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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뉴스

[박용성의 시대와 교육] "시위 말고 불매를”...세상 모든 학급, 소비자 운동을 벌이자

[에듀인뉴스] 나는 1980년, 그 해를 살았다. 그게 역사가 된 것은 훨씬 뒤에 알았다. 나는 2020년을 살고 있다. 올해가 새로운 역사가 되리라는 예감이 강렬하다. 시대와 교육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나’의 의식을 조직하는 데 ‘다른 나’의 의식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만큼 좋은 배움은 없다.


아이들은 사람을 만나서 삶을 배우고, 그가 걷는 길을 따라 걷다가 자신의 길을 찾는다. 그것이 멘토이건 롤모델이건 존경의 대상이건 신앙의 대상이건 상관없다. 문제는 그분과 따뜻하게 교제하고 깊이 있게 사유하는 것이다.


그분이 간 길을 천천히 따라가며 한 인간을 내밀하게 만나는 것이다. 그분들, 멀리 갈 것 없다.


교과서에도 있다. 그중의 한 분을 만나보자.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세계시민교육, 교과서에서 출발하자



지금부터 2500년 전 이야기다.



제자 중궁이 인(仁)이 무엇인가 여쭈자 스승 공자가 답한다.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논어 안연편). 자기가 원하지 않은 바를 남에게 하지 마라는 뜻이다.


그러면 나라에도 원망이 없을 것이며 집안에도 원망이 없을 것이라며 공자는 덧붙인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이 구절로도 넉넉히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세계시민교육이다.



지금부터 2000년 전, 예수도 산상수훈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장 12절).


고전에 밝았던 김교신은 이를 한문으로 이렇게 옮겼다.


기소욕 시어인(己所欲 施於人). 자기가 원하는 바를 남에게 베풀라는 뜻이다.



예수처럼 긍정이건, 공자처럼 부정이건 간에, 표현만 다를 뿐 결국 둘은 같은 말이다.


후세 사람들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황금률(黃金律)이라고 불렀다. 황금과 같이 귀한 가르침이란 뜻이리라.


그런데 이 황금률은, 위기의 시대에 세계시민교육의 지침으로 삼을 만큼, 매우 실천적이다.


지금부터 500년 전, 칸트는 황금률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철학자답게 그는 미세한 표현을 문제 삼았다.



남들이 나에게 자선을 베풀지 않아도 괜찮다면, 나도 남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면 많은 사람이 주지도 받지도 않는 삶에 동의할 수밖에 없지 않냐는 게 칸트의 문제 제기였다.


그러면서 칸트는 “네 의지의 원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되도록 행동하라”는 정언명령을 그 대안으로 제시한다.



윤리 책에도 나오는 이 말은, 교과서에 실린 말 중에 아마 가장 멋진 경구인 듯싶다.


이 말에 따라 행동하는 길을 찾는 게, 우리의 의식을 조직하는 일이고 우리의 실천을 조직하는 일이라면, 세계시민교육이 출발할 자리는 바로 이 지점이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세계시민교육, 교과서에서 벗어나자



의식을 조직하는 단계는, 실천을 위한 전 단계이다. 의식의 조직은 당연히 실천의 조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를 변혁하기 위해서는 혼자 힘으로는 안 된다. 혼자 싸움닭 노릇 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적 연대가 없이는, 세상을 이윤의 논리로 끌고 가려는 저 거대한 자본에 맞서 싸울 방법이 없다.


우리 아이들이 자신이 사는 현실을 공론화하고 이를 사회적 담론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학생들 스스로가 의미 있는 사회적 세력으로 조직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가만히 있어라’는 말만 듣다가 훅 사라지는 그런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학교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말이냐? 그렇다, 있다, 정말 있다! 그중의 하나만 찾아보자.


학교의 정규교육과정에 ‘동아리 활동’이 들어 있다. 이게 그거다. 학생들의 자유로운 연대와 협력, 그리고 실천이 가능한 시간과 공간이 바로 동아리 활동이다.


교육부에서 펴낸 『학교생활기록부기재요령』에는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동아리 활동은 공통의 관심사와 동일한 취미, 특기, 재능 등을 지닌 학생들이 함께 모여서 자발적인 참여와 운영으로 자신들의 능력을 창의적으로 표출해 내는 것을 위주로 하는 집단활동이다.”



