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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움직인 학력 파괴 명사들

“힘들고 어려워도 일상에서 충만감 느끼면 가치 있는 일”


국내 

“세탁기 연구 40년, 고졸 출신 첫 CEO” 

lg전자 부회장 조성진.(사진=조선DB)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사진=조선DB)

‘고졸 신화’의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용산공고를 졸업하고 1976년 금성사(현 LG그룹) 견습 과정을 거쳐 우수 장학생 자격으로 입사했다.

당시 가전제품계의 주력 상품은 선풍기, 밥솥이었고 국내 세탁기 보급률이 1%도 채 되지 않았다. 세탁기 개발 환경이 열악했던 시절, 조 부회장은 기술을 얻기 위해 일본 기업을 찾아다니며 밑바닥부터 배우고, 세탁기 개발 지원을 거부하는 회사를 상대로 옥상에서 혼자 세탁기를 연구할 만큼 세탁기에 미쳐 살았다.

그렇게 40년간 세탁기 연구에 매진한 결과 어느새 그에게는 ‘세탁기 장인’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현재 LG전자 세탁기 관련 특허는 4000건을 넘으며, 이렇게 탄생한 세탁기들이 160여 개국 주부들의 가사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LG전자가 연 매출액 50조 원이 넘는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서게 된 데는 조 부회장의 공이 컸다. 편견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조성진 부회장은 국내 10대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고졸 출신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흙수저의 반란, 판자촌 소년 차관 되다” 

김동연 아주대 총장.(사진=조선DB)
김동연 아주대 총장.(사진=조선DB)

그의 삶은 ‘흙수저의 반란’ 자체다. 열한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그의 가족은 청계천 판잣집에 살게 됐다. 졸지에 소년가장이 된 그는 집안 형편상 덕수상고에 진학해 은행원이 됐지만 공부의 끈을 놓지 않고 국제대(야간대학)에 진학했다. 말 그대로 ‘주경야독’이었다.

김동연 총장의 인생을 바꾼 것은 길가에 버려진 <고시>라는 잡지였다. 낮에는 생계를 위해 은행에, 밤에는 대학에 다니며 고시 공부를 한 끝에 행정고시와 입법고시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뤘다. 내로라하는 학벌의 동기들 사이에서 열등감이 그를 채찍질한 것일까. 미국 정부 장학생으로 선발돼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청와대 경제비서관, 기획재정부 2차관,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을 거치며 32년의 공직 생활을 이어갔다.

퇴직 후 수많은 제의를 고사하고 선택한 것은 아주대 총장. 김 총장은 취임 후 소외계층 학생들의 해외연수 제공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외부 강연료를 모아 장학금에 쾌척하는 등 자신과 같은 어려움에 처한 학생들의 꿈을 지원하고 있다.

“여성·고졸·순경 악조건 속 유리 천장을 부수다” 

이금형 서원대 석좌교수.(사진=조선DB)
이금형 서원대 석좌교수.(사진=조선DB)

남성 중심 경찰 세계의 유리 천장을 깬 여성 파워의 주인공. 수많은 여성의 롤모델이다. 청주 대성여상을 졸업한 후 말단 순경으로 시작해 경찰 내 서열 2위인 치안정감이 된 그의 발자취는 하나하나 기록이 됐다. 여성·고졸·순경 출신으로서 늘 부족한 점을 메우려고 노력했다는 그는 때로 어떤 남성보다 과감하게 업무를 추진했고, 때로 여성의 섬세함으로 굵직한 사건들을 해결했다.

마포경찰서장 시절에는 연쇄 성폭행 사건, 일명 ‘마포 발바리’를 검거하고, 광주지방경찰청장 시절에는 ‘도가니’ 사건을 해결했다. 또 경찰에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여성, 성폭력, 청소년 분야를 개척했다.

이금형 교수는 차별에는 실력으로 맞서야 한다는 소신으로 정면 승부를 해 경찰대 출신들을 제치고 경감 시험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하기도 했다. 서른다섯 늦은 나이에 방송통신대에 입학해 53세에 박사 학위를 취득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인물이다. 지금은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석좌교수로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국외 

“고등학교 중퇴한 은둔형 외톨이, 1조 원 가치 SNS 설립” 

데이비드 카프.(사진=카프 홈페이지)
데이비드 카프 텀블러 CEO.(사진=카프 홈페이지)

2013년 미국 IT 업계에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청년이 만든 소셜네트워크 사이트인 텀블러(Tumblr)가 야후에 11억 달러(약 1조 2276억 원)에 인수된 것. 스티브 잡스와 마크 저커버그 이후 미국 IT 업계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이 청년은 바로 데이비드 카프다. 그는 ‘제2의 페이스북 신화’라는 평가와 함께 26세 나이에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했다.

