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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교육, 모든 걸 알려주려 하지 마라”

현직 교사가 말하는 ‘과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

                 신규진 교사는 “사람들이 과학을 어려워하게 되는 시기는 예닐곱 살가량”이라며 “‘하늘은
                        왜 파랗지?’ ‘아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거야?’와 같은 궁금증을 풀도록 도울 사람이 곁에 있다면
                        과학적 사고력이 크게 향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부를 왜 할까요?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새로운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죠. 그러려면 어떤 현상을 보고 떠오른 의문을 해결하려는 탐구심을 갖고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지금 교실에서 그게 가능한가요?” 

지난 30년간 교단에서 지구과학을 가르쳐온 신규진 교사(서울 경성고)는 스토리 없이 방대한 내용을 담은 교과서, 입시에 매몰된 수업 등 과학 교육에 아쉬운 점이 많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재미있게 지구과학을 공부할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했다. 진도 맞추기 바쁜 수업 중에 아이들 흥미를 돋우기 위해 질문을 던지고, 교내 과학 축제를 매달 진행했다. 최근엔 직접 찍고, 쓴 자료를 모아 책 ‘지구를 소개합니다’(우리교육)도 펴냈다. 신 교사는 과학 교육에서 어떤 문제점을 느꼈을까. 앞으로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과학 교과서, 스토리를 잃다 
지구과학은 지구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을 탐구하는 과목이다. 신 교사에 따르면 이 학문은 워낙 방대한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실제 수업을 하다 보면 어느새 큰 줄기를 잃고 ‘무엇을 공부하는지’ 잊기 일쑤다. 가장 큰 이유는 교과서 구조다. 과거 고교 지구과학의 4대 분야였던 지질학·천문학·대기과학·해양학에, 최근 환경학과 우주론을 추가했다. 우주 탄생부터 지구 해양과 환경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룬다. 고1 과학은 ‘우주 탄생 빅뱅’으로 시작한다. 이후 우주 역사를 따라가는 서술이 이어지는 식이다. 

신 교사는 “아이들이 교과서를 읽으며 혼자 공부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교과서로는 그게 어렵다”고 지적했다. 많은 내용을 압축해 수록하다 보니 간략한 설명만 겨우 이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고교 1학년 과학 교과서에서 지구 자전 증거를 설명할 때 ‘북극에서 적도로 공을 던지면, 전향력 현상 때문에 공은 목표 지점보다 약간 오른쪽으로 떨어진다’라든지 ‘진자를 진동시키면 진자 진동면이 지구 자전의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이다’라고만 한다. “이 설명만으로 지구 자전의 영향력을 충분히 이해하는 학생이 몇이나 될까요? 교과서는 설명을 지나치게 생략하고 있어요.” 

왜 이렇게 됐을까. 신 교사에 따르면 교과서 집필 시 교수와 교사가 다수 참여하므로 좋은 교과서를 만들 역량은 충분하다. 문제는 집필진에게 부여한 자율 범위가 너무 좁다는 점이다. “교과부가 제시한 필수 학습 분량이 너무 많습니다. 한식·중식·일식·서양식·동남아식 등 세계 요리를 망라해 요리책 한 권에 모두 실은 것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각 요리 설명은 ‘라면 끓이기 설명서’처럼 간단히 쓸 수밖에 없겠죠.” 그는 “교과서가 기존 틀을 벗기가 참 어렵다”고 했다. “2009교육과정 교과서 개편 때 이런 관행을 깨고자 고교 1학년 과학 교과서에 물리·화학 부분을 대폭 삭제했는데,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빗발치는 학계 반발을 무마하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고 들었어요.”

그는 “학습 방식도 문제”라고 했다. “지구 자전을 알려면 실제로 어떤 현상을 경험한 뒤 ‘왜 그렇지?’ 라며 접근해 답을 찾아가는 순서를 거쳐야 합니다. 과학 교과서에는 ‘태양이 매일 서에서 동쪽으로 1°씩 움직인다’고 쓰여 있지만, 정말 그런 것인지 확인하려면 매일 새벽에 일어나 적어도 한 달간 관찰할 여유가 있어야 해요. 하지만 교실엔 그럴 만한 시간이 없습니다. 정해진 진도를 소화해 중간·기말고사를 봐야 하니까요.”