공통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함께 모여서 자발적이고 창의적으로 표출해 내는 집단활동이 바로 동아리 활동이다. 교과서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교과서에서 벗어나 보라는 강력한 권고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집단활동인 동아리 활동을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가장 강하게 행사하는 방법이 뭘까. 생각해 보면 이것저것 많겠지만, 그중의 하나가 ‘학생 소비자 활동’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로서 학생이 움직이는 것보다 강력한 무기는 없다. 소비자가 움직이면 생산자인 자본이 움직이고, 자본이 움직이면 정치가 움직이고, 그러면 비로소 세상이 움직인다.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일상적 실천으로 가치소비(Buy Social)를 하자는 캠페인은 이미 2012년 영국에서 시작하였다. 우리나라도 2020년 7월 1일 바이소셜 선언식을 통해 시민사회, 사회적 경제조직, 종교계 등이 활동(www.buysocial.or.kr)을 시작하였다.


착한 소비자가 착한 기업을 지원하면, 착한 소비자가 지원하는 바로 그 기업이 더 많은 것을 사회에 환원하고, 그러면서 우리는 가치사슬에 따라 발전하는 더욱 건강한 생태적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세계시민교육,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자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 시대이자 기후위기 시대다. 학생 소비자 운동이 단순히 바이소셜로 멈춰서는 안 된다. 사회적 가치소비에서 생태적 가치소비로, 다시 말해 바이글로벌(Buy Global)로 그 영역이 확장되어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사회적 가치를 뛰어넘어 지구의 생태적 가치를 추구하는 영역으로 승화해야, 위기 시대를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야 ‘지구’도 살 수 있고, 지구인들과 함께 결국 ‘나’도 살아남을 수 있다.


날짜도 똑똑히 기억한다. 2020년 12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 탄소배출 ‘제로’를 선언했다. 국제사회와 함께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다고 밝힌 것이다.


넷제로(Net Zero)로 불리는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배출량(+)과 제거량(-)이 상쇄되어 온실가스 배출이 ‘0’인 상태를 가리킨다.


향후 30년 안에 이산화탄소의 순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이 구상은, 경제구조를 송두리째 바꾸어야 가능하다. 그 뉴스를 보다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미 유럽은 탄소 배출량이 많은 ‘기후 악당국’에서 생산된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 국경세 도입을 추진 중이다. 안 사겠다는 말이다. 당신들이 그렇게 지구를 망치면서까지 미친 듯이 버는 돈, 그런 나쁜 방식으로는 더는 돈을 못 벌게 하겠다는 말이다. 돈을 벌려거든 생태적 방식으로 깨끗하게 벌어야 한다는, 바이글로벌이다.


그런데 만약 세계의 10대들이 이 일에 앞장선다면, 어떻게 될까.


사야 할 가치 있는 제품만 사고, 사서는 안 될 것은 안 사겠다고 나선다면, 물건을 만들어 파는 어른들의 표정이 어떻게 바뀔까. 아니,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 엄마를 설득하고 아빠를 설득하고 이웃을 설득하여 함께 어깨 겯고 나간다면 정말 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몇 년 전에 내가 맡은 학급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부모님과 전통시장 가기 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마트 말고 시장 가기를 통해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스스로 배웠다.


그 짧은 기간에 아이들은 대형 마켓의 폭력성에 분노할 줄 알게 되었고,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고전적 경구를 자기 몸으로 실천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때 아이들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그런 꿈을 꾼 적이 있다.


세상의 모든 학급이 소비자 운동을 벌이면 어떻게 될까 하는.


소비자보호운동의 일환인 과소비추방 캠페인. 소비자보호운동의 유형은 크게 생활협동조합형, 데모형, 품질검사형, 교육형 등의 4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서구에서는 생활협동조합형이 대표적인 소비자보호운동으로 손꼽히며 데모형은 점차 그 비중이 약화되고 있다. 품질검사형은 가장 대표적인 소비자보호운동이다.(출처=네이버 지식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소비자보호운동의 일환인 과소비추방 캠페인. 소비자보호운동의 유형은 크게 생활협동조합형, 데모형, 품질검사형, 교육형 등의 4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서구에서는 생활협동조합형이 대표적인 소비자보호운동으로 손꼽히며 데모형은 점차 그 비중이 약화되고 있다. 품질검사형은 가장 대표적인 소비자보호운동이다.(출처=네이버 지식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그런데 지금은 위기의 시대, 근본적 변화를 요청하는 시대다. 그러니만큼 단언컨대, 아이들이 움직이면 자본이 움직이고, 자본이 움직이면 세계가 움직일 수 있다. 시대가 그만큼 달라졌다.


그러니 그걸 대한민국의 똑똑한 10대들이 시작하자는 말이다. 그것을 대한민국의 학교 동아리에서 그 첫발을 내딛자는 말이다. 지구를 살리는 기업, 사람을 살리는 기업의 제품을 구입하겠다고 나서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시위를 하지 말고 불매를 하자는 것!”―이게 비폭력 무저항의 21세기 버전이다.


