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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졸업 1년 만에 창업 결실 맺은 비결은

시각장애인 위한 점자 출력기 개발 권서원 ‘커머’ 대표

발명만 11년 차다. 가만히 그의 발명품을 살펴보면 공통된 특징이 있다. 몸이 아프고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아이템이라는 점. ‘커머’는 의료보조기구 아이템을 만드는 1인 기업으로 곧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출력기’ 출시를 앞두고 있다. 따뜻한 발명을 추구한다는 권서원(21) 대표를 만나보자.

권서원(21) 대표.
권서원(21) 대표.

시각장애인은 손끝으로 세상을 읽는다. 점자가 닿는 곳에서만 눈이 생긴다. 편의점에서 음료를 고르고 음식점에서 메뉴를 보는 지극히 평범한 생활은 그들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장애에 이어 세상과 단절되는 장애에 가로막힌다. ‘커머’ 권서원 대표는 시각장애인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접점이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점자 출력기’를 개발했다.

점자 출력기는 즉석에서 도드라진 점을 만들어 시각장애인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만든 장비다. 권 대표는 출력기를 3단 다이얼 구조로 만들어 초성, 중성, 종성으로 구분했다. 초성(자음), 중성(모음), 종성(자음) 형태다. 손바닥 크기의 출력기에 라벨지 테이프를 넣고 원하는 글자를 3단으로 맞춰 타각을 누르면 즉석에서 점자가 출력된다. 간단한 원리로 점자를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시각장애인과 세상을 제대로 잇고 싶었다

점자 출력기를 만든 계기는 한 지점토 모형을 보면서다. 부모님을 따라 시각장애인 지원단체에 봉사활동을 갔을 때 선천적 시각장애를 가진 한 아이가 사람 모형을 만들었다. 누가 봐도 잘 만들어진 모형은 유독 팔이 크게 표현돼 있었다. 시각장애인에게 손이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한동안 모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권 대표는 시각장애인과 점자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가 바라본 시각장애인의 삶은 많은 제약이 있었다. 가령 편의점에 전시된 음료에는 점자가 적혀 있다. 점자가 의미하는 것은 ‘음료’. 음료의 종류가 아닌 ‘마실 것’이란 의미만 담겨 있다. 캔 모양도 대부분 비슷해 시각장애인은 간단한 음료 선택조차 자유롭지 않았다. 음료뿐이 아니다. 잼, 통조림 모두 겉모양이 비슷하게 생겼지만 명칭이 써 있지 않아 시각장애인은 어떠한 물건인지 도통 알 수 없다. 음식점에서 주문을 할 때도 주변에서 메뉴를 읽어줘야만 음식을 고를 수 있다. 그는 시각장애인과 세상을 이어줄 수 있는 일을 고민했다.

“우리나라에는 장애인 편의증진법이 있어요. 노란 점자블록이나 지하철 손잡이, 엘리베이터 등에 있는 점자들이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돕기 위한 의도로 제작된 것이죠. 이러한 것들이 생활 전반으로 확대돼야 해요. 점자 출력기를 편의점, 식당에서 구비한다면 시각장애인들의 일상에 유용하겠죠. 법적으로 확대된다면 더 좋을 거예요.” 점자 출력기 이용이 늘어나면 시각장애인도 원하는 상품을 읽고 주체적으로 고를 수 있게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일반인도 활용 가능하다. 이미 제작된 명함을 점자 명함으로 변형할 수 있다. 이름, 연락처, 직업 등의 정보를 점자 출력기를 이용해 시각장애인이 알아볼 수 있도록 라벨지를 붙이면 된다.