◇통합과학 도입…구성부터 단원까지 교과서 전면 개정
하지만 2018학년도부터는 상황이 좀 달라진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통합과학을 도입하고, 통합과학 교과서로 공부한다. 새 교육과정에 따르면 통합과학은 논리와 근거를 바탕으로 과학적 추론 능력을 증진하는 데 목적을 두고, 전체 내용은 물질과 규칙성·지구시스템과 상호작용·변화와 다양성·환경과 에너지의 네 분야로 구성한다. “물론 구성이나 소단원이 바뀌었다고 해서 내용이 현재 교과서와 현저히 다를 수는 없을 겁니다. 학문의 본질적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같은 물건도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용도가 달라질 수 있듯, 통합과학이 추구하는 목표에 충실한 교과서라면 지금보다 좋은 책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아직 교과서 발행 전이니 뚜껑을 열어봐야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요.” 

그런 점에서 신 교사의 신간 ‘지구를 소개합니다’가 추구하는 방향은 통합과학 지향점과 닮았다. 그의 책은 기존 교과서처럼 지질·대기·해양·우주로 분할하지 않고, 지구를 온도·구조·운동·물질이라는 네 개 파트로 분할해 접근한다. 일정한 현상이나 주제를 정한 다음 여러 분야에 걸쳐 서술한다. 예컨대 온도를 주제로 삼아, 대기 온도·해양 온도·땅속 온도·우주 온도 등 알아보는 식이다. 스토리도 담았다. 신 교사는 “물질 단원에 입자물리학 영역의 ‘소립자 내지는 양자’에 관한 과학사 스토리를 녹여냈다. 이 부분을 쓰느라고 1년 넘게 별도로 공부했다”고 했다. 

◇평가·집단교육·분절된 수업…모두 개선해야
하지만 교과서가 개정된다고 해서 곧 과학 교육이 논리적 추론력과 창의력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는 게 신 교사의 생각이다. 현 대입 체제 내에서는 평가가 바뀌지 않으면 결국 주입식 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학교 시험에서는 교과서가 제시한 내용만 답으로 인정하고, 철자 하나만 어긋나게 써도 오답 처리합니다. 이 결과를 통해 대학에 진학하면, 싫든 좋든 모두 교과서를 그대로 암기하려고만 하겠죠.” 이는 영재교육도 마찬가지다. 영재의 주요 특성인 창의력과 다양성을 학교 시험이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황사의 긍정적 영향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해서 ‘삼겹살이나 마스크가 많이 팔린다’고 기재한 경우 답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영재성을 가진 어린이도 차츰 교과서대로 답하고 쓰는 일에 익숙해집니다. ‘이건 이래야 해’라는 사고에 갇혀버리는 거죠. 그러니 평가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교과서 체계가 변해도 교육 효과는 향상하지 않을 겁니다.”

과학 교육뿐 아니다. 학교에서는 과목을 막론하고 교사 한 명이 여러 반과 많은 학생을 담당해 개인 흥미, 능력, 발달 속도를 일일이 살피지 못하는 집단 교육을 한다. “집단 교육은 ‘노선을 따라 운행하는 기차’와 같아요. 모든 승객이 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시간이 되면 바로 떠납니다. 그래서 연령별로 진행하는 교육 과정에서 한 번 뒤처지면 따라잡기가 어렵죠.” 교사들은 ‘이 개념은 중학교 단원에 나오니 아이들이 이미 알고 있을 거야’라고 가정하고 수업할 때가 잦다. 하지만 모든 학생이 대부분 수업을 기억하는 건 아니다. 

학교 수업을 토막 수업 형태로 진행하는 것도 문제다. 즉, 한 시간 배우고 일주일 후 한 시간 배우는 식의 수업이 탐구 의욕을 잃게 한다. “학교가 치밀한 학습 전략 없이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치고 너무 많은 것을 잊어버리도록 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공부할 단원이 워낙 많아서 과학 교육에선 중요한 관찰, 체험, 실험, 실습을 할 시간과 공간, 금전적 지원이 전부 부족해요. 이제는 무리하지 말고 학습량을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신 교사가 재직 중인 경성고는 연간 20여 개의 과학 행사를 연다. 한 달에 두 번꼴이다. 과학과 교사 전원이 협력해 진행한다. 과학 영재 학급을 운영하거나 관심 있는 학생들을 데리고 현장 체험도 간다. 신 교사는 “비교과 활동을 활용해 학생들의 탐구심을 북돋을 수 있는 다양한 행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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