 서울대 졸업식 때 ‘샤’를 배경으로 학사모 사진을 찍을 때 모자가 조금 삐뚤어져 있었나보다. 그 때 한 사진사 분이 모자를 바로 잡아주려고 하자, 어머니가 갑자기 “왜 내 아들 머리에 손을 대!”라며 막으신 적이 있다. 


이 때의 기억은 강렬해서 지금까지도 생각나는데, 살아가면서 이런 일들을 종종 마주치게 되었다. 즉 우리 ‘엄마’만 특별했던 게 아니었다는 것.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다들 나름의 방식으로 자녀를 사랑했다.


왼쪽부터 동백꽃 필무렵, 스카이캐슬.(Kbs, jtbc 캡처)    

(장면1) KBS2TV에서 인기리에 반영된 ‘동백꽃 필 무렵’(2019.9.18.-2019.11.21.)은 젊은 남녀 간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다. 그런데 작중 억척스런 자식 사랑을 자랑하는 ‘엄마’들의 연기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용식이 뒤엔 이 곽덕순이 있어”라며 억척스럽게 아들 뒤를 좇으며 살아가는 엄마다. 군대 선임에 뺨을 맞은 아들을 위해 군대에 닭 300마리를 튀겨 찾아가 아들의 안위를 챙겼다. 혼잣말로 여기서 내 닭을 먹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라며 자신이 이룬 미션성공을 자축한다.


(장면2) 입시라는 소재를 전국민의 관심사로 부각시킨 화재의 드라마, Jtbc의 ‘스카이캐슬’(2018.11.23.-2019.2.1.)은 자녀를 주남대 의대에 입학시켜 개인과 가문의 영광을 이루려는 가족들 사이의 에피소드를 그린 드라마이다. 


엄마 한서진은 딸인 예빈이가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것이 발각되자 공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행위로 간주하고 대학에 입학하면 자연히 사라질 행위로 보았다. 그리고 “이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어. 그래야 내 딸들도 최소한 나만큼은 살 수 있으니까”라고 말한다.


이 두 장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신세대 학자 박찬효는 아래와 같이 답했다.


"20세기 미디어에서는 자녀의 교육이 어머니의 역할임을 강조되었다. 성별분업 체제에서 가정일과 육아를 전담했던 주부는 자녀가 공부를 잘하면 능력이 뛰어난 아내·어머니·며느리로 간주되기도 했다. 즉 사회는 주부에게 자녀교육의 임무를 떠넘겼고 주부는 그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 자녀를 잘 길러냈지만, 그런 주부가 이제는 자녀를 망가뜨리는 이기적 존재가 되어 비판받는 것이다."


(장면1)과 (장면2)에서 엄마들은 모두 억척스럽거나 대단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보는 시청자들 중에는 ‘맞아, 맞아, 저런 장면을 보면 아직 내 정성이 부족한가봐.’라고 읊조리거나 아니면 ‘뭐 저렇게까지 할까? 지나친데’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속 자녀가 성공을 하게 된다면 태도는 바뀔 수 있다. 자녀의 실수가 내가 기여하거나 투자하지 못한 잘못의 산물일 수 있고, 내가 맞벌이를 하면서 명문대 보낸다는 생각은 욕심이었다는 등 자책하기 일쑤다.


그런데 이를 사회적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박찬효는 이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한국의 가족과 여성혐오, 1950~2020/박찬효

“한국사회에서 모성은 언제나 국가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왔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에 모성의 역할은 더욱 더 강조되고 있다.


한 인간이 태어나 교육받고 취직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해 독립적으로 생존하는 자체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지금, 사회는 어머니에게 자녀의 미래에 해가 되는 것을 ’멸균‘하는 능력까지 은근히 바라고 있다.


그런데 ’멸균 능력을 지닌 모성‘은 20세기 후반처럼 가족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돌봄‘의 성격과는 매우 다르다.”


만약 돌봄이 자녀사랑이었다면, 타인의 자녀도 내 자녀처럼 사랑할 수 있는 개연성이 있을 것이다. 즉 엄마 또는 어머니라는 존재가 어리고 귀여운 존재를 봤을 때 그들을 보살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경쟁사회가 치열해 지면서 ‘나’ 또는 ‘우리 가족’의 생존 문제가 우선순위에 이르게 된다. 이로써 멸균능력을 가진 모성은 드라마에서 한서진처럼 ‘혐오스러운’ 느낌을 주는 존재가 된다.


아쉽게도 이러한 엄마상은 결혼 생활에서 학습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김숨의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에서 이를 발견할 수 있다.


‘홀로 된 어머니가 자식을 최대한 공부시키기 위해 파출부 일을 하면서 힘들게 아들을 대학까지 보냈으나, 며느리는 남편이 “소규모 토목회사나 전전하는 게 여자(시어머니)의 부족한 뒷바라지 탓”이라고 원망한다. 며느리는 “신혼살림을 5000만원으로 시작하는 것과 1억원으로 시작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뒷바라지를 얼마만큼 해주느냐에 따라 자식 인생이 달라지는 것 아니겠어요?”, “학벌도, 부도, 사회적 지위도 고스란히 대물림되는 세상에서!” 


이 소설에서는 자식은 남보다 못한 자신의 경제적 상황을 부모 때문이라고 탓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자녀-어머니와의 관계 그리고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로 이어지는 멸균능력에 대한 요청은 조국사태나 금수저전형이라 불리는 학종 사태 등으로 더욱 공고화되었다. 


표창장 챙기기, 온라인 과제 함께 해주기 등 알뜰한 자녀 사랑은 지탄의 대상이되었지만 동시에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인맥‘, ’동업자마인드‘라는 것으로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일 수 있지만 대학 입시라는 관문과 연관이 되면 여지 없이 공정성의 칼날을 피할 수 없다. 즉 우리 사회는 특정 시점(대입, 취업 등)에는 멸균상태(공정성이 극대화되는 상태)를 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재 모습을 ’사회적 현상‘으로 볼지, 아니면 ’사회적 문제‘로 볼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다. 


기득권층에서는 사회적 현상으로 볼 가능성이 높다. 어느 시대나 경쟁은 존재했고 공정한 룰이란 것은 제한적으로 작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편 또 다른 입장에서는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게 된다. 교육의 현장에서는 이런 불공정에 가까운 경쟁이 도입되어서는 안 되며, 교육의 목표를 이러한 현상을 개선하는데 있다고 말이다. 


제3의 입장에서는 대안교육을 찾는다. 과열된 경쟁과 광기에 가까운 부모의 집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 다음 편에서는 멸균모성의 발생 원인을 다른 차원에서 찾아보고 이를 통해 (하조리의 창 이론에서 말하는) 우리가 보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조망해 보고자 한다. *’멸균모성‘이란 용어는 『한국의 가족과 여성혐오, 1950~2020』에서 빌려왔고, 이 책의 아이디어를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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