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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 중3·‘안도’ 고1·‘날벼락’ 중2 학부모들

교육부, 2021 수능 현행과 동일 시행… 1년 유예 결정
학부모들 학년별로 제각각 반응… “앞으로 정부 못 믿어” 한목소리도


“이걸 다행이라고 말해야 하는 건가요? 조삼모사(朝三暮四)식 수능 개편안 발표에 한 방 먹은 기분이에요.” (이준희·가명·47·서울)

오늘(31일) 교육부가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개편을 1년 유예하기로 결정하면서, 학생과 학부모들은 일명 ‘공황(Panic)’ 상태에 빠졌다. 지난 10일 수능 개편 시안에서 발표한 ‘수능 절대평가 확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교육현장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것. 새로운 정책의 적용대상에서 벗어난 현재의 중3은 물론, 재기의 기회를 찾았다는 고1, 그리고 오랜 기간 준비해 온 고입 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할 처지에 몰린 중2까지 학부모들의 반응은 학년별로 제각각이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일관성 없는 태도가 앞으로 정책 발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의견엔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교육부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2021학년도 수능 개편을 1년 유예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짧은 기간 내에 양자택일(兩者擇一)식의 선택을 강요하기보단, 충분한 소통과 과정을 통해 합리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의 지적을 받아들여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 앞서 지난 10일 교육부는 수능 개편 시안 발표하면서 일부 과목만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안(1안)과 7개 전 과목을 절대평가로 바꾸는 안(2안)을 동시에 내놓은 바 있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앞으로 고교·대학·학부모·정부가 참여하는 ‘대입정책포럼(가칭)’을 구성해 대입전형과 이후 수능 개편 등 새 정부의 교육개혁 방향을 함께 논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고교학점제·성취평가제·고교교육 정상화 방안·대입 정책 등을 포괄하는 ‘새 정부 교육개혁 방안’을 내년 8월까지 마련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중학교 3학년생 학부모들은 그야말로 ‘대혼란’이다. 일각에선 이런 정부 발표에 대해 ‘우롱당한 기분’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중3 딸을 둔 김윤정(가명·서울 강서구)씨는 “4과목 절대평가냐, 전과목 절대평가냐 등 1·2안을 내세우며 절대평가 확대가 불가피한 것처럼 해놓고, 이제와서 반발이 크니 1년 후 다시 얘기하자고 하는 건 무슨 경우냐”라며 “절대평가 반대 입장을 펼치던 학부모로서 현행 유지 발표에 다행스럽단 생각이지만, 개편 시안 이후 보름이 넘는 시간 동안 정부의 손아귀에 놀아났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중3 아들을 둔 조은호(가명·충남 천안)씨는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교육 정책이 이렇듯 손바닥 뒤집듯이 오락가락해도 되냐”며 “변화의 경계선에 낀 학생들이 겪어야 할 충격과 혼란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경솔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당장 내년부터 달라지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새 교육과정과 현행 수능이 서로 초점이 안 맞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달라진 시험 범위로 학생들이 혼란을 겪는 것은 물론, 문·이과 통합 등 새 교육과정의 취지가 훼손되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한 중3 학부모는 “바뀐 교육과정과 수능 체계가 달라 혼선과 부담을 온전히 우리 아이들이 감수해야 하는데, 이는 어떻게 책임질 거냐”며 “학습 부담을 줄이고, 문·이과 구분 없이 인문사회·과학기술 분야에 기초 소양을 두루 지닌 융·복합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본래의 취지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라며 한숨지었다.

반대로, 현 고1 학생과 학부모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오히려 현행 체제로 치르는 ‘마지막 수능세대’라는 불안감에서 해소됐다며 안도하는 분위기다. 기존 개편 시안의 내용대로라면, 이들이 재수하게 될 경우 새로운 교과서(2015 개정 교육과정)로 공부하고 뒤바뀐 수능과 대입전형(수능 절대평가, 대입 논술 폐지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 한 학부모는 “그간 ‘한 번에 대입에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매우 컸다. 하지만 이번 개편안에서 1년의 시간을 벌어줘 이에 대한 압박이 훨씬 덜해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도 ‘기회는 한 번뿐’이라는 압박에 개편 시안 발표 이후 사교육 업체를 찾았다고 털어놨다. “아이가 치를 2020학년도 수능에서 단번에 점수를 잘 내야 한다는 불안감 때문에 이달에만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 과목 사교육을 늘렸어요. 이번 유예 발표로 인해 숨도 못 쉬게 조급하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어지는 기분이에요.”

이번 개편안 발표로 가장 당혹스러운 대상은 현 중2다. 애초 중2는 중3들이 새로운 교육과정과 개편된 수능 체제를 경험하는 것을 바탕으로 이후에 학습전략이나 고교별 선택 등 여러 가지를 준비해도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졸지에 수능 개편안의 첫 번째 적용 학년이 되면서 매우 혼란스러워졌다. 더군다나 2022학년도부터 교육 당국의 논의를 통해 고교학점제, 내신 성취평가제, 고교교육정상화 방안 등 대입제도 전반적인 변화가 이뤄질 경우 그 혼란은 더 클 수밖에 없다. 특목고를 준비하는 중2 딸을 둔 김주영(가명·서울 서초구)씨는 “정부의 발표로 인해 고교 선택에 대한 계획에 크게 차질이 생겼다”며 “차라리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유학을 준비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학년별로 저마다 다른 입장을 내세움에도,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은 모두 깊어가고 있다. 일명 ‘간보기’식 정부 발표로 인해 앞으로 어떤 교육 정책안도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 학부모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입제도가 바뀌어 해마다 학부모를 불안으로, 수험생을 실험용으로 내몰기 반복했다”며 “교육이 사회 발전에 따라 능동적으로 변화할 필요성은 있지만, 일선 교사들이 이 같은 교육과정과 정책에 쫓아갈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학부모가 공교육을 믿고 사교육에 의지하지 않도록 줏대 있고 일관성있는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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