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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금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주목하는가?

최근에 지식인의 아이콘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 강연에서 "현 진보 세력의 직접민주주의는 전체주의와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또 "교수들이 옛날처럼 언론 통제가 겁나는 게 아니라 집단의 공격이 무서워서 얘기를 '자체 검열'해서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주장은 당연히 필자에게 전체주의에 대한 관심을 유발했고 이를 잘 상징하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다시금 책장에서 꺼내 들게 되었다. 이는 전직 법무부장관 사태와 맞물려 자연스럽게 관심을 유발하던 차였다.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반공 소설’로 잘 알려지기도 했던 이 소설은 러시아혁명에 뒤 이은 스탈린 시대의 전체주의를 낱낱이 까발려, 권력이 어떻게 부패하는가를 통찰한 소설이었다. 여기에선 온갖 종류와 크기의 권력에 대한 속성을 기막히게 간파하고 있었다.

 

그럼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을 다시금 소환하여 이 시대를 통찰해 보자. 반란을 앞둔 동물들의 비밀 회합에서 우두머리 돼지가 처음 던지는 질문은 "쥐는 우리의 동지인가"였다. 권력이 곧 바뀔 것을 간파한 쥐는 벌벌 떨지만, 돼지는 뜻밖에도 쥐를 동지로 받아들인다. 권력 쟁취를 위해 '인간의 적은 동물의 친구'라는 정치 구호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인간을 쫓아낸 동물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로 과거 청산이었다. 멍에와 마구, 재갈과 코뚜레, 갈기와 꼬리를 장식했던 댕기들도 모두 우물에 던져버렸다. 어떤 동물이 "댕기는 달아도 되는 것 아니냐?"고 묻자 돼지들은 "그 댕기가 바로 노예의 상징"이라고 혼쭐냈다. 이는 좋든 나쁘든 과거 정권의 것들은 모두 적폐로 몰아 청산하는 데 몰두하는 권력과 자연스레 연계되었다. 최 교수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촛불 시위 이후 가장 큰 정치적 방향 착오가 적폐 청산"이라며 "완전히 선과 악을 구분하는 정치, 보수 진영을 궤멸시키려는 의지가 작용한 결과"라고 말했다.

 

농장을 장악한 돼지들은 우유를 독차지했다. 암탉들이 "인간 주인은 우리 모이에 우유를 섞어주기도 했다"고 푸념하자 돼지들은 "우리는 우유가 좋아서 먹는 게 아니다. 우리가 건강해야 당신들을 돌볼 수 있다. 여러분을 위해 우유를 먹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정치집단의 수많은 '내로남불' 사례와 다르지 않다. 정의를 주창한 권력은 어떤 짓을 해도 정의롭다는 궤변과 다름이 아니다.

 

이를 비유해 최 교수는 "운동권 출신들이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방식은 대의제 민주주의나 민주적 정부가 아니라 '인민의 권력'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동물들은 인간 지배를 받던 시절보다 훨씬 열심히 일했지만 사는 건 그때만 못하다고 느꼈다. 그럴 때면 돼지들이 나타나 무슨 수치가 몇 퍼센트 늘었다는 자료를 내밀며 좋아지고 있다고 윽박질렀다. 누군가 의문을 제기하거나 따지려 하면 돼지들이 따로 사육한 개들이 나타나 으르렁거렸다. 길들여진 양들은 그 옆에서 돼지 찬가를 목 놓아 불렀다.

 

어떤가? 지금의 상황과 비교가 되지 않는가? <동물농장>을 다시 읽으면서 말과 당나귀를 새로 발견하게 되었다. 말은 뭔가 잘못돼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늘 "내가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이 해결책"이라며 모든 일에 앞장섰다. 그러나 결국 업자에게 팔려갔다. 당나귀는 "나는 오래 사는 동물"이라고 습관처럼 말하며 모든 일에 체념했다. 그는 "삶은 항상 나쁠 것이며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과거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에 우리 중 상당수는 이런 말이나 당나귀였다. 그때 개들의 위협을 무릅쓰고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들이 권력을 잡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다시 우리를 말이나 당나귀로 길들이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옛날처럼 언론 통제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공격이 무서워서 말을 '자체 검열'할 수밖에 없다는 지식인들의 탄식에 주목하고자 한다. 진보의 정치가 전체주의를 향해 달린다는 우려에 이 시대 지식인들의 양심과 성찰을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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