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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뉴스

[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 신학기 부모가 꼭 알아야 할 학교폭력 : ② 가파른 '언어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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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의 원작을 보면, 주인공 걸리버가 ‘릴리펏’이라는 소인국과 ‘브롭딩낵’이라는 거인국을 거쳐 세 번째 여행지 ‘하늘을 나는 섬 - 라퓨타’를 여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걸리버는 ‘라퓨타’ 여행을 마친 후 지상의 수도인 ‘래가도’라는 지역을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서 인간의 생활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죠.


걸리버는 여러 연구소를 돌다가 언어를 연구하는 곳에서 학자들로부터 언어생활을 개선하는 연구 내용을 듣게 됩니다. 첫 번째는 문장에 있는 동사를 제거해서 단어를 간결하게 만드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모든 단어를 없애 버리는 연구였습니다. 학자들은 단어가 없는 대화가 정착되면, 언어가 간결해질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건강까지 개선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죠. 말도 안 되는 억측처럼 보이지만 소설은 당시 현학적인 학문과 철학 선동이 만연했던 18세기 영국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습니다.


'언어폭력'이라는 주제에서 새삼 ‘걸리버 여행기’가 떠올랐던 건, 어찌 보면, 지금의 자녀 세대가 『걸리버 여행기』에서 등장하는 언어학자와 많이 닮았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은 이미 언어의 얼개를 아랑곳하지 않고, '자음'만으로도 충분히 소통하며, 그것도 모자라 한글을 파괴하고 요리조리 비틀어 새로운 언어를 만들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놀라운 건, 셀카와 이모티콘을 앞세워 점점 이 세상 단어를 없애고 있다는 사실은 신기할 정도로 이 소설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언어예절은 사라지고, 감정을 담아 은유하던 언어의 감성은 앞으로 기대할 수 없는 건 아닌지 초조해집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욕설’에 ‘동사’가 없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폭력성을 지닌 ‘비속어’와 ‘욕설’은 이미 경계가 무너진 지 오래입니다. 또, 욕설로도 모자라, 이제는 소수집단을 비난하고 헐뜯는 ‘혐오 발언’까지 등장한 탓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경기도교육연구원 이혜정 연구원은 『혐오, 교실에 들어오다』라는 저서에서 ‘학교 안에서도 소수자 집단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재생산하는 혐오 감정이 일상적으로 표현된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사회적·교육적 문제’라고 했습니다. 격이 낮은 ‘비속어’와 상대의 인격을 모욕하는 ‘욕설’도 모자라 이제는 ‘혐오 발언’까지 등장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언어폭력'을 통제하기가 더 힘들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아이들의 ’언어폭력‘이 대체 어디까지 와 있는지 위치추적 자체가 힘들고, 또 인정하기는 싫지만, 아이들의 언어가 이미 ‘폭력성’을 넘어 존재를 실종시키는 수색 불가의 수준까지 이르렀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언어폭력’이라는 사회 용어가 계몽으로서의 ‘위력’이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고,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따라 예컨대, ‘언어공격’ 내지는 ‘인격 폭행’이라는 좀 더 묵직한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이 됩니다. 분명한 것은, ‘언어폭력’이라는 실체는 이미 표면화되었고, 2012년 시작된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도 ‘언어폭력’이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는 부동의 ‘학교폭력 국가대표’라는 사실입니다.


특히 더 우려되는 것은,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아이들의 ‘언어폭력’은 디지털 공간이라는 공론의 장으로 옮겨져서 자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익명’과 ‘비대면’이라는 무기로 마치 아이 자신이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착각하며,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언어폭력’을 일삼는 현상은 지금 우리가 마주한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입니다.


학교폭력에서 ‘언어폭력’은 ‘모욕’과 ‘명예훼손’ 그리고 ‘협박’과 ‘성희롱’이라는 범죄유형과 연결됩니다. 쉽게 말해, 아이가 ‘언어폭력’을 했다는 것은 이 네 가지 유형 중 하나이며, 당사자는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징계 조치를 받게 되고, 또 사이버 공간에서의 ‘언어폭력’은 피해 정도가 오프라인보다 상당한 데다 입증마저 쉬워서, 학교폭력 조치와는 별도로 경찰서에 고소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언어폭력’을 하는 이유로 ①재미, ②우월감, ③공격에 대한 저항과 함께 집단 내에서 ④동질감과 연대감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다고도 말합니다. 여기에 ‘사회적 증거’라는 사회법칙과 ‘동조압력’이라는 심리 법칙까지 더해져서 아이들의 언어습관을 되돌리는 교육을 하기란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결국, 해법은 언제부터 우리가 아이들의 언어를 외면해 왔는지를 고민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역학조사는 쉽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학교는 사회를 탓하고, 사회는 학교를 탓합니다. 그러다 이제는 학교와 사회가 담합하여 ‘가정’이 발원지라고 말합니다. 계속 그렇게 원인을 떠미는 사이 아이들은 점점 더 위험한 ‘언어폭력’에 방치되고 있습니다.


일단, 학교 교육은 필수적입니다. 학교생활에서 올바른 언어사용은 최고의 덕목이며, 언어가 내포하는 수많은 소양을 생각하면 학생의 본질은 언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성교육은 ‘평등’과 ‘인권’을 담아야 마땅하고, 아이들의 언어사용은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엄중한 지도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사회는 ‘담론’을 통해 아이들의 언어를 어떻게 방치해 왔는지를 스스로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소비하는 자극투성이의 콘텐츠와 디지털 공간에서의 언어 규제가 적절한지를 따지고,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언어폭력’을 금지하기보다는 오히려 미필적으로 허용한 것은 아닌지 사회적 도덕성을 들추어내야겠습니다.


아이들은 대상에 따라 언어를 다르게 사용합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는 지금보다 더 세심한 관찰과 상시적인 지도가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부모 앞에서 바른말을 사용하는 아이는 부모 앞에서만 바른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오히려 부모가 없는 사이버 공간에서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모의 언어 지도는 빠를수록 좋고, 때를 놓치지 않고 적시에 이뤄져야 효과적입니다.


『언어의 온도』의 저자 이기주 작가는 ”언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려는 무의식적인 본능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고,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다시 스며든다.”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의 ’언어폭력’이 걱정되는 이유는 바로 우리 아이가 다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안전하게 지키는 건 결국, ‘언어’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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