학창 시절 카프는 밖에 나가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다. 그에게 학교는 따분한 곳이었고, 방과 후 집에 돌아와 밤새 컴퓨터에만 붙어 있었다. 결국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3년간 홈스쿨링을 받았다. 이를 통해 몇 명의 선생님과 함께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에만 매진했고, 그때 배운 일본어 덕분에 열일곱 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인공지능 로봇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서 실력을 다졌다. 사업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그는 몇 달간 경험을 쌓은 후 뉴욕으로 돌아와 스타트업 회사 어번베이비에서 수석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텀플러 창업의 기반을 마련했다.  

“고교 시절 학습장애아, ‘지구 구할 영웅’ 되다” 

리차드 브랜슨.(사진=트위터)
리차드 브랜슨 버진그룹 CEO .(사진=트위터)

수업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난독증이 심했다. 고등학교 시절 ‘학습장애아’ 타이틀을 달았고 시험 때마다 낙제를 했다. 선생님은 ‘게으르고 공부에 관심 없는 학생’이라고 평가했다. 당연히 아이는 학교 수업이 재미없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교문 밖을 나섰다. 그 모습을 본 교장 선생님은 “저 아이는 백만장자가 되거나 감옥에 가게 될 것”이라고 조롱했다. 교장 선생님의 말이 반은 맞았다. 항공, 미디어, 관광 등 여섯 개 사업을 아우르는 영국 대기업 ‘버진그룹(Virgin Group)’의 CEO 리처드 브랜슨의 얘기다.

1950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브랜슨은 학생 시절 학생 잡지 <스튜던트>를 창간하며 일찌감치 기업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버진레코드의 성공을 시작으로 항공, 철도, 모바일 서비스, 레저, 스포츠, 미디어, 금융, 건강, 환경, 자선사업에 이르기까지 지칠 줄 모르는 도전정신으로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 궤도에 올려놓았다.

정규교육을 받지 않아 재무제표조차 잘 읽지 못하지만 ‘창조 경영의 아이콘’으로 엑센추어 선정 ‘세계 50대 경영 구루’가 된 브랜슨은 환경 문제에도 적극 앞장서 ‘지구를 구할 영웅’으로 불릴 만큼 존경받는 기업가다.

“대학 중퇴는 내가 내린 최고의 결정 중 하나”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천재 사업가이자 청년 재벌이 된 이 세 사람은 모두 대학을 중퇴한 ‘고졸자’다. 이 중 잡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대학 공부의 가치를 찾을 수 없었다. 인생을 어찌 살지 몰랐고, 대학 공부가 도움을 준다는 확신도 없었다. 그 당시에는 불안했지만 돌이켜보면 대학 중퇴는 내가 내린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다.”

“할머니께 배운 잼 만들기로 스무 살에 백만장자” 

학교 수업보다 할머니가 가르쳐준 잼 만들기가 더 재미있었다. 열네 살 때 우연히 잼 제조법을 배운 후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슈퍼잼(SuperJam)’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정식으로 경영을 배운 적도 없고 집안에 사업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부모에게서 금전적인 도움을 받지도 못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항상 그에게 “일상에서 행복과 충만함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가르쳤다. 학교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도 흔쾌히 그의 뜻을 따랐다.

프레이저 도허티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하루도 쉬지 않고 눈만 뜨면 부엌에서 잼을 만들었다. ‘몸에 좋은 잼’이라면 누구나 즐겨 먹을 거란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과일 100%의 천연 잼을 만들어내 영국의 주요 대형 마트인 웨이트로즈 전 매장에서 판매했다. 이후 테스코, 월마트 같은 전 세계 대형 마트에 슈퍼잼이 입점해 스무 살에 억대 매출을 달성하고, 슈퍼잼을 100만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는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1년 22세의 나이에 영국에서 가장 성공한 젊은 사업가로 등극했다. 현재 슈퍼잼은 핀란드, 러시아, 호주 등 해외 진출에도 성공해 전 세계에서 판매되고 있다.

[위클리공감]

2017.03.31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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