‘나’는 라면 하나를 사도 오뚜기를 산다. 어떤 재벌 기업이 상속 문제로 세상을 어지럽게 하던 그때, 그 회사 대표가 3천 5백억 원 상당의 주식을 상속받으면서 상속세 1천 7백 50억 원을 성실하게 납부한 사실에 나는 매료되었다.


그런데 그 회사 직원의 99%가 정규직이라는 사실, 단가 후려치기 없이 하청업체들과 상생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손길이 그 상표로 갔다.


‘나’는 고작 라면 하나 사는 소박한 소비자이지만, 그런 소박한 소비자의 힘이 모이면, 근본적으로 소박한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기업, 사람을 배려하는 기업을 찾아 그 사회적 가치를 구매하자는 소박한 운동이, 탄소배출 제로라는 지구의 생태적 가치를 구매하자는 운동으로 네트워크를 통해 조직된다면, 우리 청소년들은 세계를 근본적으로 소박하게 바꾸는 새로운 힘의 근원지가 될 것이다.


국가 간에는 어떤 도덕적 관계도 없다는 홉스의 주장은, 코로나 시대, 기후 위기 시대에 더는 타당하지 않다. 세계 시민성이라는 말에는 물론 한계도 있다.


하지만 자연환경에 대해 우리가 지고 있는 도덕적 의무를 숙고하는 데에, 국경 너머 한층 높은 차원의 세계로 나가야 한다는 요청에 도덕적으로 응답하는 데에, 세계 시민성 말고 다른 길이 없어 보인다.


코로나 사태가 가져온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엄혹한 시대, 기후위기가 가져온 공도동망(共倒同亡)의 끔찍한 미래,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가 맞은 최대의 위기 사태를 벗어나려면, 지구인 모두가 ‘세계 시민적 책무’를 중심으로 세계시민의 의미를 새롭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 시민성과 같은 추상적 개념의 가치는 세계시민교육에서 지지하는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의미 있게 된다.


이러한 노력이 학교에서, 교육 현장에서 뒷받침될 때, 그리하여 세계가 ‘바이소셜’에서 ‘바이글로벌’로 나아간다면, 인류는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구적 위기를 극복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산다는 것이 자기만의 질문을 찾아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면, 호모사피엔스로 제대로 살기 위해서 우리는 모두 제대로 된 질문을 찾아야 한다.


세계시민으로서 나의 질문을 찾는 것, 우리의 질문을 찾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러한 운동이 학교 동아리 활동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 궁핍한 시대를, 우리 아이들은 살고 있다. 한 사람의 못난 어른으로 진심으로 미안하다.


박용성/시대와 교육 연구소 대표. 책을 쓰며 우리 시대의 교육을 다시 디자인하고 싶어서 시대와 교육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학교생활기록부를 디자인하라’, ‘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뛰어넘기’, ‘스토리텔링, 스토리두잉으로 피어나다’ 등 열 몇 권의 책을 썼다. 티스쿨원격교육연수원에 ‘학교생활기록부를 디자인하라’라는 영상강의를 올려놓았고, 브런치에 ‘시대와 교육’이라는 작가명으로 ‘시에서 꺼낸 토론주제 30’과 ‘생각을 이끄는 120가지 이야기’ 등을 올리고 있다. 유튜브 탑재를 위하여 ‘한국어 수업’이라는 큰 제목으로 ‘한국어 문법’, ‘한국어 문학’, ‘한국어 독서’ 등 또 다른 책을 쓰고 있다.eraedu21@gmail.com
박용성/시대와 교육 연구소 대표. 책을 쓰며 우리 시대의 교육을 다시 디자인하고 싶어서 시대와 교육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학교생활기록부를 디자인하라’, ‘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뛰어넘기’, ‘스토리텔링, 스토리두잉으로 피어나다’ 등 열 몇 권의 책을 썼다. 티스쿨원격교육연수원에 ‘학교생활기록부를 디자인하라’라는 영상강의를 올려놓았고, 브런치에 ‘시대와 교육’이라는 작가명으로 ‘시에서 꺼낸 토론주제 30’과 ‘생각을 이끄는 120가지 이야기’ 등을 올리고 있다. 유튜브 탑재를 위하여 ‘한국어 수업’이라는 큰 제목으로 ‘한국어 문법’, ‘한국어 문학’, ‘한국어 독서’ 등 또 다른 책을 쓰고 있다.eraedu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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