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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말많고 탈많던 학종 서류 블라인드 평가, 사실상 원위치

-의무화하겠다던 학종 서류 블라인드 평가, 용두사미로 끝나나 
-학종에 서류 블라인드 평가 도입? 학종 근간 흔드는 일 
-말뿐인 공정성 강화, 현실은 탁상행정, 결과는 입시지옥  
-모순되는 교육정책…우리 교육 어디로? 
밀양여중 수업 시간 [사진 제공=경남교육청]

교육부가 올해 대입부터 의무 시행하기로 했던 ‘학생부종합전형 서류 블라인드 평가’를 사실상 대학 선택에 맡긴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부가 최근 부산 모처에서 대학 입학처 관계자들과 모임을 갖고, 대입 지원자의 학종 서류를 대학에 제공할 때 이름, 출신고교명 등이 지워진 서류와 함께 서류 원본도 동시에 제공키로 한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대학들 가운데 고교정상화기여대학 사업에 선정된 대학은 개인정보가 지워진 서류와 원본 서류 모두를 활용해 서류 블라인드 평가를 시험 운영할 것으로 보인다. 이때 원본 서류는 대학 전산관계자 등이 전형 지원 조건 등을 확인하는 데 활용하고, 입학사정관은 블라인드 서류로 평가를 실시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하지만 서류 블라인드 평가 실시에 강제력이 없고 많은 대학이 서류 블라인드 평가를  반대하고 있는 만큼, 고교정상화기여대학 중에서도 블라인드 평가를 실시하는 대학 수는 많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고교정상화기여대학 사업에 선정되지 않은 나머지 대학들은 교육부의 눈치를 볼 이유도 없어, 대부분이 학종 서류 블라인드 평가를 실시하지 않겠다는 분위기이다. 

의무화하겠다던 학종 서류 블라인드 평가, 용두사미로 끝나나 
지난해 11월 교육부는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방안’을 발표하면서, 2021학년도 대입부터 ‘학종 서류평가 블라인드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출신 고교의 후광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이미 블라인드 평가를 실시하고 있는 학종 면접에 더해 서류평가까지도 블라인드 평가를 실시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교육부의 이 같은 발표에, 일선 고교와 대학에서는 학종 평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탁상행정의 결과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학교생활기록부를 통해 학생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학업을 이어왔는지를 아는 것은 학종 평가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인데, 블라인드 평가가 되면 서류의 행간을 읽는 ‘정성평가’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학종 서류 블라인드 평가는 교육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방 일반고 학생들에게 직격타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 

학종에 서류 블라인드 평가 도입? 학종 근간 흔드는 일 
그동안 학종은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학업과 활동을 진취적이고 성실하게 수행해 온 학생들을 학생부 기록을 통해 알아보고, 이들의 역량을 높이 평가해 왔다. 하지만 서류 블라인드 평가가 실시되면 학생부 기록된 내용 자체만으로 평가를 해야 해 이 같은 ‘맥락 읽기’가 이뤄질 수 없다. 

봉사활동을 예로 보자. 다양한 봉사처를 선택해 갈 수 있는 대도시 학생들과 달리, 지방 소도시나 농어촌 지역 학생들은 봉사처 선택의 폭이 매우 좁다. 이 때문에 주로 하는 것이 학교 미화활동이나 멘토활동 등이다.

그런데 학생의 출신 지역과 출신 고교명이 블라인드 처리되면 대학은 이런 맥락을 읽지 못한 채 기록 자체만 보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봉사처 한 곳을 선택하는 데도 수많은 고려가 이루어지는 것이 현실인데, 처음부터 빈약한 선택지가 주어지는 지방 학생들에게 가해질 피해가 비단 봉사활동에서뿐일까. 

