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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인의 대학시평] 60년 등록금 논쟁사 끊고, 무상등록금 시대 열자

[에듀인뉴스] ‘대학이 문제’라는 주장은 한국사회에서 식상할 정도로 당연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만큼 사회구성원 모두가 지금의 대학이 가진 한계에 대해 공감한다. 하지만 그에 비해 대학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공간은 현저히 부족하다. 교육에 대해 말하는 테이블에서 고등교육은 전문가 영역으로 취급되고, 청년에 대해 말하는 테이블에서 대학은 기득권으로 비춰지곤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대학’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답답한 대학사회에 균열을 내고 싶다. 그 균열이 더 나은 대학을 만드는 길에 하나의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사진=MBC 뉴스 캡처)
(사진=MBC 뉴스 캡처)

[에듀인뉴스] ‘개나리 투쟁’은 해마다 3월이면 반복되었던 등록금 인하 운동을 말한다.


대학생들은 3월이 되면 등록금 인하를 요구했고, 학교는 기다렸다는 듯이 등록금 일부를 반환해서 대학가 전체에 술파티가 벌어지던 때도 있었다.


이에 등록금 투쟁이 3월에만 반짝해선 안 된다며, 지속가능한 등록금 논의를 위해 개나리 투쟁을 넘어서는 등록금 투쟁이 필요하다고 모두가 말하곤 했다.


나는 이러한 개나리 투쟁의 마지막 세대였다. 구호 자체도 등록금 ‘인하’가 아니라 ‘동결’일 정도로, 등록금 투쟁이 3월에만 하는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운동이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개나리 투쟁은 형식적 운동의 잔흔임에도 불구하고, 등록금 투쟁이 달력사업으로나마 그 역할을 하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적어도 학생들은 매해 3월마다 등록금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서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개나리 투쟁이라는 말조차 찾아볼 수 없다. 2011년 반값등록금 운동 이후 등록금에 대한 사회적 논의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 10년 만에 ‘코로나’라는 전대미문 재난이 닥친 지금, 등록금 반환이라는 시대적 요구로 등록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다시 불붙고 있다.


1950년대와 60년대 초, 대학 등록금은 한도제로 운영되었다. 대학이 한도를 넘어 등록금을 받으면 정부가 초과분을 강제로 환수하여 학생들에게 지급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그러나 1966년 박정희 정권은 이를 폐지했다. 그러자 사립대 등록금은 연 평균 29%씩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등록금을 내지 못해 학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우리사회에선 첫 번째로 등록금에 대한 전 사회적 논의가 일었다.


당시 문교부는 등록금 지원 방안을 고려했지만 소수 대학생들을 위해 국고를 열 수 없다는 이유로 계획은 백지화됐다.


이후 등록금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소위 우골탑의 시대가 열렸다. 결정적 계기는 1989년 노태우 정권의 사립대 등록금 자율화 조치였다.


1980년대 등록금은 문교부와 경제기획원이 협의한 인상률에 맞추어 책정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사립대 등록금 자율화 조치를 통해 등록금 책정의 권한을 대학에 전면적으로 맡겨버렸다.


사립대 등록금은 소 한 마리 가격을 넘어섰고, 대학이 상아탑이 아니라 우골탑이 되었다는 말은 현실이 되었다.


명동 삭발남 반값등록금 시위 영상 일부 캡처.
'명동 삭발남 반값등록금 시위' 영상 일부 캡처.

2000년에 들어 등록금은 전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대학진학의 비율이 높아져 더 이상 대학생은 소수의 엘리트가 아니었다. 열 명 중 여덟 명이 대학에 진학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등록금은 사회의 책임이 아니라 개인의 책임이었고, IMF 사태 이후 경제위기 속에서 서민들이 감당하기에는 심각한 고액이었다.


하지만 대학은 여전히 등록금 인상을 고집했다. 정부는 이러한 등록금 인상을 정책적으로 보조해주었다.


김대중 정권은 2002년에 산업 대학 등록금을, 2003년에는 모든 국립대 등록금을 자율화했다. 사립대와 국립대는 서로 번갈아가며 등록금을 물가상승률의 약 2배가량에 맞추어 꾸준히 인상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등록금 삭감을 위한 사회적 운동의 전개는 필연적이었다.


그러나 대학은 단과대학별 차등인상이라는 전략으로 교묘하게 등록금 인상을 추진하며 등록금 인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1년 반값 등록금 운동이 등장했다. 반값등록금 공약을 부정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전 사회적 분노의 폭발이었다.


