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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다이제스트 | 미술산책] 르누아르, 삶의 기쁨을 노래하다

-따스한 색채로 행복 전하는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 작품 감상하기

*오귀스트 르누아르 <두 자매>(1881) [사진 출처=wikipedia]

"그림이란 소중하고, 즐겁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다.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인상파 화가들 가운데 가장 밝고 다채로운 색채를 가졌다. 그는 눈부신 색채와 생동감 넘치는 묘사로 꽃과 아이, 여성을 매우 능숙하게 그려냈으며, 여기에는 행복한 분위기와 기쁨의 인상이 넘쳐난다. 르누아르가 이처럼 희망찬 느낌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기사는 <나침반> 3월호 '인문 다이제스트'에 8p분량으로 실린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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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란?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일어난 근대 미술의 한 경향. 본능적이고 직감적인 태도로 사물의 고유색을 부정하고 ‘태양 광선’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해 보이는 대상의 순간적인 색채를 포착해서 밝은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윤곽선이 흐리고 거친 붓 터치가 특징이다. 


소박한 인상파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 


*자화상(1899) [사진 출처=arthive.com] 

19세기 중후반, 프랑스에서는 고전적인 엄격한 규율을 요구하는 사실주의 화풍의 아카데미즘을 벗어나 한층 더 자유로운 표현을 찾는 다양한 미술 운동이 일어났는데, 그 중 하나가 ‘인상주의’이다.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에는 피사로, 모네, 드가, 시슬레, 그리고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 1841~1919)가 있다. 

르누아르는 본차이나로 유명한 프랑스 리모주의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리모주 자기(瓷器) 화공으로 그림에 입문한 이후 21세가 되던 해 마네 <풀밭 위의 점심 식사>에 감명을 받아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평생 소박하고 성실한 장인 정신으로 작업에 임했으며 오로지 회화의 본질에 충실하고자 했다. 나이 40세가 넘어 명성을 얻고 경제적 여유가 생긴 후에도 그는 규칙적이고 정돈된 삶을 살았다. 그는 카페, 공원, 거실, 무도회장 등 마치 골목길에서 마주칠 것 같은 일상생활과 사람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냈다. 


여성과 아이들 주제로 많은 작품 남겨 


*피아노 치는 두 소녀(1892) [사진 출처=metmuseum.org]

‘피아노 치는 두 소녀’는 프랑스 정부에서 파리 룩셈부르크 미술관에 전시하기 위해 의뢰한 작품으로, 미완성작인 이 그림에서 배경의 거친 붓 터치와 여백은 전경의 두 소녀를 더욱 돋보이게 해 주고 화면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흰 드레스를 입은 긴 머리의 소녀는 오른손으로는 피아노 건반을 치고, 왼손으로는 악보를 잡고 읽는 데 열중하고 있다. 그녀 옆에는 오른손으로는 의자 등을 잡고, 왼쪽 팔꿈치는 피아노에 기대고 손으로 턱을 괸 채 앞의 소녀와 함께 악보를 읽고 있는 갈색 머리의 소녀가 있다.

이 두 소녀의 정답고 사랑스러운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배경의 추상적인 붓 터치는 여기 어여쁜 소녀들의 앞에 펼쳐질 미지의 세계를 향한 순수한 꿈의 선율을 들려주고 있는 듯하다. 

*기타를 연주하는 스페인 소녀 (1898) [사진 출처=wikipedia]


‘기타를 연주하는 스페인 소녀’에서도 역시 우울한 분위기의 정취가 아니라 사랑스러운 소녀만 있을 뿐이며, 이 생기 넘치는 소녀의 존재 자체가 ‘생의 예찬’이다. 밝은 색채에서는 삶의 기쁨이, 그리고 붉은 기가 도는 포동포동한 소녀에게서는 싱그러운 젊음이 느껴지면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르누아르 최고의 걸작 ‘물랭 드 라 갈래트의 무도회’ 


*물랭 드 라 갈래트의 무도회(
1876년) [사진 출처=wikipedia]

‘물랭 드 라 갈래트의 무도회’는 르누아르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으로, 당시 인기가 많았던 몽마르뜨 언덕 풍차 근처에서 그가 직접 그렸다고 전해진다. 앞쪽 테이블에는 남녀 무리가 환하게 웃으며 대화를 하고 있고 뒤쪽에 있는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떠들썩한 분위기는 인물의 얼굴과 옷자락 할 것 없이 흩어져 있는 햇빛 덕분에 더욱 고조된다. 큰 그림 안에서 수십 명의 인파가 서로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튀는 사람 없이 자연스레 녹아들어 완벽한 균형감을 이룬다. 



삶의 기쁨과 행복을 노래하다 


*화병의 꽃(1898) [사진 출처=wikipedia] 

‘화병의 꽃’은 활기찬 ‘생의 찬미’가 연상되는 그림으로 유리 화병 안에는 온갖 화려한 꽃들이 만발했다. 마치 사랑하는 여인을 그리듯 애정 어린 붓 터치로 그린 꽃은 알록달록 채색한 솜사탕과 같고, 풍성하고 푹신한 느낌을 전해 준다.

삶 속에서 항상 기쁨과 긍정을 찾으려 한 르누아르가 여기서 그려 낸 것은 수백 년 간 유럽의 화가들이 즐겨 그려 온 ‘바니타스(vanitas)’ 주제의 ‘인생무상(人生無常)’ 즉, 아름답게 만발했다가 곧 져 버릴 꽃의 덧없음이 아니라, 비록 비참한 죽음의 순간이 올지라도 이 순간만은 그 아름다움과 매혹적인 향기로 우리에게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는 꽃에 대한 예찬이다. 

비록 세상이 인간에게 던져 주는 것이 일시적이고 부질없는 것일지라도 이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에 감사하고 즐기라는 낙천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을 통해 르누아르는 어차피 덧없는 것이 인생이라면 그 안에서 즐길 수 있는 행복을 최대한 누리라고 일러 준다. 이 행복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놓지 않은 붓 


‘그림은 영혼을 씻어 주는 환희의 선물이어야 한다’라는 그의 진지하고 낙관적인 예술 철학은 실로 깊은 감동을 준다. 하지만 그가 밝고 행복한 그림들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이 세상에서의 고통을 체험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이 처한 온갖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켜 극복했기 때문이다. 

한편, 그는 1890년도 초부터 류머티즘으로 손가락이 비틀어져 붓을 손목에 묶고 작업했으며 그 후에는 퇴행성 류머티즘증세가 심해져 다리가 마비돼 휠체어에 의존하면서도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

또한 그의 어린 두 아들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부상을 입고 부인 알린이 당뇨병으로 사망해 홀로 남게 된 순간에도 그가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영원한 동반자이자 삶의 의미인 그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곧 그 자신이 가장 깊은 고통을 겪었기에 그는 ‘진정한 행복’의 모습을 그릴 수 있었다. 

*자료 참조=박영목 외, 천재교육 <고등학교 독서>


■ <나침반> 3월호 해당 페이지 안내  


*에듀진 기사 링크: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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