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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가사로 지친 마음 뽑기로 푼다” 인형 뽑기에 빠진 엄마들

'적은 비용으로 단시간에 큰 성취감 느낄 수 있어' 인기
사행성∙중독성 등 어린 자녀에게 옮겨갈까 걱정하는 엄마도 있어


# 네 살배기 딸을 둔 전업주부 윤미영(가명·35·서울 광진구)씨는 요즘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나서, 곧장 집 근처 인형 뽑기 가게로 향한다. 적은 비용을 들여 단시간에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인형 뽑기의 매력에 푹 빠진 것이다. 윤씨는 “캐릭터 인형을 좋아하는 딸을 위해 호기심으로 시작한 인형 뽑기에 재미를 붙였다”며 “인형을 뽑는 순간에 느껴지는 짜릿한 ‘손맛’을 잊을 수 없어 계속하다 보니 1000원짜리부터 4만원짜리까지, 집 안에 가지각색 인형들이 넘쳐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요즘 길을 걷다 보면 인형 뽑기 가게가 쉽게 눈에 띈다. 다들 어렵다는 불황의 시대라지만 인형뽑기방은 '나 홀로 성업'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15년 21곳에 불과하던 인형뽑기방은 올해 1월까지 총 1100여곳으로 2년 새 55배가량 증가했다. 여기에 집계되지 않은 곳까지 포함하면 실제 점포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인형 뽑기를 하는 사람들은 10대 청소년부터 20대 청년층, 30~40대 중장년층까지 다양하다. 최근엔 아이를 키우는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가사와 육아로 바쁜 주부들이 인형뽑기방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을 키우는 김혜빈(가명·37·경기 성남)씨는 인형 뽑기를 기분 전환용으로 즐긴다. 육아와 살림으로 지친 일상을 뽑기를 통해 잠시나마 잊는다는 것이다. “인형 뽑기는 시간에 쫓겨 사는 엄마들에겐 최적의 놀잇감이에요.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죠. 또 혼자서 가볍게 다녀올 수도 있고요. ‘피카추’, ‘도라에몽’ 등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 인형을 뽑으면 더욱 뿌듯하죠.”

다섯 살 난 딸을 둔 육아맘 신은하(가명·34·경기 성남)씨는 뽑은 인형을 지인에게 선물하거나 집안에 전시하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귀띔했다. 신씨는 “따지고 보면 500원, 1000원 단위로 투자해서 결국 1~2만원짜리 인형 하나를 제값 주고 사는 것과 다름없지만, 그 과정을 통해 짧게나마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다”고 했다.

엄마들이 자주 찾는 온라인 지역맘 커뮤니티에서도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어느 지역, 어떤 인형뽑기방 기계가 잘 뽑힌다는 팁(Tip)도 올라온다. 뽑은 인형을 무료로 나눠주는 ‘드림’ 활동도 활발하다. 이런 게시글이 올라오면, ‘나눔해 달라’는 엄마들의 댓글이 이어진다. 인형 뽑기가 취미라는 전업주부 최나영(가명·36·인천 서구)씨는 “버리긴 아깝지만, 인형을 보관하기가 어려워 종종 지역맘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드림’을 하고 있다”며 “최근엔 제가 ‘드림’한 인형을 아이 생일파티에 온 친구들에게 선물로 나눠줘 인기 최고였다는 어느 엄마의 댓글을 보곤 정말 뿌듯했다”고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뽑기방 유행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요행을 기대하게 하는 사행성과 중독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아이와 함께 인형뽑기방에 갔다가 이후에도 자꾸 가자고 조르는 아이 때문에 고민이라는 주부 이지은(가명·37·경기 수원)씨는 “돈 먹는 기계라는걸 잘 알지만, 인형 뽑는 재미에 꽂힌 딸을 막을 재간이 없다”며 “요즘엔 주인이 일부러 집게발의 나사를 헐겁게 하는 등 기계 조작을 한다던데, 뽑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열만 받고 돌아오는 일도 잦아졌다”고 토로했다.

자신의 행동이 어린 자녀에게 옮겨갈까 걱정하는 엄마들도 있다. 종종 아이들과 함께 인형뽑기방을 찾는다는 주부 지은주(가명·37·서울 강서구)씨는 며칠 전 가족과 인형 뽑기를 하다, 9살 아들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한 번만 더 하겠다고 조르는 아들에게 집에 가야 할 시간이라고 말하자, “엄마도 3번만 한다 해놓고 5번 했으니까, 나도 2번 더 하는 게 맞아”라며 대꾸했던 것이다. 지씨는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는데, 부모의 안일한 행동이 자식에게 그대로 반영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쌍둥이 형제를 키우는 송준희(가명·40·서울 용산구)씨 역시 지난 주말 아이들과 인형뽑기방에 갔다가 원하는 인형을 뽑을 때까지 계속하려는 아이들을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인형뽑기방 앞을 지날 때마다 애절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아이들을 매번 무시할 수 없어 하게 해줬어요. 당연히 못 뽑을 거라 생각했는데, 큰아이가 4번 만에 인형을 뽑는 거예요. 그때부터 작은 아이의 표정이 사색이 되면서 자기도 인형을 뽑기 전까진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에게 괜히 뽑기에 대한 재미를 붙여준 건 아닌지 걱정이네요."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는다.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이 드는 뽑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 중독성은 도박에 버금간다는 것이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 이런 유혹을 이겨내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임정민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예방교육과장은 “실제로 인형을 뽑을 때 한 번만 더 하면 꼭 뽑힐 것만 같다는 생각 때문에 자꾸 뽑기를 하게 된다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어린이는 이런 상황에서 절제하기 더욱 어려울 것”이라면서 “초기 건전한 게임이었던 '유희왕 카드놀이'가 희귀카드를 사고파는 등 도박으로 변질됐던 것처럼 인형 뽑기 역시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임 과장은 부모에게 “자녀의 특성부터 파악하라”고 조언한다. 평소 아이가 지기 싫어하고, 경쟁심이 강한 성격인지를 살펴보는 게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생각 이상으로 아이가 이런 뽑기에 몰입할 때는 이를 제재할 수 있는 엄한 행동이 필요하다”며 “도박을 허용한다는 느낌보단 단순한 놀이처럼 생각할 수 있도록 하고, 적절한 선에서 절제할 수 있도록 일러줘야 한다”고 했다.


신혜민 조선에듀 기자

2017.04.1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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