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데이비드 오스트로스키, 오류와 실수의 우연적 묘미

낙서하듯 재빠르게 그어 나간 선과 여백이 공존하는 화면
국내 첫 개인전 ‘사람, 그림, 감정’, 5월 18일까지 리안갤러리 서울



누구나 불완전하고 미숙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에서만큼은 어설픔이 허용될 수 있을까. 젊은 나이에 독일을 대표하는 유망 작가로 급부상한 데이비드 오스트로스키(David Ostrowski·39)는 화면에 아예 대놓고 서투르게 작업하는 방식을 내세운다. 작가는 오류, 실수 따위와 같이 우발적이고 우연적인 것을 회화적 모티프로 채택한다. 모더니즘 회화에서 선, 면, 색채는 작가의 고도의 정신성을 전달하는 표현적 기호다. 오스트로스키는 이러한 기존 회화 방식을 거부하고 오류나 실수와 같은 무의미, 무가치성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자 한다. 그의 화면 앞에선 괜스레 주눅들 필요가 없다. 보는 이가 보이는 대로 보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면 될 뿐이다. 현대미술, 그중에서도 추상화 특유의 알 수 없음에서 오는 낯섦과 거부감을 오스트로스키의 그림에서는 느낄 필요가 없다. 그는 어떤 대상을 표현하거나 고정된 상징적 의미가 없이 열린 해석의 가능성을 제안하고 있다. 
 

 
대표 연작 <F>에서 회화 공간은 무(無)이자 공허다. ‘F’는 독일어 Fehler, 즉 실패, 실수를 뜻한다. 거의 비어 있는 이 공간에는 스프레이 페인트나 연필로 마치 낙서를 하듯이 빠르게 그어 나간 선들만이 존재한다. 작가는 이러한 선이 하나의 표시이자 흔적으로서 자신의 표현성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모더니즘 회화와 달리 작가는 회화 공간이 작가 자신의 자기표현의 공간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 오스트로스키는 가능한 한 예술적 테크닉을 배제하고 스프레이 페인트를 사용해 순간적으로 선을 그어 나감으로써 필연적인 실수와 오류를 빚는다. 오른손잡이로 오른손으로 그리면서도 흡사 왼손으로 그린 듯한 어수룩함이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의 캔버스를 언뜻 보면 주로 흰색, 검은색, 노란색 등의 모노톤으로 채워진 것 같지만, 한 걸음 다가서서 가까이 보면 단순히 단일색의 빈 공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두텁게, 때론 얇게 칠한 아크릴 물감의 다양한 붓 자국과 질감은 서로 다른 미묘한 변주를 연출한다. 이러한 효과는 군데군데 덧붙인 종이와 리넨 조각을 통해 화면에 공간 분할을 야기하며 세밀한 깊이감을 자아낸다. 흰색 톤으로 된 회화의 경우 파란색 스프레이로 속도감 있게 그린 선의 유동성은 실수와 우연적 구성의 묘미를 드러내며 무가치의 미학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오스트로스키는 자신이 우발적으로 창조한 물리적 실수의 표식을 통해 고정적 내러티브에 함몰되지 않고 관객들 스스로의 감정을 반영케 한다. 이를테면, 작가가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파란색은 실제로는 작가가 가장 싫어하는 색이. 그러나 작가는 이를 의도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스스로 그 색과 친숙해지려 했으며 바다, 하늘, 물 등과 같이 그 색에 부여된 일반적 의미와 상징성에서 벗어나 관객으로 하여금 다른 방식으로 읽히기를 원했단다. 그가 실수라고 말하는 푸른 선들은 빈 공간에 활기를 불어넣는 에너지의 표상으로 볼 수도 있으며 불규칙적이고 우발적인 리듬을 유발하며 빈 공간의 무료함을 깨뜨리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
 
그의 회화에 대한 독창적 접근법은 전시 방식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으레 회화는 화이트큐브 벽의 중앙을 차지하며 관객을 압도하듯이 내걸리기 마련이지만, 작가는 이러한 관습적 위치에서 벗어나 작품을 매우 낮게 설치, 관객의 시선과 동등하게 건다. 회화가 관객과 동등한 존재로서 교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때로는 벽이 아닌, 천장에서 내려오는 와이어에 회화를 달아 매달아 놓기도 하는데, 이는 작품이 설치된 장소의 환경까지 잠재적 회화의 일부로 수용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존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캔버스 내부 공간의 부차적 요소와 표현성을 최소화함으로써 관객은 회화 주위를 돌아다니며 회화 내외부의 맥락을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다.
 

 
작가의 이러한 의도가 극대화된 지점은 카펫 작품에서 찾을 수 있다. 양모로 제작된 이 고가의 카펫은 틀림없는 작품이지만, 오스트로스키는 이를 바닥에 깔아놓고 그 위에 작품을 매달아 놓아 관객이 자연스레 카펫을 밟게끔 유도한다. 오류와 실수를 모티프로 수용했듯이 고급 예술과 비예술, 순수미술과 일상, 이성과 비이성의 경계를 해체하고자 한 것이다.
 
독일 쾰른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독창적인 추상회화를 선보이고 있는 데이비드 오스트로스키의 국내 첫 개인전 <Menschen, Bilder, Emotionen(사람, 그림, 감정)>이 마련됐다. 오스트로스키에게 회화는 난해한 예술가의 이론이나 철학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매체가 아니다. 옳든 그르든, 심오하든 단순하든 사람들의 감정이 교류하는 만남의 장이다. 5월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리안갤러리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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