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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단독]정치인·공무원·노조위원장이 학장…폴리텍대학, 大學 맞나?

전국 캠퍼스 학장 34명 중 19명(55.9%) 교육경력 없어…외부인사가 대다수
‘낙하산 인사’ 지적에도 학장 인사 강행
고용노동부, 폴리텍 법인에 관리·감독 권한 사실상 위임 ‘셀프 감사’ 방치

                구시대적인 '학생 생활지도지침'으로 물의를 빚은 폴리텍대가 이번에는 교육경력이 없는 외부인사를
                  학장에 줄줄이 임명한 것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 조선일보 DB



산업체 기능인력을 양성하는 폴리텍대학(전국 34개 캠퍼스, 4개 교육기관)이 교수와 직원에게 학생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토록 한 ‘학생 생활지도지침’(본지 8월 14일자 기사 ‘학생 용돈ㆍ소지품까지 감시…폴리텍대학의 구시대적 생활지침’ 참조)으로 물의를 빚은 데 이어, 교육경력이 전혀 없는 외부인사를 학장에 임명하는 이른바 ‘낙하산 인사’ 관행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폴리텍대학이 정부 여당과 고용노동부 임원급 간부들의 ‘보신ㆍ보은처’로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안팎에서 제기됐지만, 논란이 된 인사를 별다른 제재 없이 슬그머니 학장에 임명하는 등 정부 차원의 관리·감독체계까지 무너졌다는 비판이다. 

한국폴리텍대학 전국교수협의회(이하 폴리텍교협)는 “폴리텍대학의 학장 인사는 현 정부 정책기조인 ‘적폐 청산’의 대상이 될 만하다”고 꼬집었다. 경력단절여성, 신중년, 고학력자 등으로 대상을 넓혀 평생교육을 포괄하는 ‘교육기관’으로 발돋움하려는 폴리텍대학 개혁에 ‘인사 혁신’이 출발점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본지가 ▲학교법인 한국폴리텍 홈페이지 ▲학장 인사 및 취임식 관련 공식자료 ▲네이버 인명사전 등을 중복으로 확인한 결과, 전국 34개 캠퍼스 학장 중 절반이 넘는 55.9%(19명)가 교육경력이 전혀 없는 외부인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특정정당(임명 당시 정부 여당)의 지역당협위원장·수석위원·시의원 등 정치권 인사가 50%(8명)로 절반을 차지했다. 이어 폴리텍대학의 관리·감독 책임부처인 고용노동부의 고위공무원과 기능대학 시절의 담당부처인 한국산업인력공단 임원 출신 등 정부 관료가 31.6%(6명)로 뒤를 이었다. 이 밖에도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 간부와  ‘법인 감사실’의 감사실장도 현직 지역대학장에 포함돼 있었다.

34개 캠퍼스 지역대학장 중 외부인사는 ▲고용노동부 기획조정실장(서울정수캠) ▲새누리당 지역 당협위원장(광주캠·김제캠) ▲한국노총 조직본부장(청주캠) ▲여성단체협의회장(인천캠) ▲삼척시의회 의원(춘천캠) 등 교육경력이 의심되는 전직(前職)을 갖고 있었다. 

서울정수캠 학장직은 고용노동부 기조실장 출신 인사들이 연이어 차지했다. 한창훈 서울정수캠퍼스 학장은 선임자인 심경우 전 학장과 같은 노동부 기조실장을 지낸데다 행정고시 29회 동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유로 한 노동분야 전문매체는 지난해 12월, 노동부와 산하기관에 퍼진 ‘학장 내정설’(낙하산 인사)을 지적하며 ‘노동부 관피아(관료+마피아)’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올 초, 학교법인 한국폴리텍(이사장 이우영)과 고용노동부는 한창훈 당시 중앙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을 기어이 서울정수캠 학장에 임명했다. 법인 관계자는 “노동행정전문가로서 학장 자격기준에 부합한다고 판단, 공모절차를 거쳐 임용된 사례로 문제될 게 없다”며 “노동부 기조실장을 지냈다는 이력 때문에 학장직에서 배제하는 것도 규정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학생 생활지도지침’을 적용해 총학생회장을 제적시키려 했던 남인천캠의 백영길 학장은 주류회사인 진로의 노조위원장과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을 지냈다. 본지 보도 후 법인의 자체조사에서 남인천캠과 같은 학생 감시지침(생활지침)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 화성캠도 교육경력이 전무한 행정관료가 학장을 맡고 있다. 화성캠의 조한유 학장은 행정고시 17회로 행정자치부, 총리실, 청와대 등을 거쳤다. 고향인 화성으로 돌아와 지난 2012년부터 화성캠 학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법인 감사실장이 지역대학장에 발령이 나는 사례도 있다. 목포캠의 차신태 학장은 지난 2014년 9월, 1년여의 임기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학장에 임명됐다. 공직자윤리법 제17조(퇴직공직자의 취업제한)에 따르면 퇴직일부터 3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했던 부서 또는 기관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기관에 취업할 수 없다. 다만, 이 법은 이듬해인 2015년 3월 이후 대학까지 확대 적용됐고, 학교법인 한국폴리텍은 지금도 취업심사 대상기관에서 빠져 있다. 더구나 감사실장이라는 직책이 상근감사가 아니기 때문에 캠퍼스 학장으로 가더라도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게 정부 인사혁신처의 해석이다. 법인 측이 차 학장의 임용에 대해 “인사발령(승진)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 법률적 근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폴리텍대 교수들은 고용노동부가 폴리텍대학에 대한 감사를 ‘법인 감사실’로 사실상 일원화한 상황이라 법인 감사실장의 권한이 피감기관인 캠퍼스에 막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폴리텍대학은 현재 학교법인이지만, 고용노동부 산하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된 탓에 국립과 사립이 혼용된 형태의 교육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윤희중 폴리텍교협 총회장은 “법인 감사실장이 곧장 피감기관의 학장으로 가는 게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도, 차후 학장으로 ‘승진’할 것을 염두에 두고 ‘좋은 게 좋은 것’이란 식으로 감사업무를 수행했을 수 있다는 의혹까지 지울 순 없는 것 아니냐”며 신뢰성 있는 학장 인사를 주문했다. 

