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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뉴스

[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차이’를 인정하며 부모가 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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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된다면 저는 제 두 아들을 다시 한번 키워보고 싶습니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처럼 어두운 골방에 들어가 주먹을 불끈 쥐면 아이들이 다시 어렸을 때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터무니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리 엉뚱한 생각을 하는 이유는 너무 아쉽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이 마음은 커져만 갑니다. 아이에게 중요한 시기에 부모 역시 만만치 않은 시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로서 꼭 알아야 할 것을 행하지 못했고, 소중한 걸 외면한 대가를 아이가 커가면서 톡톡히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늘 미안합니다.

“엄마, 아빠도 처음이라서 그래”라는 한 어머니의 하소연처럼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라 “자녀를 가르치고 키운다는 것이 고도의 철학”이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부모가 자녀를 키운다는 건, 자녀가 부모의 스승이 되고, 부모의 부모가 되는 것이며, 부모는 자녀 본인이 된다는 사실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지요. 나만 그런가 싶지만 다른 부모의 사연을 듣게 되면 ‘내 사연은 사연도 아니구나’라는 걸 알게 돼 속으로 안도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자녀 양육은 부모라면 누구나 갖는 어려운 과제입니다.

곧 있으면 수능일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수능일이 어떤 날인지 아시죠? 비행기 이착륙 시간을 조정할 만큼 이날 하루는 우리 사회가 오롯이 수능생에게 집중하는 날입니다. 혹여 고사장 주변에서 눈치 없이 경적을 울렸다가는 따가운 시선을 받기 일쑤죠. 또 수능일은 조부모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아빠의 ‘완벽한 무관심’이 얼마나 잘 작동했는지 가족 전체가 평가받는 날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에게는 일 년 내내 마음 졸이며 지켜봤던 대하 드라마가 드디어 종영하는 날이지요. 그러고 보면, 수능이 끝나고 가족끼리 파티를 하는 건 아이가 고생했다는 격려의 의미도 있지만, 순탄하지 않았던 가족의 일상을 탈출하는 해방의 의미도 담고 있을 겁니다.

얼마 전, 저는 우연히 수능을 앞둔 어머니와 통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학 진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결국, 어머니는 “아이가 원하는 대학에 못 갈 것 같다”라며 숨기고 싶던 속내를 말해주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중학교 때 아이가 좋아하던 영상 디자인을 가르칠 걸 그랬다”라며 연신 푸념을 쏟아내시더군요. 눈치채셨겠지만, 이 어머니와는 3년 전 처음 알게 돼 아이와 면담까지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아이는 부모의 희망대로 인문계 고등학교를 선택했고, 좋아하지 않는 수학과 국어 점수를 끌어 올리기 위해 학원에 다니며 고전 소설을 수십 권 읽어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이제야 “아이가 1학년을 마쳤을 때 진로를 바꿨어야 했고, 2학년을 마쳤을 때 더 늦기 전에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밀어줬어야 했다”라고 아쉬워하시더군요.

자녀 양육을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요. 적당한 대상과 문장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만큼 자녀 양육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부모의 철학이 담겨있지요. 말은 쉽지만, 막상 부모가 되면 자녀를 순수한 자연인으로 바라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당송 8대가 중 한 명인 ‘유종원’의 「종수곽탁타전(種樹郭橐駝傳)」의 정원사 ‘곽탁타’의 마음을 부모가 모를 리 없고, 줄탁동시(啐啄同時)의 깊은 뜻을 모를 리 없지만, 정작 ‘곽탁타’가 되기에는 쉽지 않은 것이 부모이고 자녀 양육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성공적인 성장을 원하고, 양육과정에서 본인의 역사를 비추며 아이에게 좀 더 큰 기대를 걸게 되는 것이 부모라는 걸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부모의 양육방식에 끼어들어 토를 달지 못하는 것도 부모만이 가진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성장해서 학교에 들어가면, 모든 부모는 아이에 대한 기대를 감출 수가 없습니다.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니 공평한 출발이 부모에게 큰 기대감을 안겨 주죠. 하지만 가족만이 가진 다양한 사연을 고려하거나 반영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자녀가 성장하면서 부모와 다른 생각을 하게 되면, 부모는 제동을 걸고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당깁니다. 결국, 아이와 부모가 따로 가진 ‘차이’에서부터 갈등은 서서히 시작되고, 집중과 열정에 작은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제 경험을 비춰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가 유아였을 때도 저와 닮은 구석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아이와 저를 동일시하며 같은 존재로 생각하곤 했지요. 그 재미가 쏠쏠해서 저의 귀갓길을 재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처음으로 작은 사회를 경험하면서 아이는 조금씩 제가 생각했던 모습과는 다르게 변해갔습니다. 중학교 때는 너무 다른 모습에 제 자식이 맞는지 의심까지 들 정도였고, 다행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아이는 저와는 전혀 다른 한 ‘인간’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마치 저와는 상관없는 타인처럼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집에 와서는 태연하게 저를 “아빠”라고 부르는 아이의 모습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결국, 저는 아이와 제가 다르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나서야 아이를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었습니다.

철학자이자 아동 심리학자인 ‘칼 로저스’는 자녀에 대하여 “자녀를 사랑하려면 완벽한 아이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들어 본 청소년학자들의 조언 중에서 가장 훌륭한 말입니다. 이상적인 모습이 아닌 실제 아이를 사랑해야 한다는 로저스의 믿음은 지극히 ‘차이’를 어떻게 인정해야 하는지를 잘 설명해줍니다. 부모는 아이가 실수투성이고, 과도기를 걷는 인간이며,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나면, 그때야 자녀에게 너그러워지는 법을 배웁니다. 결국, 부모는 자녀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자녀를 위한 확실한 방법을 보게 되지요. 그야말로 ‘차이’를 인정하는 순간 부모에게 놀라운 변화가 시작됩니다.

지난해 『내 새끼 때문에 고민입니다만,』이라는 책을 출간하고 전국으로 강연을 다니면서 저는 다양한 부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라는 명제 앞에서 부모 대부분은 선뜻 인정하는 것을 마뜩잖아했죠.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부모가 자녀를 위해 그렇게 많은 책을 읽고, 강연을 쫓아다니며 알게 된 지식을 자녀에게 고스란히 적용하지 못했던 건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겁니다. 다시 말해, 부모는 어느 정도 미리 답을 정해놓고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부모가 강연이나 상담에서 자신의 양육 방법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 하죠. 하지만 제가 아이를 위해 고심 끝에 부모가 가진 정답을 정정해드리면 그 자리에서 고개를 떨구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합니다.

지난해, 저는 「청소년 정책 연구원」에서 주관하는 한 세미나에서 한 외국 학자로부터 대한민국 자녀문화와 관련한 독특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외국에서 바라보는 대한민국 양육문화에는 해외에서 찾아보기 힘든 ‘자녀 비교문화’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자녀를 비교하는 행동은 자칫 아이의 창의성과 자존감을 어릴 때부터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고 했습니다. 결국, 아이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서는 아이가 가진 능력을 존중해주는 부모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번 칼럼은 부모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글이 아닙니다. 단지, 부모로서 자녀를 위한 생각과 방법이 아이에게 효과적이고 타당한지를 한번 검토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아이는 부모가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걸 찾아주고 응원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을 기억해주시면 더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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