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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인 현장] 고3의 ‘양심라디오’에선 무슨 사연이?

[에듀인뉴스] 누구에게나 점심시간이나 오후 무렵에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연과 음악에 귀가 쫑긋하고 즐거운 순간을 보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마음이 따뜻해지고 감동을 주는 사연이라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이런 경우 오랜 기간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고 매우 행복한 경험으로 간직될 것이다. 지금은 TV나 인터넷 동영상이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아 일상의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매력 있는 매체가 된 지 오래되었다. 


반면에 라디오는 예전의 인기가 퇴색하고 특정한 순간, 예컨대 운전 중이거나 대중교통(버스나 택시)를 이용할 시에 우연히 청취하는 기회가 주어져야 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중고등학교의 방송부는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라디오의 추억을 재생시켜주고 재미와 웃음을 선물하는 유익한 단체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도 필자의 학교에서는 특별한 방송 시간을 가졌다. 거기에 잔잔한 감동을 주는 사연까지 소개되어 학교현장에서 듣는 라디오 방송이 오늘따라 새롭게 다가왔다. 


잠시 시간을 돌려 과거로 돌아가 본다. 필자는 아직도 ‘90년대 초, ○○여고에서 근무하던 시절을 잊을 수 없다. 그때는 학교에서 점심시간이면 학교 방송부원이 운영하는 방송 시간이 인기가 있었다. 나름대로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방송부를 운영하면서 선후배 간의 엄격한 규율을 적용하던 때로 기억한다. 


사연과 음악, 그리고 사이사이에 진행자의 개인적인 멘트는 시나리오를 쓰는 노련한 경험이 뒷받침되면 점심시간에 휴식을 취하면서 듣기엔 너무 매력적인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방송의 현장에 필자가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젊은 나이에 활기찬 생활로 학생들과 호흡을 맞추던 때인지라 학생들이 초대하고 싶은 선생님이란 방송 프로그램을 신설하면서 대상자를 인기투표하여 영광스럽게도 첫 번째 손님으로 초대를 받는 기쁨을 누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래. 나도 한때 그랬지"라며 웃어넘기지만 개인의 이력으로 볼 때 굳이 감추고 싶지 않은 행복한 순간이었다. 출연하여 나눈 대화는 자세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때의 인기를 느끼면서 다소 의기양양 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때 진행자가 요청한 신청곡으로 민해경의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를 청했는데 학생들의 인기를 더욱 굳히는 감성의 노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시대는 흘렀어도 학교마다 방송부의 활동은 여전하다. 본교에서는 2020학년도 1교 1인성교육의 일환으로 [양심제고]라는 주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미 실시한 1학년의 ‘양심 체험기 쓰기’와 ‘양심 말하기 대회’에 이어 이번에는 3학년의 ‘양심라디오’를 1차로 운영하게 되었다. 다음 주는 2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는 64년 역사의 ‘무감독 시험 제도’라는 뿌리에서 연유한 것으로 최근에는 인성교육 중점 학교를 운영하면서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창안하여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재미와 성장이란 교육적 목표를 혼합한 인성교육 프로그램이 한 단계 진화한 것이다. 이러한 행사는 본교에서 조직한 학년별 10인 이내의 총 30여명으로 구성된 양심지원단이 주체가 되어 실시하고 있다. 다음은 학생들에게 공지한 양심라디오 안내문이다. 


웃터골 양심라디오 운영


양심! 3학년 양심지원단에서 ‘양심 라디오’를 운영합니다. 학생 여러분들의 진정성 있는 양심 사연을 아래 메일로 보내면 점심시간 교내 라디오 방송으로 신청한 사연이 방송됩니다. 사연이 채택된 학생에게는 소정의 상품도 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내용을 읽어 주세요.


 ◆ 신청 방법   : 메일(minsuki2640@naver.com)로 자신의 사연과 학번을 같이 적어 보내 주시면 됩니다.(익명을 원하면 익명으로 방송됨)
 ◆ 사연신청기간 : 7월 20일(월)~23(목), 27일(월)~30일(목)
 ◆ 사연 방송    : 7월 24일(금), 31일(금) 잠심 시간
 ◆ 사연채택학생 : 소종의 상품 증정(문화***)
 ◆ 신청사연예시 : 
    1. 살아오면서 양심적인 행동이나 선택이 필요했던 순간 자신의 선택이 양심적으로 올은 일이었는지 궁금해요.
    2. 과거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앞으로 개선하기 위한 친구들의 조언이 필요해요.
    3. 지금 양심적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4. 주변에 양심적인 행동을 한 친구가 있어서 널리 알리고 싶어요. 등


오늘 채택된 4편의 사연 중에서 두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는 지면상 전부 소개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만큼 사연마다 충분히 양심에 얽힌 의미 있는 이야기로 이는 학생들의 양심이 어떤 방식으로 행동화되고 표출되는 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인성교육의 증거라 할 수 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7월 24일, 31일 점심시간에 찾아오는 양심지원단의 라디오 방송, 양심라디오입니다. 저희 라디오는 친구들의 양심 사연들을 들어보고 있는데요, 이번이 첫 시행이다 보니까 많은 사연들이 모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양심 사연들을 보내준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사연을 보낸다는 게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한 데 이렇게 선뜻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친구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뜻을 전하며 오늘의 양심라디오 시작하겠습니다. 이제 친구들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볼까요?


