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달항아리와도 같아라… 단색조 회화의 텅 빈 충만

박서보, 정상화, 김근태, 이진우, 김택상 등
단색조 작가 18인 ‘텅 빈 충만’展, 10일부터 박여숙화랑


 
풍만한 겉모습과 좋은 풍채에 그 속이 꽉 차 있을 것 같지만 정작 안은 텅 빈 달항아리. 멀리서 보면 한없이 둥글기만 한 것 같아도 막상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일면 찌그러져 있기도 하다. 색깔이 있는 듯 없는 듯한 유약의 우윳빛깔은 달항아리의 멋을 한껏 더하는 요소 중 하나다. 한국 문화 고유의 절제와 물질적 비워냄을 통해 충만한 정신세계를 담고 있는 달항아리의 예술적 특질은 한국 현대미술의 큰 축인 단색조 회화의 고요한 아름다움과 궤를 같이한다.
 

 
달항아리의 그것을 닮은 단색조 회화 작가 18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박서보, 윤형근, 김창열, 정상화, 김근태, 이진우, 김택상, 남춘모 등 한국 현대미술의 큰 줄기를 이루는 단색조 회화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서울 용산구 소월로 박여숙화랑에 내걸렸다. 기존 1세대 단색조 작가들을 비롯해 그 저변을 확대할 젊은 작가들을 새롭게 포함했으며, 회화와 도자, 사진에 이르기까지 장르와 세대를 망라해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달항아리를 보고 있으면, 1970년대 중후반부터 오늘날까지의 한국 현대미술의 큰 흐름을 이루고 있는 일련의 서구미술의 경향과 형식적·내용적으로 매우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 달항아리는 한국 현대미술이 서구의 미니멀리즘과 기본부터 확연하게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단색조 회화를 재료의 물성을 통한 ‘시각적 촉감’과 ‘시간의 중첩,’ ‘행위의 반복’ 그리고 지지체가 곧 작품이 되는 지지체가 곧 표면이라는 점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가 스스로의 모습, 형태를 갖춰 간다는 시간의 예술이라는 점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을 보탰다.
 
단색조 회화에서의 시각적 촉감은 회화의 기본인 지지체와 그 위에 그린다는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물감, 안료의 물성에 의해 드러나는 질감을 눈으로 보면서 느낄 수 있다. 손으로 직접 만지거나 시각적으로 공간적 환영을 통하는 것이 아니라 화면의 질감 그 자체를 느끼는 것에 가깝다는 것이다.
 


 
박서보의 연속해서 반복적으로 긋는 선은 계속되면서 지지체인 종이의 결을 밀어낸다. 그리고 그 밀려난 종이를 구성하는 펄프의 속살이 선과 색과 함께 뒤섞여 수많은 결을 만들어 촉각적인 화면을 조성한다. 그의 ‘결의 회화’는 거듭된 행위로 인해 어느새 무아지경에 들어 스스로가 하는 행위의 동기와 결과를 놓아버린다. 그렇게 결과를 방임하는 무관심의 결과야말로 박서보 작업의 백미다. 작가가 말하는 ‘무위자연’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유자재하고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는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에 따른 것이며, 사물의 실상과 자신이 합일함으로써 얻어지는 정신적 원만성을 뜻한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작가의 무한한 행위의 반복은 스스로를 드러내는 과정이다.
 
정상화는 고령토를 지지체에 칠하고 접었다 펴면서 생기는 선을 토대로 물감을 계속 쌓아 올린 후 다시 뜯어내고 메우기를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틈과 틈을 메꿔 나간다. 고령토 또는 물감을 쌓아 올리지만 물감은 여전히 결과적으로 지지체의 일부다. 정상화는 대상을 묘사하거나 장식적인 방식을 배제한 채 오로지 쌓아 올린 그 지지체를 종횡으로 접고 펼 뿐이다. 결과적으로 지지체인 동시에 그림인 작업에서 드러나는 흰색과 검은색, 자주색, 청색은 어떤 의미도 없다. 그저 행위를 위해 동원된 조연일 뿐이다. 정상화에게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결과일지 모르는 곳에 다다르는 과정이다.
 
