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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쌤의 미국생활] 로마에 가면 로마법 따르라...낯선 곳에서 찾은 익숙함의 소중함

[에듀인뉴스] 동반휴직으로 미국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학교생활과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이자, 커다란 쉼표 같은 시간이다. 숨 가쁘게 달리다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다. 쏟아지듯 부여되는 일들에 묻혀 살다보면 무엇 때문에 애 쓰고 있는지도 잊는다. 그래서 가끔은 한 발 떨어져 보는 것이 필요하다. 거리를 두고 보면 놓쳤던 것이 보이기도 하고, 다른 각도의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미국에서의 시간이 그런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교사는 가장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직업군이다. 학교로 제한된 공간을 벗어나면,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이 더 선명하게 보일까? 한국 공교육 현장을 벗어나 타지에 서면,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 직접 삶으로 미국 문화를 경험하며 ‘차이’에서 파생되는 새로운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그 생각을 확장 시키는 과정을 공유하고 싶다.


이다정 경기 신능중 교사
이다정 경기 신능중 교사

[에듀인뉴스] 미국에 온지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한국보다 하루를 늦게 따라가는, 시간이 엉킨 곳에 와 있다. 이 곳 미국 서부 오레곤주 포틀랜드는 해가 짧고 비가 많이 오는 겨울이다. 같은 겨울이지만 창 밖엔 눈부신 연둣빛 잔디들이 물을 머금고 보드랍게 솟아 있어 이곳이 외국임을 느끼게 한다.


일상이라 여겨졌던 것이 순식간에 바뀐 채 낯선 곳에 뚝 떨어졌다. 몸에 새겨진 듯한 종소리,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하던 시간표. 나를 움직이게 했던 모든 것들이 없다. 그토록 바라던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오롯히 내게 주어진 시간이다.


미국 오리건주 북서부 도시 , 포틀랜드. 겨울이 우기라서 추운 날씨에도 푸른 잔디를 볼 수 있다. 나무냄새가 나는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도시이다.(사진=이다정 교사)
미국 오리건주 북서부 도시 , 포틀랜드. 겨울이 우기라서 추운 날씨에도 푸른 잔디를 볼 수 있다. 나무냄새가 나는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도시이다.(사진=이다정 교사)

“제발 나를 가만히 좀 내버려 둬~!”라는 학교에서의 무언의 외침이 실현된 것이다. 그랬다. 한 해, 두 해 교직생활의 시간이 쌓이면서 많이 하게 되었던 생각... 모든 것이 과잉이라 느껴졌다. 나를 찾는 이도, 내가 해야 할 일도, 내가 책임져야 할 것도 점 점 많아져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한 순간에 모든 것들이 소거되고 나니 오히려 더 어찌 해야 할 바 모르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고, 아무것도 아닌 나. 1년 간 연재할 글은 그런 삶의 생각들로 채워 질 듯 하다.


대한민국에서 공교육 교사는 그 자격으로 인해 많은 것이 보증된다. 그러나 이 곳에서 나는 운전면허를 따면서도 신분 확인에 거주 증명에 각종 절차를 거듭해야 하는 이방인일 뿐이다. 경계의 눈으로 내 뒤로 길게 늘어 선 줄을 아랑곳 하지 않고 이 것 저것 체크하는 DMV(교통국) 담당자의 싸늘한 눈빛에 괜히 주눅이 들었다. 할 수 있는 것은 혼잣말 뿐.


“나 대한민국에서 신분 확실한 사람인데.”


운전 면허까지 떨어졌으면 그야말로 자존감이 고꾸라질 뻔 했던 날이었다. 붙고도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던가. 운전규칙 뿐만 아니라 이곳의 규칙, 이곳의 정서를 따라야 한다. 그렇다. 지금 나는 이곳에서 ‘외국인’이다.


외국인 신분이 되었다는 것을 서늘하게 느꼈던 첫 경험은 온 지 1주일 즈음 되어서였다. 그럭저럭 순조롭게 정착하는 줄 알았는데, 깜깜한 밤에 차가 없어진 사건이었다. 잠깐 방문한 지인의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둔 차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설마? 이렇게 깜깜한 비오는 밤에 누가 차를 끌고 가? 그것도 아파트 단지 안 주차장에서?”


행여 주차한 위치가 헷갈린 것은 아닐까 주차장을 돌고 돌았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그곳을 돌고 돌다보니 미로 같고 꿈 같았다. 결국 차를 찾지 못한 채 집으로 와야했다.


심장이 쪼그라든 상태라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다행히 차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방문 싸인을 걸어두지 않았던 차는 견인 되었던 것이었다. 우리는 그간 중고로 살림살이 사며 아낀 것이 무색할만큼 큰 돈을 내고서야 차를 찾을 수 있었다.


사유지 불법주차라는데, 억울했다. 지인도 전엔 사람들이 와서 주차를 해도 문제 없었다며 난처해 하셨다. 찾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정신을 바짝 차려졌다.


‘그래, 이곳의 법을 따라야지.’


비싼 신고식과 함께 이곳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외국인’이라는 것 외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로. 헐벗은 상태, 아무것도 아닌 ‘나’가 되어 낯선 세상과 만나본다. 잠시 머무는 것이라 이곳의 그들과 동등해 질 수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첫 달인 이번 달은 한국에서 그동안 누려 왔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학교란 공간에 입성 하면서 부터 나는 많은 판단과 기준의 권한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많은 것을 쥐고도 일개 힘 없는 교사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무력해지려했었다는 것도.


막상 정말 힘 없는 외국인이 되고나니 스스로를 기만하며 어쩔 수 없다며 무력해 졌던 나를 보게 된다. 틀에 박힌 공무원의 삶이 싫다며 투정 부렸지만, 그 신분이 주는 안정감을 누리는 것은 좋아했던 이중적인 나도 떠올리게 된다.


교사라고 나를 소개 했을 때 상대방의 “아~ 교사시구나~”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옅은 안도감이 은근히 좋았다. 모순적인 부분들이 보이자 알게 된다.


‘그래서 감사함은 사라지고 지쳐가기만 했었구나.’, ‘가진 것은 당연하다 생각하고 불평만 했구나.’


미국은 월세가 한국보다 비싸다. 입주까지의 절차도 조금 복잡하다. 소유의 개념은 아니지만, ‘내가 머물 곳’ 이 생겼다는 것 만으로도 위안감을 준다.(사진=이다정 교사)
미국은 월세가 한국보다 비싸다. 입주까지의 절차도 조금 복잡하다. 소유의 개념은 아니지만, ‘내가 머물 곳’이 생겼다는 것 만으로도 위안감을 준다.(사진=이다정 교사)

내 삶과 밀착되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런 일상에서 벗어나면 조금 낯설고 불편해도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대한민국 국민, 공교육 교사라는 이름표 대신 ‘아무것도 아닐 때의 나’로 살다 보면, 어떤 것들이 더 선명하게 다가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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