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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재학 칼럼] 가난이 가난과 싸우는 현실에 대한 단상(斷想)

[에듀인뉴스] 필자는 평소에 시간을 내어 동네에 있는 재래시장을 둘러보기를 좋아한다. 그곳엔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사람들의 흔적과 시끌벅적한 소리, 그리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짓이 있다. 때로는 영세 상인들의 거친 숨결이 필자에게 지친 삶의 회복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들의 장터에는 세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와 기술이 있다. 지혜로운 상인은 언뜻 보기에는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결국은 장에 나온 사람들에게 따뜻한 정을 베풀어 물건 구매를 유도하고 다음에 다시 찾아오게 하거나 다른 물건을 하나라도 더 구입하게 만든다. 


서비스도 좋다. 구매한 물품을 정성껏 포장해주고 비닐봉지를 한 겹 더 씌워서 들고 가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해준다. 그런 까닭에 처음엔 지출을 아끼려 재래시장을 찾아 가지만 서민의 삶을 대표하는 이곳에선 가급적 물건값을 깎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보편적인 인간의 경제적 욕망은 측은하기만 하다. 여기서도 무조건 물건값을 깎으려는 깍쟁이 심보가 작동한다. 특히나 시장 구석에 좌판을 펼친 노인들에게 그 많지도 않은 물건값을 100원이라도 더 깎으려 하는 행위는 그야말로 가난이 가난과 싸우는 악순환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가난이 가난을 홀대하는 것! 이것은 매정하기 짝이 없다. 마치 조금이라도 값을 깎아야 인생 속 경쟁에서 승리하는 듯한 모습에는 그저 씁쓸하기만 하다. 


현명한 구매 행위를 추구하는 것이 소비자의 권리다. 하지만 판매 행위를 통해 조금이라도 이득을 남기려는 영세 상인들의 애절한 권리에도 역지사지의 사고가 필요하다. 필자는 무엇이 현명한 소비자의 자세인지를 되돌아본다. 


철저하고 현명한 소비자의 구매 행위는 재래시장의 영세 상인에게가 아니라 온갖 값비싼 물건을 펼쳐 놓고 소비자를 유혹하는 상술을 동원하여 결국은 충동적으로 지갑을 열게 만들거나 카드 사용의 절제심을 잃게 하여 과소비를 조장하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가 제격이지 않을까 한다. 


자릿세를 비싸게 받고 매장에 갑질을 마다하지 않으며 단지 영리만을 추구하려는 재벌 기업이나 대형 유통업체에서는 과감하게 소비자의 권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소비자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상술에 현혹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단편적이나마 충동을 억제하고 가난을 지키는 일이다. 가난이 싸워야 할 대상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반대의 길에 선다. 마치 가난한 서민들이 부자에게 적선을 하듯이 말이다. 어찌 이런 일에 우리는 둔감할까. 가진 자 앞에서 지갑을 열어 보이며 우쭐함을 과시하려는 허영심일까. 서민은 절대 구매 행위로 인해서 부자가 될 수 없다. 부자는 서민을 울리고 합법적으로 서민의 돈을 가져가는 고수이다. 서민은 하수이고 대형백화점이나 대형 매장은 고수다. 하수는 고수를 결코 이기지 못한다.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서민의 주머니를 울리는 고수는 절대로 그 계략을 터놓지 않고 그들만의 전략과 전술을 공유한다. 99개를 가진 부자는 1개를 가진 서민을 울리고 결국은 그것마저 빼앗는 게 자본주의의 경제원리다.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논리에 서민은 유혹에 빠져들기 쉽다. 빚이 빚을 낳고 가계 부채는 날로 늘어만 간다. 배보다 배꼽이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가난은 가난을 낳고 세습되는 요즘이다. 그래서 서민이 서민을 울리고 갑질하는 일은 천민자본주의다. 이것이 깨어있는 소비자 의식이 필요한 이유다. 


누군가 말했다. “지금 당장 행복해지고 싶거든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고 말이다. 이 말은 사랑과 관심, 도움이 필요한 서민들에게 특히 필요한 말이다. 부자는 부자끼리만 통한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사고, 즉 남의 것을 교묘하게 가져가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민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며 주머니를 열지 않는다. 이 세상 자본주의가 갈수록 살기 어려운 것은 부자들이 신기하게 자신들을 잘 챙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가난한 서민들이 자신과 같이 가난한 영세 상인을 챙길 줄 모르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원래 나눌 것이 없어도 콩 한 쪽이라도 나누는 정신,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본성, 측은지심에서 나오지 않던가. 자본주의에서 가난은 부자를 이기지 못한다. 뇌 구조가 어려서부터 이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난은 가난과 싸우지 말고 서로 도와야 한다. 이것이 앞에서 언급한 서민이 당장 행복해지는 방법이다. 


우리는 제도적으로 가난이 가난과 싸우게 해서는 안 된다. 가난이 가난과 싸워 피를 흘리지 않도록 사회 시스템을 작동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집단 지성을 모아 실천하는 연대가 필요하다. 


혼자서는 결코 부자를 이기지 못한다. 이제 재래시장에서 좌판을 벌이는 노인들이나 가난한 서민들에게 따뜻한 인사 한마디 건네고 물건 하나라도 팔아주는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나누고 배려하는 마음이 더욱 필요하다. 


가난은 가난한 사람들의 연대로 극복해야 한다. 이열치열의 원리와 같다. 서로를 배려하고 나누는 힘이 결국은 서로에게 돌아오게 된다. 동네 서민의 빵집을 보자. 그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 한 번 발길을 더 들려서 하나라도 구입해 주는 배려가 가난이 가난을 극복하는 길이다.


가난은 사랑과 나눔, 배려가 가장 중요하다. 가난이 가난과 싸우는 것은 우리 모두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이를 인식하기가 날로 힘들어지는 현실이다. 빈자들의 지혜와 용기, 소비자로서의 깨어있는 의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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