김근태의 작업은 형태나 이미지가 없다. 따라서 논리나 해석, 분별이나 이성으로는 독해가 어려운 셈이다. 반면 매우 단순하기도 하다. 단지 흰색이나 흑색을 수십 번 반복해서 칠하기 때문이지만 한편으로는 같은 작업을 단순하게 반복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감층이 중첩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흰색 혹은 흑색은 겹쳐지고 투영되면서 본래의 색이 아닌 결이 다른 겹겹의 색이 된다. 작업 과정에서 우연히 남게 되는 흠집이 무덤덤해 보일 수 있는 그림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진우의 화면은 강렬한 질감을 띤다. 그의 회화에는 행위와 대상이 동시에 공존한다. 그는 캔버스 위에 나무를 태워 얻은 숯을 붙인 다음, 그 위에 한지로 덮어 붙인 다음 쇠솔로 문지르고 긁어낸 후 다시 한지를 덮어 바르고 그 위에 또 쇠솔질을 한다. 무목적인 노동 끝에 작가는 숯과 그 틈새를 뒤덮는 한지의 물성이 이뤄내는 질감을 얻게 된다. 이를 통해 이진우는 스스로를 갈아내는 동시에 자신이라는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기를 거듭하며 자신을 깨닫는다. 이렇게 안팎이 동시에 공존하며 동시에 수시로 역할이 서로 바뀌는 과정에서 숯과 한지는 물아일체를 이룬다.
 
김택상의 지지체는 프레임이 없는 얇디얇은 천이다. 거의 존재를 느낄 수 없는 이 지지체를 매우 농도가 낮은, 다만 순수한 물과 구별하기 위해 색을 풀어놓았으나 맑은 물이나 다름없는 물감물 속에 담그고 그 물이 증발하기를 기다린다. 이 행위가 반복되고 시간이 거듭됨에 따라 지지체는 서서히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질료로서의 물감이 지지체인 화면에 흡수되면서 상호 동화돼 질료와 지지체가 하나로 통합되며 그 중첩된 시간의 축적물 또는 퇴적물은 작품으로 빚어진다.

 
김덕한은 한국의 오랜 전통 안료인 옻칠을 통해 자신의 작업을 완성한다. 기나긴 시간을 요하는 그의 작업은 그 지난한 시간이 중첩돼 스스로를 드러내는 과정과도 같다. 옻칠을 칠하고 건조시키는 작업은 지문이 닳아 없어질 만큼의 인내와 고통을 수반한다. 작가는 한 가지 색을 바르고 건조되길 기다렸다가 사포질을 한다. 그리고 이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의 작업의 재미는 사포질에 있다. 자신의 몸무게를 실어 사포질을 반복하다 보면 먼저 칠해진 색들의 흔적이 드러난다. 예기치 않은 뜻밖의 색이 나타날 그 순간을 기다리며 작가는 사포질을 한다. 의도치 않은 사포질의 완급이나 힘의 분배와 상관없이 스스로 지지체인 동시에 그림이 되는, 우연인 듯 수줍게 드러나는 작품의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다.
 
단색조 회화의 특징은 시간의 중첩과 행위의 반복으로 작업이 겹겹이 쌓아 올려졌다는 것이다. 지지체에 매우 균질한 행위가 거듭되면서 그것이 쌓일 때마다 결과물은 지지체와 혼연일체가 되면서 서정적인 느낌을 준다. 또 다른 특징은 단색조 회화에는 안과 밖이 공존한다는 점이다. 보이지만 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그림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지체 자체를 인식하는 순간, 그 화면을 지탱하고 있는 지지체 자체의 시각적인 질감이 하나의 그림으로 완결되며 작품으로 다가온다. 즉, 시각적 촉감을 통해 깨닫게 되는 셈이다. 재현된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닌, 보는 순간 그저 순수하게 화면에 드러나는 지지체의 질감만을 통해 본다는 점에서 보는 이의 감정적 일체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서양의 모노크롬 회화와 다른 지점이다. 모노크롬이 형식적으로 전통적인 회화적 방법론을 부정함으로써 구현하고자 했다면 한국의 단색조 회화는 속이 텅 빈 달항아리처럼 완벽한 외형, 즉 형식도 내용도 비어있는, 그래서 사용하는 이가 물을 부어두든, 기름을 넣어두든, 곡식을 담아두든지 간에 사용자에게 그 내용을 채우도록 한다는 점에서 성격이 확연하게 다르다. 이번 전시 전시타이틀이 ‘텅 빈 충만’인 이유도 이와 같다. 전시는 10일부터 5월 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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