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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뉴스

[다정쌤의 미국생활] 코로나19가 일깨운 ‘우월함’보다 ‘우리 함께’

[에듀인뉴스] 동반휴직으로 미국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학교생활과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이자, 커다란 쉼표 같은 시간이다. 숨 가쁘게 달리다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다. 쏟아지듯 부여되는 일들에 묻혀 살다보면 무엇 때문에 애 쓰고 있는지도 잊는다. 그래서 가끔은 한 발 떨어져 보는 것이 필요하다. 거리를 두고 보면 놓쳤던 것이 보이기도 하고, 다른 각도의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미국에서의 시간이 그런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교사는 가장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직업군이다. 학교로 제한된 공간을 벗어나면,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이 더 선명하게 보일까? 한국 공교육 현장을 벗어나 타지에 서면,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 직접 삶으로 미국 문화를 경험하며 ‘차이’에서 파생되는 새로운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그 생각을 확장 시키는 과정을 공유하고 싶다.


봄을 맞이하는 세상은 아름답지만, 그 풍경 속에 사람은 사라졌다. 어린이 놀이터 마저 출입이 금지된 상태다.(사진=이다정 교사)

[에듀인뉴스] 제한된 삶의 영역에서 세계를 바라보던 작은 창, 그 창을 넓히기 위해 미국에 왔다. 그러나 온지 2개월이 된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동시에 멈추어 버렸다. 세계가 함께 아파하고 혼란에 빠져 있는 지금, 일상이 무너진 지금, 우리에겐 무엇이 필요할까?


한 달 전부터, 한국에서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이곳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여전히 마음과 귀를 한국에 열어두었던 나는 일상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의 평화로움 속에서도 옅은 공포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에게 한국 상황은 ‘그 곳의 일’이 아닌 ‘ 나의 일’ 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 찬 쇼핑몰 매장에서 눈으로 사람들을 보고는 있었지만 한 손은 긴박한 한국 상황이 뜬 스마트폰을 쥐고 있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한 순간인데.. 한국은 이런 일상이 사라졌어.’


한국을 걱정하던 상황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미국이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나라가 되면서 패닉 상태가 된 것이다. 어마어마한 사망자를 내며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는 유럽의 상황까지.


비단, 지금 상황은 ‘그들의 일’ 이 아닌, ‘우리의 일’, ‘인류의 일’ 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은 외출금지라는 극단의 조취가 취해진 상태. 우리 가족은 낯선 곳에서 더 고립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외출 시 서로 6피트 간격을 유지하지 않아 벌금을 물었다는 소식까지 듣고 나니 덤덤 하려 애쓴 마음이 마구 흔들린다.


감염을 막기 위한 물리적 거리두기. 지금 꼭 필요하다. 하지만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 마음의 간격은 좁아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국적, 인종 별로 분열하고 비방하는 내용의 글이 난무하는 인터넷 글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특히 지금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잘 했고, 너희는 실패했다’, ‘그래서 우리가 더 우월하다’는 식의 글은 ‘이건 아닌데...’라는 탄식을 하게 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이 우월함을 증명하려 애써왔다. 자신과 다른 것은 배척하고 눌러 '차이'를 드러내 등급화 시켰다. 식민지 지배, 인종차별과 같은 끔찍한 일들도 그 때는 정복자인 그들의 우월함을 위해 정당화 되었던 것이었다.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는 경제력으로 '차이'가 파생되고 그 차이를 증폭시켜 자신의 우월함과 안위감을 확보하려고 한다.
 
책 <총, 균, 쇠>는 문명 발전이 '인종적 우열'에 따른 것이 아닌, '지리, 환경 요인'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중에서 '균'에 대한 부분은 지금과같은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찍이 가축화 된 동물과 함께 살며 균에 대한 면역성과 저항력을 기른 유럽인. 그런 유럽인이 쳐들어 왔을 때 그들이 지닌 균에 노출된 적 없었던 인디언들은 몰살하듯 죽었다. 균에 의해 정복이 이루어졌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서양인들은 특수한 인종이 더 우월하기 때문이라고 귀결시키고 믿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이 지점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것이다.


