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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뉴스

[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 ‘성 착취물’로 아이들 끌어들이는 ‘사이버 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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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지상파 방송을 비롯해 각종 언론사에서 ‘사이버 도박’과 관련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한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사이버 도박과 관련한 토론회를 개최하자”라는 제안도 받았습니다. 시기적으로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우리 아이들을 벼랑으로 내모는 ‘사이버 도박’에 대한 실체를 정확히 직면하고 사회적 담론을 만드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벌써 몇 년 전입니다. 2016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주최한 연구모임에서 처음으로 아이들의 ‘사이버 도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이후 해마다 사이버 도박에 대한 우려를 표명해왔지만, 사회적 담론으로까지 가지는 못했습니다. 집필과 세미나 그리고 인터뷰 등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냈지만, 노력에 비해 달라진 것은 없었고 오히려 몇 년 사이 ‘사이버 도박’의 몸집은 몰라보게 비대해졌습니다.

잠시 부모 시절 이야기를 해볼까요? 일명 ‘짤짤이’라고 하지요. 부모 세대에게 ‘짤짤이’는 학창 시절 웃고 울게 했던 게임이었습니다. 직접 해봤든지 아니면 옆에서 구경했든지 ‘짤짤이’의 경험들이 대부분 한둘씩은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동전을 손에 들어 뭉쳐서 흔든 후 손안에 있는 동전의 홀과 짝을 맞추거나 또는 3의 배수에서 나머지 동전을 맞추는 일종의 돈내기 게임이었습니다. ‘짤짤이’는 일제 강점기 시대에도 아이들이 밤이면 화투나 짤짤이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또 1970년대에는 ‘짤짤이’로 등록금을 탕진하여 강도 행각을 벌인 사건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짤짤이’는 우리 사회에서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아이들 손에는 동전 대신 스마트폰이 쥐어졌고 ‘게임의 나라’라는 명성답게 하루가 멀다고 새로운 게임들이 속속들이 등장해서 아이들을 흥분하게 만들었죠. 맞습니다. 그렇게 ‘짤짤이’는 인터넷 게임에 밀려 우리 사회에서 작별을 고하는 듯했지만, 2020년 ‘짤짤이’는 ‘사이버 도박’이라는 게임의 모습으로 다시 복귀했고, 아이들의 인기 도박 게임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핵심부터 말씀드리자면, 지금 우리 아이들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범죄를 꼽으라면 단연코 ‘성범죄’와 ‘사이버 도박’을 지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사이버 도박’은 남자아이들의 주체하지 못하는 승부욕과 허술한 판단력 그리고 굿즈를 갈망하는 소비 욕구를 악용하는 범죄 중 하나죠. 특히 ‘사이버 도박’은 ‘성매매’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속성을 지니고 있어 부모와 우리 사회가 의도적으로 감지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대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코로나 19 발생 이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사이버 도박은 전년 동기 대비 19.1%나 증가했으며, 이중 아이들의 사이버 도박 또한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실제 사이버 도박을 경험한 아이들은 한 학급에서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사이버 도박을 했거나 하고 있을 거라고 예측까지 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되면 부모는 아이들의 ‘사이버 도박’을 모른 척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당장 우리 아이가 사이버 도박을 안 한다는 보장을 할 수 없고, 또 스마트폰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부모가 눈치채기도 쉽지 않습니다. 실제 사이버 도박한 아이들은 “부모 옆에서 사이버 도박을 해도 부모는 단순히 게임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으니까요. 특히 이러한 심각성 때문에 지난해에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과 공동으로 ‘사이버 도박을 하고 있거나 하다가 중단한 청소년’ 51명을 만나 연구를 시작했고, 연구 결과에서 유독 눈에 띄었던 대목은 “사이버 도박은 아이들의 비행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실제 아이들과의 인터뷰에서도 학교 성적이 우수하거나 평범한 가정의 학생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하는 사이버 도박은 일단 가입 절차가 쉽고, 게임 내용이 어렵지 않으며 무엇보다 베팅금액이 무제한인 데다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보이는 스포츠 관련 게임들로 채워져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인증 절차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휴대폰 번호와 통장만 있으면 초등학생도 사이버 도박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사다리’, ‘달팽이’ ‘홀짝, ’타조’와 같은 아이들에게 친숙한 언어로 위장하여 게임당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 안에 승부를 볼 수 있는 ‘실시간 게임’까지 진열하고 아이들은 1시간에도 수십 회 게임을 할 수 있습니다.

또, 아이들의 사이버 도박은 도박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과정을 보면, 아이들은 스팸 문자나 또래로부터 사이버 도박을 권유받아 사이버 도박에 손을 댄 후 도박을 위해 돈을 빌리다 ‘빚쟁이’가 되는가 하면 불어난 빚을 갚기 위해 또 다른 범죄에 손을 대는 악순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최근에는 불법 사이버 도박 업체가 아이들의 ‘인터넷 아이디’까지 거래하고 있죠. 사이트 홍보를 위해 아이들을 대상으로 개당 5천 원에서 많게는 만 원까지 지급하며 아이디를 사들여서 버젓이 불법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자칫 아이디를 판매한 아이는 단돈 5천 원 때문에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을 도운 혐의로 조사까지 받는 사례까지 빚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부모가 눈여겨 볼 것은 지금 사이버 도박 업체가 ‘성 착취물’ 사이트를 제작하여 아이들을 끌어들인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공짜 돈’을 주는 일명 ‘꽁머니’로 접근했다면 지금은 ‘불법 성적 촬영물’과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사이트를 미끼로 아이들에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도박에 관심이 없던 아이들도 음란물에 관심을 가지면서 사이버 도박에 빠져들 수밖에 없고, 결국 아이들이 도박과 성범죄가 협업하는 새로운 괴물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그래서 당장이라도 사이버 도박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가족 단위에서 공유하고 토론하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특히, 아이의 인식이 중요한데, 정상적인 경제 관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도박을 통해 절대 돈을 딸 수 없다”라는 인식이 오히려 더 도움이 됩니다. 연구 결과에서도 도박했다가 중단한 아이들은 ‘부모와 교사에게 적발되었을 때와 돈을 딸 수 없는 구조를 깨달았을 때’를 중단 이유로 꼽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당장의 해결책을 원한다면 거시적인 교육과 캠페인은 물론이고 아이의 인식 개선과 함께 이번 글을 통해 아이의 통장 내역을 한 번 확인해 볼 것을 제안 드립니다.

2018년 『법률소비자연맹』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대학생 2명 중 1명이 “10억을 주면 1년 동안 감옥에 갈 수 있다”라는 응답을 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2013년 조사에서는 이미 고등학생 절반 이상이 비슷한 설문을 보이기도 했죠. 지금 우리 사회가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단면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부탁드리건대. 사이버 도박은 아이들에게 다양한 유해 물질을 실어 나르는 ‘터미널’과 같은 범죄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지금이라도 부모와 학교, 우리 사회가 나서서 사이버 도박의 위험성을 알리고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적 협업’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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