이처럼 서류 블라인드 평가는 학생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오로지 달리기 기록만으로 학생을 평가하게 한다. 이는 ‘결과만이 아닌 가능성까지 함께 보고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학종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며, 학종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서류 블라인드 평가는 또한 대학의 학종 선발이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는 데서 대학의 거센 반발을 샀다. 교육부가 출신고교 후광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학생 정보를 가린 채 학종 서류를 제공하겠다는 것은, 대학이 특목·자사고나 입시 명문고 출신 지원자를 우선 선발하려 한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랬던 교육부가 블라인드 처리 된 서류와 원본 서류를 대학에 동시에 제공하고 시행은 대학 자율에 맡기겠다고 하니, 대학은 기가 막힐 뿐이다. 제도를 만들 당시에는 미덥지 못했던 대학이 제도를 만들고 나니 미더워진 것은 아닐 테니, 교육부가 이 제도를 앞뒤 생각하지 않고 얼마나 졸속으로 만들었는가만 증명한 결과다. 



말뿐인 공정성 강화, 현실은 탁상행정 


교육부의 좌충우돌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교육부는 학종이 불공정하고 수능은 공정하다고 주장하는 여론에 편승해, 서울 상위권 16개 대학에 2022학년도부터 학종을 축소하고 정시 수능 위주 전형 선발인원을 40% 이상 확대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 역시 고교현장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의 발로였다. 

고교 현장에서는 이미 2015 개정교육과정에 따라 학생의 과목선택권을 보장하고 진로교과 수업을 강화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교실에는 학생참여형 수업, 적성과 관심사에 맞춘 과목 선택과 학습, 창의융합교육 분위기가 자리 잡아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찰나 교육부가 2015 개정 교육과정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수능 확대’를 들고 나오니, 학생 개개인에 맞춘 진로적성교육, 창의융합교육이라는 교육의 방향성이 다시금 과거의 수능 만능시대로 퇴행하는 결과가 야기될 수밖에 없다. 고교 교육과 입시 방향이 반대로 가게 된 것이다. 

학교 교육은 창의·적성 교육을 지향하는데, 입시에서는 한 줄로 성적을 줄 세우는 정시 수능전형이 대세가 돼 버렸다. 수능 준비를 위해 학교 교육이 변질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결과는 입시지옥 


수능에 대비하려면 학교에서도 수능 과목 중심으로 공부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니 그 누가 진로·적성에 맞춰 수능에 나오지 않는 과목을 선택해 공부할 것인가 말이다. 

토론과 협력수업으로 활기 가득했던 수업시간이 이제는 수능 대비 문제풀이와 자습시간으로 대체될 것이다. 성적 경쟁에 내몰린 학생들은 수능 대비 학원에서 밤새워 공부하고, 학교에 와선 모자란 잠을 청할 것이다.

꿈과 끼를 키우는 수업과 활동은 언감생심 상상도 할 수 없게 된다. 학교는 교육의 임무를 학원에 빼앗긴 채 빈껍데기로 전락하고 만다. 

고교가 교육과정을 무시하고 수능 대비 체제로 전환하면, 대학은 학생부 기록을 믿을 수 없게 돼 학종은 유명무실화할 것이다. 학종이 무너지면 재학생들의 고통은 더욱 심해진다.

재학생들은 정시 수능에서 N수생과 경쟁해야 하는데, 이미 재학생보다 1년 이상게 수능 학습을 더 해온 그들과는 애초에 경쟁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들도 재수생이 되어 내년 재학생과 경쟁할 것이다. 바로 서가던 우리 교육이 무너지고, 남는 것은 수능 경쟁뿐이다. 


모순뿐인 교육정책…우리 교육 어디로?  


예정대로라면 2025년에 선택교과제와 고교학점제가 전국 고교에서 시행된다. 모든 고등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공부할 수 있고, 성적은 절대평가로 산정하기 때문에 내신 경쟁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때 학생들은 이월인원까지 합해 수능 선발인원이 전체의 절반이 넘는 입시를 치러야 한다.

결국 선택교과제나 고교학점제는 수능 대비로 인해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하고 말 것이 뻔하다. 학교 교육이 막강한 수능 입시 체제에 흔들리지 않고 제 길을 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학종 서류평가 블라인드에서 시작해 학종 축소, 수능 확대로 이어지는 현 정부의 대입정책이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와 방향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교육 당국이 미래를 대비하는 뚜렷한 교육 청사진 없이 여론만을 좇아 정책을 조변석개 식으로 뒤바꿀 때, 결국 고통을 받는 것은 학생들이며 우리의 미래라는 사실을 하루빨리 깨달아야 할 것이다. 

*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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