그의 발명품에는 배려가 녹아 있다. ‘링거 온열기’도 그렇다. 본래 의료용 링거는 체온에 맞춰 보존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보존 기계가 비싸고 실온에 둬도 무방한 탓에 많은 병원에서는 링거를 실온에서 관리한다. 인간의 체온이 36.5도인데, 실온 링거는 평균 15도를 유지한다. 온도 차이가 나는 링거가 몸속으로 들어가도 유해하지는 않지만 몸이 아픈 환자에게는 팔 경직, 손 저림 현상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링거를 자주 맞는 사람이라면 고통스러운 일이다. 링거 온열기는 링거의 입구에 끼우는 작은 핀이다. 링거가 신체에 투여되기 전 온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작은 아이디어가 누군가의 삶을 크게 바꿀 수도 있는 법이다.

권서원 대표가 개발한 ‘스피커 리모컨’을 들고 있다. 스피커 리모컨은 난청 노인과 함께 텔레비전을 시청할 때 리모컨을 들고 있는 노인에게만 더 큰 소리를 제공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함께 보는 가족이 지나친 음향으로 불편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점자 출력기는 시판을 앞두고 있어 사진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권서원 대표가 개발한 ‘스피커 리모컨’을 들고 있다. 스피커 리모컨은 난청 노인과 함께 텔레비전을 시청할 때 리모컨을 들고 있는 노인에게만 더 큰 소리를 제공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함께 보는 가족이 지나친 음향으로 불편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점자 출력기는 시판을 앞두고 있어 사진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장애인 편의증진법, 생활 전반으로 확대돼야

이쯤 되면 ‘커머’의 정체가 궁금하다. 커머는 ‘Community of Medical EngineeRing’의 약자로 의료보조기구 아이템을 만드는 기업이란 뜻이다. 사람들의 일상을 돕는 상품을 제작한다는 뚜렷한 콘셉트를 갖고 있다. 점자 출력기는 커머의 첫 아이템 상품으로 출시를 앞두고 있다.

권서원 대표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발명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상품을 만들어왔다. 그동안 등록한 지식재산권(디자인·상표·특허·실용신안)만 해도 24건이나 되는 발명 영재 출신이다. 이러한 그가 발명특허 특성화고인 ‘미래산업과학고등학교’를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과정이었다. 중소기업청 ‘비즈쿨(비즈니스+스쿨)’에 지정된 학교는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도록 여건을 만들어줬다. 특허출원 방법, 시장성 파악 과정, 시판 제품 확인 방법 등을 가르쳐주고, 발명특허 특성화학교인 만큼 학생들의 발명품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창업교육도 겸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그가 벌써 창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다. 학교 프로그램과 각종 경진대회로 내공을 다져온 권 대표는 올해 초 청년 기술 창업자를 지원하는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선정돼 창업자금도 확보했다. 아직 1인 기업으로 규모도 작고 운영 과정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에 봉착하지만 하나씩 해결해가는 과정이 즐겁기만 하다는 권서원 대표. 그의 사무실은 학교 측의 배려로 미래산업과학고 내에 마련되어 발명과 창업을 고민하는 후배들과의 교감도 이어가고 있다.

“혹시 ‘나는 귀머거리다’라는 웹툰 아세요? 청각장애인 작가가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을 만화로 풀어낸 작품이에요. 그림은 귀여운데 내용은 충격적이에요.”

그는 청각장애인 일상을 그린 웹툰의 한 일화를 소개해줬다. 청각장애인은 전화 주문을 할 수 없어 배달음식을 먹을 수가 없다. 요즘은 배달 앱이 생기며 주문은 할 수 있지만 초인종을 눌러도 알 수 없으니 음식이 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단다. 혹은 개가 짖는 것을 보고서야 음식이 도착한 걸 알 수 있다. 그는 만화를 보며 미처 생각지도 못한 장애인들의 소소한 어려움을 알게 됐다. ‘커머’의 아이템은 남들은 모르는 불편함을 가진 사람들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 고안될 것이라고 했다. ‘따뜻한 발명’을 지향한다는 권서원 대표, 그가 마지막으로 전하는 말이 있다.

“커머의 제품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당신을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요.”

[위클리공감]

2017.04.07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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