왜 인간은 이토록 '우월함'을 원하는 것일까? 과연 '우월함'이라고 느꼈던 것들은 정말 우월했던 것일까? 


한국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대처하는데 있어 전략과 기술을 선점했다. 충분한 시간이 있었던 서양보다 더 치밀하고 맹렬히 맞서 우수한 본보기가 되는 나라가 되었다.


냄비근성이라고 비난했던 ‘빨리 빨리’ 습성은 신속성이란 무기가 되었고, 투명성을 중시한 리더십의 노력은 방패가 되었다. 


외국 나가면 모두 애국자라고, 멀리서 보는 나의 나라가 자랑스럽고 또 자랑스럽다. 그러나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품격 있는 다음 횡보는 무엇일까?


‘우리가 낫다’는 우월함에 도취되어서는 안 된다. 무너지고 있는 나라의 불행을 ‘그들의 일’이라고만 여겨서는 안 된다.


선진국, 강대국이 휘청대는 모습을 관망할 때는 충격, 스펙타클로 다가오지만, 그들이 우리, 곧 인류임을 자각했을 때는 함께 극복해야 한다는 의지가 생길 것이다. 우리는 함께 극복하고자하는 의지를 모아야 한다. 인종, 국가에 상관없이 함께 해야 한다.


한국의 우수한 코로나 대처에 대해 다룬 뉴스(맨왼쪽)와 아침부터 생필품을 사기 위해 모인 사람들 모습. 이 모든 혼란이 사라지고 하늘에 뜬 무지개를 함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사진=이다정 교사)

마트에 떨어진 쌀과 휴지를 보면, 정말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지기도 한다. 아직 이곳의 정서를 잘 몰라서 주변 사람들은 어떤 심정인지 몰라 답답하기도 하다.


모든 사람을 잠재적 바이러스 보유자로 보아야 하는 상황은 잠시 집 주변을 걷는 것조차 꺼리게 만든다. 산책을 하다가 혹 사람이 가까이 오면 피하듯 돌아 걷는다. 이런 상황이 너무 슬프다. 사람이란 존재를 바이러스로 치환해 버리는 것 같아 알 수 없는 죄책감도 든다.


두려움은 바이러스보다 더 빨리 전염되는 것 같다. 그러나 가장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은 앞서 언급했듯 바로, 한국 기사에 달린 댓글을 읽을 때이다.


소위 선진국이라던 나라들이 속수무책에 빠져 있는 상황을 보며 공감하기 보다는 비방하고, 폄하하고, 비꼬는 글이 많다.


이런 글을 읽을 때면 날카로운 것에 찔리는 느낌이다. 더불어 ‘우리는 너희보다 낫다’라는 우월감에 젖은 글은 지난 잘못된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차이'를 우월함과 하등함으로 바로 연결시키는 작동기제는 인류 역사 속 많은 과오를 남겼다.


같은 잘못을 번복하게 되지는 않을까 우려스럽다.


집계된 국가 별 확진자수, 집계된 사망자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닌, 나와 너,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할 때이다. 이 순간 형언 못할 고통 가운데 있는 그들은 누군가의 가족, 누군가의 친구임을 기억해야 한다.


정보 전달 속도가 빨라지며 이미지와 영상을 쉽고 자주 보게 되면서 사람들은 무감각해진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다르다고 안도한다. 아파하고 있는 그들을 공감하지 못하고 구분 지으려고만 하면 우리에겐 사람이란 존재가 아닌, 인종과 국가라는 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다.


함께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 마음을 모아야 한다. 감염을 막기 위한 물리적 간격은 두어야 하지만, 마음의 간격은 좁혀야 할 때이다. 


모두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며.. 미국 오레곤주에서.


이다정 경기 신능중 교사
이다정 경기 신능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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