반값 등록금 운동은 단순히 등록금을 반으로 내리자는 취지가 아니었다. 교육권 보장에 대한 전사회적인 요구였고, 적어도 교육의 영역에는 신자유주의 시장논리가 들어와선 안 된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반값등록금 운동은 사실상 실패했다. 시민들의 거센 요구에 정부가 등록금 상한제 도입과 등록금심의위원회 설치 등으로 등록금 인상을 규제했고, 국가장학금 도입으로 등록금 부담의 일부를 경감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등록금이 사회적 책임으로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학의 권한으로 개인이 부담지어야 한다는 원칙을 부수지는 못했다.


대한민국의 등록금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고, 학생들이 등록금으로 인해 수십 년째 고통 받고 있는 것 또한 변함이 없다. 지난 해 학자금 대출 금액의 규모는 무려 1조8000억원에 달하고 63만명이 대출을 받았다.


지난 60년 한국사회에서 등록금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는 언제나 실패해왔고, 이에 등록금으로 인한 사회적 고통은 점점 더 커져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사회는 ‘코로나’라는 재난 앞에서 많은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코로나는 무엇이 그 사회의 병폐이고 모순이었는지를 밝혀내고 있다. 역설적으로 재난으로 인해 본래 재난이었던 지점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대학에선 그것이 바로 등록금이다. 비대면 수업의 질적 하락, 실습수업의 진행불가, 도서관 등 학교 시설물의 이용불가 등 재난으로 인한 대학의 문제가 한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목소리는 등록금 반환이라는 하나의 요구로 수렴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등록금 문제가 심각했었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등록금 문제의 핵심은 비용의 정도가 아니라, 책임의 소재다.


사립대학의 비중이 고등교육의 80%에 달하는 구조에서 사립대학의 등록금 의존율은 대학재정의 절반을 넘는다. 국가가 고등교육 전반을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애초에 구조적으로 등록금을 낮출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책임지면 될 일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고등교육재정 지원은 OECD 국가 평균에도 못 미친다. 정부에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어, 여태까지 유지해온 부당한 지점을 바로 잡는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이를 위해선 ‘수익자부담원칙’이라는 근본적인 장벽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말 그대로 이익을 보는 사람이 그 비용을 부담하라는 것이다. 등록금에 대한 사회적 논의 때마다 변하지 않았던 원칙이다.


그러나 묻고 싶다. 언제부터 권리가 이익으로 취급되었는가.


교육은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보장받아야할 당연한 권리이고, 교육의 혜택은 그 개인이 아니라 사회 모두가 공유하는 공익이 되어야 한다.


지금 대학이 학벌로 취급되니 사익이 아니냐고 말할 것이 아니라, 사회가 책임지는 권리이자 공익으로 만들어내서 그 학벌을 타파하자고 말하는 것이 더 낫고 옳은 방식이다.


코로나로 인해 수업의 형식부터 교사의 지위와 역할까지, 교육의 많은 영역에서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때로 위기는 더 나은 변화를 위한 계기가 되기도 한다. 비대면 강의와 대면 강의의 비용을 비교해 등록금의 얼마를 반환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은 불필요하다.


고등교육의 책임을 정부가, 국가가, 사회가 지겠다는 선언과 의지를 보여야 한다. 60년 등록금 논쟁사를 끝내고, 무상등록금 시대를 열어야 한다.


김창인 정의당 교육개혁특별위원장. "09학번으로 중앙대에 입학해 학생운동을 했다. 대학기업화의 상징인 중앙대에서 두산재단에 맞섰고 그 대가로 무기정학 등 징계폭탄을 맞았다. 대학은 기업이 아니라 교육기관이고, 교육은 시장이 아니라 공공의 영역이라고 믿었다. 이에 저항을 지속하기 위해 2014년 대학을 자퇴했다. 자퇴 이후 '괴물이 된 대학', '추락하는 대학에 날개가 있을까' 등의 책을 저술했고, ‘이상한 대학교’ 프로젝트를 통해 대안대학 만들기 활동을 하고 있다. 정의당에서 교육개혁특별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김창인 정의당 교육개혁특별위원장. "09학번으로 중앙대에 입학해 학생운동을 했다. 대학기업화의 상징인 중앙대에서 두산재단에 맞섰고 그 대가로 무기정학 등 징계폭탄을 맞았다. 대학은 기업이 아니라 교육기관이고, 교육은 시장이 아니라 공공의 영역이라고 믿었다. 이에 저항을 지속하기 위해 2014년 대학을 자퇴했다. 자퇴 이후 '괴물이 된 대학', '추락하는 대학에 날개가 있을까' 등의 책을 저술했고, ‘이상한 대학교’ 프로젝트를 통해 대안대학 만들기 활동을 하고 있다. 정의당에서 교육개혁특별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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