이처럼 학교법인 한국폴리텍은 전국 34개 캠퍼스를 운영하면서 일반대학의 총장직에 해당하는 학장직을 특정정당의 당원, 노조위원장 등 교육과 무관한 인사를 단행해왔고, 심지어 폴리텍대학을 관리·감독해야 할 고용노동부 소속 공무원들까지 돌아가며 학장직을 맡고 있다. 외압에 의한 낙하산 인사는 물론이고 내부 승진에 따른 ‘회전문 인사’에 이르기까지 폴리텍대학의 학장직이 마치 정치권과 정부 관료의 든든한 한직(閑職)처럼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법인은 이 같은 인사 불신 의혹에 대해 공고를 통해 학장을 선발하기 때문에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영화 학교법인 한국폴리텍 운영국장은 “지역대학장은 학장후보선정위원회를 통해 서류와 면접심사를 거친 후 법인 이사회가 의결하고, 최종적으로 이사장이 임명한다. 학장 응모자는 학력, 자격증, 경력요건 3가지 중 1가지 이상만 충족하면 자격을 갖췄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정치인, 정부 관료 등 교육경력이 전무한 인사의 학장 임용에 대해서도 “교육경험이 없어도, 지역발전과 지역사회에서 기관을 경영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 학장에 임용되면 학교 운영을 더 잘하는 경우도 있어서 특별히 교육경력 여부에 제한을 두지 않은 것일 뿐”이라고 강변했다. 노조 출신 학장의 경우엔 “전문기능(직업)인을 양성하는 대학의 특수한 목적상 산학협력 등 지역산업체와 업무협조를 이끌어내야 하는 일이 많아 ‘대외협상가’로서 자질을 전문성으로 평가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교수들은 법인이 말하는 학장의 전문성은 대외명분일 뿐 정치적 보은에 따른 낙하산 인사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윤 총회장은 “예컨대 전라도 권역의 5개 캠퍼스 학장의 경우 거의 정치권 출신 외부인사로 채워졌는데, 박근혜 정부 당시 새누리당의 임원급 당원이 전라도 지역에서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노조 등 교육과 무관한 분야에서 임용하는 학장 인사에 대해서도 “무조건 외부인사는 안 된다는 게 아니라, 교육철학과 산업체 경륜이 풍부한 인사면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현재까지 폴리텍대 외부인사들의 경우 대체로 자기 실적을 쌓는 데 매몰돼 교육이 내실있게 이뤄지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전국 폴리텍대 전임교수 1200여 명을 회원으로 보유한 폴리텍교협은 지난 2015년, 공정하고 투명한 학장 인사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이후에도 ‘낙하산 인사’ 관행이 개선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최근엔 문제제기조차 손을 놓은 상태다.

문제는 지역대학장의 절반 이상을 교육경력이 전혀 없는 외부인사로 채운 폴리텍대학이 고등교육기관으로서 내실있는 교육을 담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점이다. 교육부가 아닌 고용노동부 산하의 기타공공기관인 폴리텍대학은 ‘고등교육법’이 아닌 ‘근로자직업능력 개발법’에 따라 운영된다. 그런데 폴리텍대학의 교육을 관리·감독해야 할 고용노동부가 법인에 감사권을 사실상 위임한 현실은 '셀프 감사' 의혹까지 불러일으키는 상황인 것이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직업능력정책과의 한 폴리텍대학 담당자는 "고용노동부는 산업인력공단을 통해 재출연하는 방식으로, 폴리텍대학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관계"라면서도 "(고용노동부가) 폴리텍대학의 교육 방향, 인사 조직, 예산 등을 지도·감독하게 돼 있는 건 맞다"고 확인했다. 하지만 전국 34개 캠퍼스의 인사 검증과 교육 실태에 대한 관리·감독에 대해서는 "고용노동부가 직접 감사를 하더라도 캠퍼스까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즉,  법인 감사실의 자체감사 결과를 보고받는 게 전부라는 말이다.

이처럼 고용노동부엔 폴리텍대학의 인사를 검증하거나 교육을 관리·감독할 체계가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법인 양 기관은 최근 일부 캠퍼스에서 구시대적 ‘학생 생활지도지침’을 수십년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이 지침의 실제 쓰임에 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시인하기도 했다. 특히 고용노동부 담당자는 "실제로 이런 지침으로 제재한 사례가 드러나지 않아서 사문화된 것이라고 믿었다"고만 털어놨다. 관리·감독은 하지 않은 채 문제가 없을 거라는 자의적 판단에 기댄 것이다. 

내년 2월, 지역대학장 34명 가운데 14명의 임기가 만료돼 고용노동부와 학교법인 한국폴리텍은 새 인물을 대거 임용해야 한다. 이영화 운영국장은 "경력단절여성, 신중년 등을 대상으로 한 직업교육에 주력할 계획"이라며 "교육과 직업능력개발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가를 뽑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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