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2 (금)

  • 구름많음동두천 6.3℃
  • 구름많음강릉 6.4℃
  • 구름조금서울 7.3℃
  • 맑음대전 7.6℃
  • 흐림대구 6.2℃
  • 구름조금울산 9.8℃
  • 맑음광주 10.8℃
  • 구름많음부산 11.0℃
  • 맑음고창 10.2℃
  • 맑음제주 13.0℃
  • 맑음강화 6.9℃
  • 구름많음보은 6.4℃
  • 구름조금금산 5.3℃
  • 맑음강진군 11.2℃
  • 구름조금경주시 5.0℃
  • 구름많음거제 11.1℃
기상청 제공

오피니언

[교단일기] 궤변이 판치는 사회

김현진 샘의 교단일기

  
 

‘나의 소녀 시대’
프렝키 첸 감독, 송운화, 왕대륙 주연의 대만 영화 ‘나의 소녀 시대’를 아주 먼 길을 다녀오는 길에 버스에서 보았다. 주연 여배우가 나와 닮았다며 한 번 보라는 주변의 권유도 있었고, 나중엔 12살 딸아이가 여섯 번이나 보기에 ‘그렇게 재미있나?’ 하는 호기심이 들어 영화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 김현진 강원사대부고 교사

1994년 고3인 임진심은 그저 그런, 어찌 보면 정말 볼품없는 여고생이다. 늘 엉뚱하고 좋아하는 남학생에게 주목받지도 못하는, 존재감이 적은 아이다. 진심의 큰 낙은 배우 겸 가수인 유덕화를 좋아하는 것. 심지어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 유덕화와 결혼을 하겠다는 꿈도 품고 있다.

어느 날, 진심이 다니는 학교의 일진짱인 서태우에게 행운의 편지를 주는 상황이 발생한다. 서태우는 같은 학교 도민민을 좋아하고, 임진심은 구양비범을 좋아하는데, 진심과 태우는 서로의 사랑을 얻기 위해 소위 ‘연합정권’을 결성한다. 이후 줄거리는 호기심을 깨지 않기 위해 얘기하지 않겠다.


영화를 보면서 ‘이건 그냥 1994년에 고3이었던 나와 동갑인 여학생들의 추억을 돋게 하는 감성 로맨스로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반전이 일어난다. 학생부장 교사 ‘전지현’이 새로 부임해 오면서 학교는 일사불란한 군대처럼 변한다. 대학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과 희망하지 않는 학생을 따로 모아 학급 배정을 하고, 비진학 학급의 학생들을 ‘쓰레기’로 부른다.

여학생 치마 길이가 무릎 위 3센티 위로 올라가면 교칙에 의거해 징계를 받으며, 교내에서 반바지를 착용해도 교칙에 의거 징계를 받고, 학교에 ‘삐삐’를 갖고 와도 징계, 야한 잡지를 봐도 징계, 이성교제를 해도 징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리지 않아도 징계, 속옷을 입지 않아도 징계, 수업 시간에 졸아도 징계가 내려지는 괴물 같은 학교로 변해간다.

아이러니하게도 교무실엔 ‘차별 없는 교육’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늘 걸려있고, 이 표지판은 학생부장 전지현이 부임한 후 사극에나 나올 법한 ‘칼’로 대체된다. 결국, 개교기념식에서 학생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학생부장의 횡포에 맞서 발랄하고 통쾌한 반란을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여주인공 진심의 대사가 가슴에 와 닿는다.

“주임 선생님,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시험 점수와 교칙으로 저희를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성적이 좋은 학생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예전의 불량 학생도 좋은 학생으로 변할 수 있는 거예요. 좋은 학생과 나쁜 학생은 선생님 혼자 정하는 게 아니라고요! 우리만이 스스로 우리가 누군지 알 수 있고, 또 우리만이 우리의 모습을 결정할 수 있는 거예요!”

물론 이 장면을 영상으로 보면 다소 오글거리긴 한다. 그러나 저 대사는 학교가 왜 인권친화적인 공간이 돼야 하는지를 너무나 명확하게 짚어주고 있어서, 저 장면을 보는 순간 ‘내가 다른 영화를 보고 있나?’ 싶을 정도였다.

도대체 인권이란 무엇인가
교사인 나는 늘 학생들을 보며 살 수밖에 없다. 인권을 공부하고 인권을 얘기한다 해도 삶의 모든 순간에서 나의 말과 태도가 인권친화적이라고 할 자신은 없다. 교사인 김현진 말고, 개인 김현진도 마찬가지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들과 살아갈 때 나는 정말 인권친화적인가? 타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가? 대상이 학생이라는 이유로 교사인 내가 이끄는 대로 따라오는 학생만이 ‘학생답다’고 하는 괴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발랄한 영화 한 편이 묵직한 화두를 던져준다. ‘도대체 인권이란 무엇인가?’라는 첫 질문으로 돌아가게 하고 말이다.

  
▲ <2018 수시 백전불태> 출간 https://goo.gl/7JtUvY


영화 ‘나의 소녀 시대’. 학생들과 함께 보며 이야기할 것도 많고, 동시에 1994년의 학교와 2016년의 학교가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는 씁쓸한 사실을 알려주는, 발랄하고 가슴이 찡해지는 이 영화를 꼭 보시기를 권해 본다.


추신. 수업시간에 특정 종교를 학생에게 강요하고 정규교육과정 속에서 종교교육 및 종교색을 강하게 띤 걸로 '추정되는' 어느 교사들이 자신들의 ‘종교의 자유’가 억압받았으며 이는 ‘인권침해’라고 하는 궤변을 들으며 가슴이 답답해 온다.

그들은 교사 개인의 종교의 자유를 탄압받은 것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수업’이라는 공적 업무 수행 과정에 사적인 ‘종교’를 뒤섞은 것이며, 이는 엄밀히 공무원인 교사의 법위반 행위이다. 교사 개인의 종교의 자유를 외치기 전에, 당신들이 가르치는 학생에게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아주 단순한, 논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또 하나, 영화 속 진심의 대사처럼 당신들이 (크리스찬) 교사라면 학생들이 ‘스스로 우리가 누군지 알 수 있고, 또 우리만이 우리의 모습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해주는 교사로서도 ‘거듭나기’를 감히 권해본다. 아, 물론 영화 ‘나의 소녀 시대’도 한 번 보시면 좋을 듯하다.

가장 무서운 것은 ‘내가 아는 것이 가장 옳은 것’ 이라는 맹목성이다. 나는 당신들에게서 괴물 같은 맹목성이 보인다. 맹목성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당신들이 가장 큰 죄로 여기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이 최근 인류 역사에 있다, 그는 바로 아돌프 히틀러다.



*본 기사는 <나침반 36.5도> 2017년 3월호에 게재됐습니다.


*에듀진 기사 원문: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404

  
▲ <나침반36.5도> 정기구독 http://goo.gl/bdBmXf

관련기사

9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