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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캠프

자유이용권, 과연 더 싼 것일까?

지불 분리의 오류

올인클루시브(all-inclusive)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여행상품이 있습니다. 올인클루시브란 다 포함됐음이라는 뜻인데, 주로 대형 리조트가 이런 상품을 많이 팝니다. 올인클루시브를 선택한 관광객은 출발하기 전 여행 경비 전액을 한꺼번에 내죠. 이러면 비행기 티켓을 포함한 교통편은 물론, 숙박과 식사가 제공되며 리조트 안의 놀이기구도 몽땅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리조트 안에서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밥을 먹어도 돈을 안 내고요. ~ 엄청 편하고 좋을 것 같죠?

그런데 깊이 숙고해 보면 의심이 듭니다. ‘과연 더 싼 것일까? 그때그때 돈을 내는 편이 오히려 더 싸지 않을까?’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그런 의심을 버리고 그냥 올인클루시브 상품에 몇백만 원을 덜컥 내요.


정액제와 종량제, 무엇이 유리할까?

상품을 구입한 뒤 돈을 지불하는 방식은 정액제종량제로 나뉩니다. 정액제올인클루시브나 자유이용권처럼 정해진 돈을 한 번에 낸 뒤(미리 내건 나중에 내건 상관없어.) 마음껏 소비하는 방식이죠. 반면에 종량제그때그때 쓰는 만큼 지불하는 방식입니다.

그렇다면 소비자 입장에선 어떤 방식이 유리할까요?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략 계산해 보면 정액제가 소비자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아요. 그때그때 돈을 따로 내는 종량제가 대체로 더 유리하다는 뜻이죠. 그도 그럴 것이 정액제가 소비자에게 유리하다면 에버랜드나 롯데월드 같은 놀이공원에서 왜 자유이용권만 집중적으로 팔겠어요? 설마 소비자들을 위해서? 그럴 리가요!

하지만 사람들은 정액제를 이용하면서 오히려 더 행복해합니다. 손해를 보면서도 오히려 이익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래서 마케팅에서는 이를 정액제의 마이라고 불러요.


고통을 분리하고 싶어 하는 심리

소비자들은 왜 이렇게 손해 보는 짓을 할까요? 대니얼 카너먼은 이를 '지불 분리(payment decoupling)의 오류'라는 다소 어려운 용어로 설명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사람이 돈 내고 물건을 살 때는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게 마련이에요. 원하던 물건이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은 매우 큰 행복입니다. 하지만 그 물건을 손에 넣기 위해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것은 매우 큰 불행으로 다가오죠.

인간이 합리적 소비자라면 돈을 쓸 때마다 행복과 불향의 크기를 꼼꼼히 비교해야 해요. ‘물건을 얻는 행복이 돈을 내는 불행보다 크면 물건을 사고, 반대라면 물건을 사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깊이 숙고하기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인간은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원초적으로 지불 분리 심리가 존재하죠. 행복을 얻으려면 돈을 지불하는 불행을 감수해야 하는데, 불행이 시간 차를 두고 나중에 다가온다면? 사람은 그 불행을 대충 잊어버려요.


놀이공원에서 자유이용권을 사는 이유도 그와 같아요. 모처럼 놀이공원에 갔는데 기구를 탈 때마다 돈을 낸다고 생각해 보세요. 한 시간에 한 번씩 불행을 맛봐야 합니. 이러면 즐거울 수가 없죠. 그런데 입장할 때 목돈을 한번 확 쓰면(물론 이때는 많이 불행합니다.) 그 뒤로는 탈 때마다 돈을 내지 않아도 돼요. 지불을 분리했기 때문에 이제는 행복을 즐길 일만 남았죠.

전 세계 곳곳에 리조트를 보유한 여행업체 클럽메드(Club Med)는 올인클루시브 전략을 최초로 구사한 회사로 꼽혀요. 클럽메드는 리조트를 찾은 고객에게 숙박과 식사는 물론, 각종 레저 활동까지 모조리 무료로 제공하죠. 그런데 과연 그게 무료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충분히 비싼 요금을 미리 다 받았어요. 지불 분리를 원하는 고객의 마음을 정확하게 꿰뚫은 것이죠. 그 덕에 클럽메드는 단번에 세계적인 리조트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결국 올인클루시브나 자유이용권, 신용카드 등은 인간의 비합리적인 지불 분리 경향을 이용해 과소비를 조장하는 약간 무시무시한 마케팅 기술인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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