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밖 현실은 냉혹하다

일이란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형벌일까


    ▲ 일이란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형벌일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일이란 무엇인가
직장을 떠나더라도 최소한 자기 일의 의미를 알고 대비해야 직장을 떠난 후에도 안정을 누릴 수 있다. 직장인이 차별화된 역량을 가지려면 자기가 맡은 업무에서 특화할 만한 요소를 찾아 그 영역의 전문성을 높이고, 그걸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때 선행돼야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자기 일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그 의미를 일하는 동력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먼저 답할 수 있어야겠다. 사실 이 질문에 답하는 건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수많은 책을 읽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질문을 던져도 하나의 메시지로 정의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어떤 사람은 일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일이 삶의 목 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 문헌들을 살펴보면 ‘일은 인간에게 내려진 하나의 저주이기도 하고, 하나의 축복이기도 하다’고 나와 있다. 이렇듯 일을 두고 서로 상반된 의견들이 펼쳐지는 이유는 뭘까.

영어에서 ‘일’을 뜻하는 단어 ‘work’는 ‘한 개인의 일반적인 행동, 실행하는 것, 행위, 조처, 업무, 행해지는 것 혹은 이미 행해진 어떤 것, 어떤 사람이 행하거나 이미 행한 것’라고 정의된다. 말하자면 ‘일’은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이라 할 수 있고, ‘일’이라는 단어는 인간 활동에 매우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용어인 셈이다.

일에서 의미를 찾아라!
그런데 우리는 대개 성인이 되면 어떤 행동을 할 때 ‘개인적인 일’과 ‘사회적인 일’로 구분하게 된다. 개인적인 일은 ‘즐기는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반면, 사회적인 일은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형벌’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오디세이》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지옥에서 시시포스를 만난다. 시시포스는 제우스를 속인 죄로 지옥에 떨어져 커다란 바위를 쉬지 않고 산꼭대기로 밀어 올려야 하는 저주에 걸려 있다. 바위는 산꼭대기에 이르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그는 바위를 다시 산꼭대기로 밀어 올린다. 이 과정을 영원히 되풀이해야 한다.

시시포스의 이야기에 대해 《일의 발견》의 저자 조안 B. 시울라는 시시포스를 괴롭힌 원인을 3가지로 꼽았다. ‘소모적이고 지루한 과업’, ‘자유 상실’, ‘무의미하고 헛된 일’이 그것이다. 알베르 카뮈도 비슷한 말을 남겼다. “신들이 쓸모없고 헛된 노동보다 더 무시무시한 형벌은 없다고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라고 평한 것이다.

그런데 현대인들 역시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각자의 직업 생활을 통해 ‘직무’와 ‘근로 활동’이라는 바위를 날마다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고 있는 듯하다. 이유도, 끝도 모르는 채로 그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래도 나아질 방법은 있다. 어떤 일을 하든 자기 일에서 ‘보다 의미 있는 요소’를 찾아내는 것이다. 의미가 분명히 드러나는 일에서조차 또 다른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어떤 직업은 그 자체만으로도 재미있고, 다른 사람이나 사회를 도울 수 있어 의미가 있어 보이는 반면, 어떤 직업은 일하는 사람의 에너지만 고갈시키는 듯한 것도 있다. 대다수의 사람이 남들 보기에 멋져 보이는 일자리나 의미 있어 보이는 직업만 선택하려고 하는 이유다.


일에 대한 태도가 일의 의미를 결정한다
문제는 그런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은 데다 그나마 그 일자리조차 만족스럽지 못할 수 있다는 거다. 일자리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일로 인한 압박감도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노동 현실이다. 또한 대다수의 사람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사상과 견해보다 그가 하는 일을 더 중요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 사람이 종사하는 일에 따라 그를 판단하는 것이다.

여러 동양 문화에서 물질세계는 정신적·영적 세계보다 덧없고 열등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들이 일을 경멸한 것만은 아니다. 부처의 일화는 바닥을 쓸고 닦고 연료를 모으는 것 같은 가장 비천한 일조차도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기원전 6세기, 부처는 ‘세상은 덧없는 것이므로 괴로움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이라 가르쳤다. 사람들이 물질적인 것과 육체적인 쾌락만 갈망하기 때문에 괴로움을 겪는 것이며, 사랑과 동정, 정신적 수양을 통해 이러한 갈망을 없애는 것이 괴로움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설파했다. 부처에게 일은 정신적 수양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래서 일에서의 과정을 결과보다 더 중요시했다.

불교에서만 그런 건 아니다. 성 베네딕트는 수도사들에게 신에 대한 헌신의 한 방법으로 “ 무 슨 일을 하든 탁월함을 추구하라”고 장려했다. 종교개혁가들은 모든 일을 ‘베루프(Beruf)’, 즉 ‘소명’이라 정의했다. 소명은 일의 종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에 대한 태도를 일컫는 말이다.

의미 있는 일이란 스스로 발견하고 만드는 것
사실 각자에게 ‘의미 있는 일’이란 누군가 정의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의미 있는 일은 스스로 발견하고 만들어나가야 한다. 종교 관련 일이나 봉사하는 일 같은 일부 직업들은 본질적으로 의미 있는 직업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직업들조차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이 진정한 의미를 알고 수행할 때 만 그 의미가 빛 난 다 . 우리는 그렇지 못 한 종교지도자나 사회지도자들을 수도 없이 봐왔다.

모두 잘 알고 있겠지만, 직장인으로서의 삶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따라서 직업을 통해 더 행복해지고, 더불어 미래까지 대비하고 싶다면 각자의 직업, 각자의 일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자신의 역량을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

생텍쥐페리가 창조한 어린 왕자는 말했다. “내가 물을 주고 바람을 막아주며 정성 들인 장미는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특별한 장미”라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보라. 보잘 것 없어 보이던 그 일이 여러분에게 새로운 동기를 제공할 것이다. - 도서 <따뜻한 독설>중에서


정철상 부산외대 취업전담교수
인재개발연구소 대표, (사)한국직업진로지도협회 부회장

<저서>
심리학이 청춘에게 묻다, 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
가슴뛰는 비전, 청춘의 진로나침반, 커리어코치 정철상의 따뜻한 독설


*에듀진 기사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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