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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뉴스

[김경희의 교사성장연습] 나에게 하는 질문 ... "나는 나에게 진실한가?"

[에듀인뉴스] 교실 속 교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시선을 달리하는 것만으로 행복 쟁취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나를 냉철하게 바라볼 힘을 기르는 것으로도 가능할 수 있다. 그래서 굳은 마음을 먹고 내가 먼저 도전해본다. <에듀인뉴스>는 소소한 일상을 낯선 시선으로 해석해 보고, 문제의 본질을 깊게 들여다보기 위해 매일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는 연습을 통해 교사의 성장을 돕고 싶다는 김경희 광주 상무초 교사의 성장연습에 함께 발을 맞춰 보고자 한다.


김경희 광주 상무초 교사는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교사의 신분인 만큼 학생인권에 기초한 학생자치활동에 대한 관심을 쏟고 있다고 한다. 현재 교육부 민주시민교육자문위원과 교사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생자치역량강화워크숍 및 회의진행법, 후보자교실 등을 강의하면서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가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독립성과 주체성 신장 방안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김경희 광주 상무초 교사는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교사의 신분인 만큼 학생인권에 기초한 학생자치활동에 대한 관심을 쏟고 있다고 한다. 현재 교육부 민주시민교육자문위원과 교사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생자치역량강화워크숍 및 회의진행법, 후보자교실 등을 강의하면서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가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독립성과 주체성 신장 방안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에듀인뉴스] 후배가 말한다.


“언니는 좋겠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으니... 난 아직도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모르겠네.”


“어찌 내가 알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니? 지금도 여전히 매 순간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왜 이것을 하려고 하는가?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정말로 이것이 진실일까?’하면서 말이야. 어쩜, 이렇게 캐묻는 것에 익숙해져가고 있으니 어떻게 사는 줄 알아가고 있다고도 말할 수는 있겠네.”


후배와 만남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학창시절, 내가 절대적 가치로 삼았던 ‘절제’에 관한 스토리가 떠오른다.


“선미야,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가 ‘절제’인 것 같아!”


그 당시 어떠한 논리로 나의 생각을 친구에게 말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야간자율학습 전에 달빛 아래서 친구와 진지하게 대화했던 장면만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 당시, 이렇다 할 이벤트는 없었지만 왠지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았다. 내가 그 당시 말했던 ‘절제’란 나를 컨트롤 할 수 있는 내 안의 힘이였다. 내 안의 무수한 욕망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이기도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고등학교 시절이라 여겼기에 내 욕구를 잘 조절해야 함을 명제처럼 품고 있었던 듯 하다.


그러나 그 시절 품게 된 ‘절제’라는 태도는 친구처럼 오래도록 내 곁에 머물렀다. 그 후로도 난 차오르는 감정과 욕구가 있더라도 양팔 저울에 올려 편협한 ‘이성’ 작용을 통해 때에 따라 도덕과 윤리 또는 효율과 효과성과, 가끔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좁다란 관념들과 저울질하면서 ‘절제’를 여전히 최상의 가치로 이어나갔다.


2016년 겨울 이 맘 때 쯤, 그런 ‘절제’에 갇힌 나의 편협한 태도가 결코 나를 자유롭게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지인과의 대화 도중 우연히 알아차리게 되었다.


‘절제’라는 관념으로 생활 패턴을 컨트롤 하다보니 나의 진짜 모습은 무엇이고, 진실로 내가 바라는 삶은 무엇인지 구별하지 못하게 되는 단계에 들어서버린 것이었다.


혼란스러웠다. 감성적이고 감각적으로 인지하는 성향이 있는 내가 ‘절제’라는 틀로 생각과 감정을 재해석한 후 행동하다보니 현재에 집중하기보다는 오지 않을지도 모를 내일을 위해 현재를 지나치게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종종 내가 느꼈던 공허감의 실체가 들어나버린 순간이기도 했다.


이러한 자각이 있은 후로 내 스스로에게 자주 물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지금 왜 이렇게 행동하려고 하는가?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습관처럼 하고 있는 나의 행동 중 어디까지가 진실된 나인가?’를 끊임없이 캐묻는 과정에서 ‘진실된 나’와 만날 수 있는 노력을 해가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아침에 눈을 뜨기 전, 스스로에게 물었다.


너는 너에게 진실하니?


10번 이상 계속 물었다. 3~4일 반복된 질문을 하던 어느 날, 이 말이 품고 있는 강렬하면서도 원대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맥박이 빨라지더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진실’이라는 말을 내가 나에게 던지니 가련한 내 모습도 보였다.


어느 날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캐물었다. 그 과정에서 놀라운 발견이 일어났다. 나를‘교사’로 정의내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동시에 내가 나를 ‘교사’라는 틀에 가두지 않으니 학생들 또한 내가 가르치고 지도해야 할 대상이 아닌 ‘존엄한 인격체’로 떠올랐다. 그래서 ‘교사’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 잘 살아야 함을 말이 아닌 가슴으로 알아버렸다.


‘교사’라는 틀에서 나와, 학교를 바라보니 그동안 학교에서 의례껏 습관적으로 해왔던 말과 행위들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학생들은 왜 교사에게 고자질하러 오는 것일까? ▲쉬는 시간을 10분으로 정했던 이유가 있을까? ▲40분을 한 차시 시간으로 정한 이유가 뭐였을까? ▲왜 다함께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 인사하고 있지? ▲반듯하게 줄을 서는 이유가 뭐지?


그리고 학생들에게 묻는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왜 그렇게 하고 싶은거야? △그렇게 하는데 방해되는 것이 있니? △우리가 무엇을 도와주면 좋겠어? △너가 할 수 있는 것에는 뭐가 있을까? △무엇부터 시작해볼 거야?


이 질문에 학생들은 어떤 말을 들려줄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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