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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 ‘n번방’ 사건을 아이의 ‘성인지’ 교육의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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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극장가에는 ‘괴물’이라는 영화가 개봉된 적이 있습니다. 서울 한강에 괴생물체가 출몰하면서 한가로운 주말을 즐기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괴물에게 잡혀가고, 비상사태 속에서 정부의 대응에 분노하던 희생자 가족이 직접 괴물을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이며 어린 딸을 구출해내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괴물’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은 당시 우리 사회가 외면하고 있던 환경 문제를 꼬집으며, ‘화학 폐기물’을 통해 괴물의 출몰을 보여주었고, 괴물로 인한 피해 또한 고스란히 소시민들의 몫으로 전가하는 사회적 불평등을 담기도 했습니다. 당시 관객 수가 천만 명이 넘었을 만큼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괴물이 보여주는 입체적인 컴퓨터 그래픽의 재미도 있었지만, 관객들이 지니고 있던 답답함을 통쾌하게 대변해주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게 ‘괴물’이라는 영화는 우리 사회에 환경 문제를 뛰어넘어 사회 문제에 대한 공감과 질문을 동시에 던졌지만, 영화가 개봉된 이후 우리는 최근 몇 년간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을 거쳐 ‘어금니 아빠’와 ‘강서 PC방 살인사건’의 괴물들을 마주해야 했고, 지난해는 ‘진주 방화 살인사건’과 ‘제주 전남편 살인사건’이라는 괴물까지 대면해야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또 한 번 신종 ‘괴물’의 출현으로 술렁이고 있습니다. ‘괴물’이 관리했다는 ‘n번방’의 실체는 우리가 상상했던 폭력 이상의 악랄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베일에 가려져 있던 ‘괴물’의 신상은 차마 인간이라 부르기조차 섬뜩할 만큼 잔인한 인격을 갖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 ‘괴물’은 아동·청소년을 포함하여 수십 명의 여성성을 착취하고도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고 합리화하는 ‘악의 평범함’까지 보여주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성 착취 사건이 우리에게 전혀 낯선 이슈는 아닌 듯 보입니다. ‘괴물’이라는 영화에서 사회 부조리가 ‘화학 폐기물’을 방류하여 괴물을 출몰하게 했다면, 이번 ‘n번방’ 사건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던 잘못된 ‘성인지’ 구조가 ‘디지털 폐기물’을 방류하여 지금의 ‘괴물’을 출몰하게 만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1990년대 대한민국은 8m 캠코더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몰카’라는 불법 촬영물을 유포한 일명 ‘야동 본좌’가 존재했는가 하면, 2000년대에 들어서는 ‘채팅’ 사이트의 등장으로 ‘사이버 섹스팅’과 ‘사이버 성매매’를 등장시키기도 했습니다. 이후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익명’과 ‘비대면’이라는 시스템을 앞세워 숱한 성차별과 성폭력을 등장시켰고, 결국 ‘소*넷’과 ‘웹*드’라는 성 착취물 거래 암시장까지 등장시켰습니다. 게다가 사이버 성인 방송인 ‘벗방’의 실체를 궁금해하고 있을 때 ‘n번방’의 괴물을 마주했습니다.

어찌 보면 ‘n번방’의 등장은 ‘소*넷’과 ‘웹*드’에서 성 착취물에 중독되어 있던 괴물의 잔당들이 ‘벗방’의 수위에 만족하지 못해 고안해 낸 ‘살로소돔’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앞으로 얼마나 더 은밀하고 보안이 강화된 디지털 아지트가 등장할지’의 여부입니다.

특히, 이번 ‘괴물’의 등장은 과거 괴물들과의 대면보다 다른 양상의 사회적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사가 그 어느 때보다 가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일명 ‘자경단’이라고 자처하는 한 소셜 커뮤니티 단체는 ‘괴물’의 신상 공개로도 만족하지 못해 ‘n번방’에 참여했던 수백 명의 신상을 일방적으로 공개해 ‘사회적 재판’까지 벌이고 있습니다. 더구나 언론 매체에 따르면, 자경단에서 확인한 참가자 대부분이 중·고등학생이라고 밝혀 이들의 사회적 재판이 10대 청소년을 향한 사회 혐오 현상으로 변질되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여기서 더욱 안타까운 것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피해 여성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특히, 피해 여성에 포함된 10대 청소년들에게 절대적인 보호와 관심이 필요한데도 사회의 초점은 오직 ‘괴물’에게만 향해 있습니다. 다행히 정부 기관에서 피해 여성을 위한 ‘특별지원단’을 꾸려 발 빠르게 피해 복구를 하고 있지만, ‘괴물’이 사라진 ‘n번방’에서는 여전히 제2, 제3의 ‘괴물’을 자처하며 피해 여성들의 영상물을 거래하는 2차 피해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태도입니다. 역대급 ‘괴물’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사회적으로 자정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아이들이 자주 접근하는 일부 사이트에서는 ‘n번방’을 우상화하는 모양새까지 보이고 있고, 이를 바라보는 아이들은 그저 또래들과의 대화를 위해 이 사건을 재미로 받아들이는 데 바쁩니다. 게다가 ‘코로나 19’로 인해 학교 수업이 연기되면서 정작 이번 사건의 본질을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할 주체가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결국, 또 부모의 역할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착잡하고 불편할 수밖에 없다는 건 사실입니다. 각종 매체에서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뉴스를 보며 혹시라도 우리 아이가 ‘구경꾼’이라도 된 건 아닌지, 우연히 클릭해서 얻게 된 성 착취물 영상들을 아이들끼리 돌려보지는 않았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더욱이 ‘괴물’을 도왔던 조력자가 10대 남자아이로 밝혀지면서 걱정은 더 커져만 갑니다.

딸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는 고민이 더 커집니다. 일단 수십 명의 피해 여성 중에서 10대 여자아이들이 다수 포함된 데다 초등학생까지 있었다고 하니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고, 더구나 유사한 ‘n번방’까지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어 스마트폰에 빠진 아이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지 조바심이 더 커집니다.

이 시점에서 부모는 자녀와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아이들이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알아야 하고, 혹시라도 아이가 잘못된 해석을 하고 있다면 부모가 수정하고 보완해줘야 합니다. 주의할 점은, 부모의 잘못된 ‘성인지’로 인해 사건의 본질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피해 여성의 도덕성을 호도한다든지 사건의 원인을 단순히 가정사와 소셜미디어의 문제로만 일단락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아이에게 ‘잘못된 성인지’를 심어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전 칼럼에서 저는 아이에게 가장 선행되어야 할 교육이 ‘성 인지 감수성’ 교육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또, ‘성 인지 감수성’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성’ 자체만을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마주해야 할 수많은 ‘사람’을 알아가는 인문 과정이자, 아이의 ‘자아’를 도덕적으로 완성해가는 철학 과정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한번 부탁드리건대, 부디 ‘성 인지 감수성’ 교육이 다른 교육에 밀리지 않도록 해주세요. 우리 아이의 내면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소중하다.’라는 사실이 자리잡힐 수 있도록 부모가 먼저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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