 



첫 번째 사연입니다. 익명 사연이네요.


안녕하세요. 저는 제물포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3학년 학생입니다. 제가 중학생 때, 게임을 즐겨 했기 때문에 당시에 게임에 사용할 문화상품권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문화상품권을 구매하기 위해 근처 편의점에 들렀습니다. 편의점에서 5만원을 내고 만 원짜리 문화상품권을 5장을 구매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들어와서 확인을 해보니 만 원짜리 문화상품권이 6장이 제게 있었습니다. 저는 이걸 알고 남은 한 장을 제가 가질까, 돌려주러갈까 고민했는데 제가 이걸 갖는다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시는 분이 자신의 사비를 들여 만 원을 메꾸거나, 심한 경우 아르바이트를 잘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학원가는 길에 들러서 돌려드렸습니다. 아르바이트 하시던 분이 감사하다고 웃으며 인사해 주시는데 이걸 보니 돌려드리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정말 훈훈한 사연이네요. 이 친구는 자신이 양심적이었던 사연을 말해주었는데 사연을 듣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 몇 개월이면 저희도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가면 여기있는 친구들 중 대부분의 친구들이 편의점이든 다른 곳에서든 아르바이트를 할 텐데 만약 그때 제가 이런 실수를 했는데 그걸 알고 이렇게 직접 돌려주러 온다면 정말 고마울 것 같아요.


원래 자신이 이런 실수를 했다면 그건 자기가 직접 메꿔야 하는데 이렇게 돌려주는 손님이 있다면 정말 그날 아르바이트 하시던 분은 마음 속 깊이 이 친구를 기억했을 겁니다. 사연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채택되셨으니 저희가 소정의 상품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음악)



양심 사연을 방송을 통해 읽고 있는 학생들.(사진=전재학 교감) 

이제 두 번째 사연입니다. 익명이네요.


안녕하십니까? 제물포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3학년 학생 김○○입니다. 이 사연을 읽으신다면 도움 부탁드립니다. 때는 바야흐로 제가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질풍노도 그 자체 시절, 저는 학교가 끝나고 친구와 놀고 집에 가던 중 길 모퉁이에서 떨어진 지갑을 주웠는데 지갑 안에 약 5만원 가량의 현금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시절엔 친구들과 모여서 노는 게 한 없이 즐겁던 시절, 저는 돈이 많이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찾아줘야겠고 돈은 부족했던 상태였기 때문에 저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바로 현금 2만 원 중 만 원만 꺼내 제가 갖기로요. 나머지는 그대로 우체통에 넣어서 주인을 찾아 주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주인이 잃어버린 지갑이 돌아왔던 기쁨에 만 원 정도는 눈 감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그런 선택을 했던 것 같습니다. 만약 그때로 돌아 갈 수 있다면 저는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좋았을까요? 조언 부탁드립니다.


아, 이 사연은 과거의 일에 대해서 조언을 구하는 사연이네요. 이번 사연은 좀 어렵네요. 이 친구는 지갑의 주인을 찾아주는 양심적인 행동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돈이 부족했기 때문에 지갑의 현금 중 일부인 만 원을 가져갔어요.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친구는 실제로 일부분 양심적인 행동을 했고, 물론 지갑의 주인 분도 자신의 지갑이 돌아왔다는 기쁨에 현금 만 원 정도는 없어진 것을 눈치 채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만 원을 가져갔다는 부분에서 이 친구의 행동이 모두 양심적이었다고 볼 수만은 없을 것 같아요. 어쨌든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돈을 가져간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 친구가 만 원을 꺼낼 때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점들을 보면 이 친구는 충분히 자신이 행동하기 전에 그 행동이 양심적인지 고민할 수 있고, 그렇다는 건 양심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과거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그 땐 돈을 가져가지 않고 그대로 주인을 찾아 주는 게 가장 양심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종말 깔끔한 조언이네요. 사연이 채택된 이 친구 역시 저희가 소정의 상품을 증정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음악)



오랜만에 학생들의 순수한 사연을 듣고서 정말 인간은 쉽게 판단하지 못할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이처럼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성장하는 것이 좋다.


모든 행동은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그래서 섣부른 판단으로 그 사람의 인성을 심판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처음부터 바른 길을 걷는 양심적인 학생도 있지만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성찰함으로써 오히려 뒤늦게 깨달음을 얻어 확실한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경우, 대기만성(大器晩成)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양심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인지하는 그 자체다. 안타깝게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어른이 많은 우리 사회, 그들은 학창시절에 어떤 교육을 받았을까? 단지 많은 지식을 암기하고 문제를 잘 풀어 좋은 대학을 나와서 출세를 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자기보다 약한 자 위에 서서 군림하려 들고 나아가 획득한 지식을 이용해 사법농단 같은 행태를 저지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그래도 본교 학생들은 64년을 한결같이 외친다. "양심의 1점은 부정의 100점 보다 명예롭다"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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