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문재인 대통령, 4차 산업혁명 시대 ‘일자리 해법’ 제시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진로관점에서 본 문재인 정부의 추경

   ▲ [사진=에듀진 서버]


2017년 6월, 대한민국의 국회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문명사적 거대주제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정치적 해법과 경제사회적 가치관을 지향하는 두 세력이 격돌에 들어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정치적 격전은 바로 11조원 규모의 긴급 추경예산 편성을 신임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서 통과시켜줄 것을 요청하는 연설에서 본격화됐다.

왜 추경 편성을 둘러싼 문 대통령과 야당의 대립이 정치적 격전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것일까? 나아가 이 격전이 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복잡하고 거대한 담론을 둘러싼 경제사회적 가치관의 격돌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것일까?

외형적으로, 문 대통령의 추경예산 호소 연설은 4차 산업혁명을 그다지 본격적으로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현재 우리 사회에 몰아치고 있는 청년실업 등 일자리 문제와 소득분배의 악화에 따른 경제 불평등 문제, 그리고 여성과 노인 등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적 문제를 집중적으로 지적하면서 정부와 국가가 나서야 할 긴급성과 당면성 그리고 총체적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 남은 세금과 올해 더 걷힐 세금을 재원으로 오로지 ‘일자리 창출과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대규모 SOC사업, 국채 발행, 증세가 없는-이른바 3무 추경을 편성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런 논리의 연장선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대응할 여력이 있는데도 손을 놓고 있으면 정부의 직무유기, 정치의 직무유기입니다!”

그런데 무슨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인가?

그것은 바로 문 대통령이 현재 우리에게 닥친 사회경제적 제반 난제가 곧 잇따라 밀어닥칠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파고 앞에서 훨씬 더 악화되고, 훨씬 더 무시무시한 강도로 우리 공동체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직관 또는 정치적 본능을 통해 인지하고 있음을 강렬하게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 문재인 대통령 [사진=문재인 대통령 공식 페이스북]


4차 산업혁명이 우리 공동체 나아가 인류 전체에 얼마만한 강도와 범위로 기회이자 위협이 될 수 있는지를, 도전이자 경고가 될 수 있는지를 인식하지 못하면 나올 수 없는 정치적 해법-정부와 국가가 사회경제적 대과제의 해결에 전력을 다해 앞장선다는 ‘4차 산업혁명 시대형 신개입주의’-을 사실상 전면화하고 나섰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먼저 ‘4차 산업혁명’이 앞으로 우리, 나아가
인류 전체에 어떤 영향을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강력하게 몰아칠 수 있을지 보자.

아디다스의 스피드팩토리는 독일판 4차 산업혁명인 ‘인더스트리 4.0’이 얼마나 인간의 일자리를 줄일 수 있는지 그 파괴력을 여지없이 과시한다. 아디다스는 600명의 생산인력으로 연간 50만 켤레의 운동화를 생산하던 아시아 공장을 철수하고 독일로 이전하면서 생산인력 없이 관리인력 10명만으로 똑같은 생산량을 책임지기 시작했다. 1년 전 일이다.

올해 아디다스가 미국에 세울 스피드팩토리는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가 160명의 직원만으로 1800만 켤레(36배)의 생산량을 달성할 계획 아래 움직이고 있다. 한 마디로 과거 2차 산업혁명(전기혁명)은 물론 3차 산업혁명(인터넷 정보혁명) 시대와 비교하더라도 생산량은 무려 36배 이상으로 엄청나게 늘어나는 데 반해 정작 600명의 원래 인력 가운데 440명은 일자리로부터 밀려나야 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비롯해, 로봇, 사물인터넷, 증강현실, 3D 프린팅, 가상현실, 드론, 나노 등 신기술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채 작동하는 총체적 생산성 증가 혁명의 위력은 이처럼 비할 바 없이 엄청나기만 하다.

스피드팩토리 사례를 액면 그대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미 우리에게 밀어닥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태풍, 쓰나미가 상황에 따라선 얼마나 우리에게 무시무시하고 위협적일 수 있을지 충분히 일깨워주고도 남는다.

문 대통령이 현재의 청년실업 등 여러 문제의 사회경제적 원인으로 표현하고 있는 '극심한 내수불황' 정도는 사실 지금부터 미래에 걸쳐 우리에게 밀어닥칠 '4차 산업혁명'의 도전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다. 생산가능인구의 1/3에서 절반가량이 원래의 일자리로부터 밀려나는 상황 앞에선 1997년 당시의 IMF 구제금융사태도 전혀 명함조차 내밀지 못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중차대한 4차 산업혁명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비교적 현실적이면서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정치를 통해 문제의 핵심부터 풀어나가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바로 사회적 약자계층을 우선적이고도 집중적으로 지원해 이들 계층의 붕괴 및 사회로부터의 이탈을 막겠다고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왜 4차 산업혁명의 도전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고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정치의 역할이 이처럼 중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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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이미 1997년 구제금융사태 이후 우리를 지배해오고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서 충분히 경험하고 확인한 것처럼 지금까지와 같이 사회경제적 강자계층의 독과점적 지위와 관행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사회의 성장과 통합은 불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미 상대적으로 그 어느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보다도 부의 불평등과 승자독식주의가 강화된 상태에서 사회경제적 강자계층은 4차 산업혁명을 구성하고 가능케 하는 갖가지 시스템과 테크놀로지, 인적자본에 대한 접근권 및 활용기회를 훨씬 더 많이 독점하고 향유하게 된다.

둘째,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능하게 될 엄청난 생산성의 증대야말로 새롭고도 진보적인 인간중심주의 정치의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를 제대로 작동시켜 새로 획득하게 될 방대한 생산의 잉여를 기존의 소수를 위한 부익부에 함몰시키는 대신 보다 많은 사회적 필요계층에 합리적으로 재분배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미래의 바람직한 정치를 열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4차 산업혁명의 본래적인 기술기반과 풍요로운 생산성은 미래사회의 두 주력계층의 욕망과 필요를 각각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이기도 하다. 미래의 기술과 과학은 과거에는 불가능하던 인간의 욕망-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자기를 위해 하는 것과, 정부가 산업혁명의 결과 엄청나게 늘어난 생산성을 필요 계층에게 책임지고 재분배하는 식의 사회체계를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염두에 둔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현재 접근방식은 겉보기에는 추경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내용면에서는 보다 거시적인 측면에서 앞으로 닥칠 엄혹한 미래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전략을 정치적으로 표출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현재 추경에 대한 야당의 입장은 매우 소극적이고 근시안적이다. 어느 의미에서는 그들의 논리는 지금 우리에게 먼바다로부터 엄청난 기세로 밀려드는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파도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이전 제3차 산업혁명(어느 의미에서는 2차 혁명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는)의 관점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만 같다.

문 대통령은 지금 이런 야당에 대해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국민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게 정부고 그게 국가입니다."

앞으로 국민이 어느 쪽을 지지할 지는 머지않아 판가름 날 것이다.

*에듀진 기사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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