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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

[기획] 신도시에 중학교 ‘안 짓나, 못 짓나’ (상편)

교육부 “1개교당 300~500억원 소요 … 학령인구 감소 속 신설 신중해야”
학부모 “분양과정서 중학교 신설 홍보 믿고 입주 … 약속 이행하라”
신도시 ‘학령기 입주민’ 수요 예측 실패, 피해는 학생·학부모 몫



“현재도 ‘과밀’인 소하중학교(소하1동 유일)를 8~10개 학급을 늘려 270명을 더 받겠다네요. 이게 학교인지 교도소인지 모르겠어요. ‘닭장’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나요? 헌데 중학교 신설 문제를 오롯이 학부모들의 이기심 탓으로 돌리니 화가 나는 겁니다.”


소화권 중학교 과밀해소위원회의 오모씨는 답답함에 가슴을 쳤다. KTX 광명역에서 3~4km가량 떨어진 경기도 광명시 소하지구는 주거환경개선사업에 따라 2001년부터 개발을 확장한 신도시로, 최근 중학교 신설 문제가 가장 뜨거운 지역 중 한 곳이다. 지난 7월 소하1동의 구름산초교 학부모들은 광명시청 앞마당에서 “학교총량제 폐지, 중학교 신설”이라고 손수 쓴 피켓을 들고 항의집회를 했다. 나흘 후에는 국회에서 중학교(운산중) 신설을 약속대로 이행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도 열었다. 결국 광명시교육지원청은 학군 조정을 통해 인근 지역 중학교로 분산 배정키로 했지만, 성난 학부모들의 민심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수도권 신도시 일대에서 중학교 기근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야말로 ‘중학교 대란(大亂)’이다. 신도시 주민의 중학교 신설 민원은 끊이지 않는다. 최근 한 학부모 대상 커뮤니티에는 “초등 6년을 기다렸지만, 끝내 중학교가 지어지지 않아 이사하기로 했다”는 학부모의 성토가 올라오자, 공감 댓글이 줄을 이었다. 


육부 산하 중앙투자심사위원회(이하 중투) 위원을 지낸 한 인사는 “신도시 내 중학교 신설 문제는 정부와 학부모 양측 모두 ‘물러설 수 없는 근거’를 손에 쥐고 평행선을 달리는 형국이라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양측이 주장하는 ‘합의할 수 없는 논리’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신도시엔 중학교를 안 짓는 걸까, 못 짓는 걸까. 


◇ 전직 중투위원 “학생 꾸준한 유입 보장 없어… 쉽지 않은 결정” 


자녀가 보다 안전하고 질 높은 교육을 받길 원하는 예비 중학생 학부모들의 학교 신설 요구는 수도권 신도시에서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중학교 신설 문제로 몸살을 앓는 신도시는 ▲서울 강남구 세곡지구 ▲광명 소하지구 ▲남양주 진건지구(다산신도시) ▲시흥 목감‧배곧‧은계지구 ▲하남 감일지구 등이다. 이들 지역은 이른바 부동산 투자 인기지역으로, 학령기 자녀를 둔 학부모와 신혼부부가 몰리면서 초·중·고교 수급불균형이 심화하고 있다. 


특히 신도시 입주 초기, 초등학교는 두세 군데 이상 세워지지만, 중학교는 두 군데 이상 들어서는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 예컨대 2020년 인구 3만2000여명이 유입될 하남 감일지구는 지난 4월 중학교 2곳(감일1중, 감일2중)의 신설 요청안을 냈지만 중투에서 모두 탈락했다. 광주하남교육지원청은 8월 열린 중투에서 ‘감일2중’ 한 곳이라도 지어달라고 재차 요청했지만, 이 역시 신설 승인 기준(24~30학급)을 채우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로 승인 받지 못했다. 이로써 중학교가 한 곳도 없는 신도시가 들어서게 됐다. 중투는 2019년 9월 입주 예정 중학생들(100여명 추산)을 위례중(직선거리 4km, 자동차 이용시 9km)에 배정토록 했는데, 학생들은 산을 넘어 골프장과 북위례지구 공사현장을 지나가야 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26일 현재 감일지구에서 위례중으로 가는 버스 노선이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곳은 중학교 신설계획이 백지화된 이후에도 건설사들이 버젓이 “중학교 부지가 단지와 인접해 있다”는 분양 홍보를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신도시 학부모들의 속은 타들어 가지만, 학교 신설 권한을 가진 교육부는 단호하다. 신설보다는 기존 학교 증축이나 인근 중학교로 분산시키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학부모들은 ‘과밀학급’과 ‘통학안전’ 문제를 해결해달라며 해당 지자체에 민원을 제기하는 것을 넘어 도심 집회와 국회 기자회견까지 강행하며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부와 교육청은 ‘신설 근거가 부족하다’는 답변만 내놓는 상황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중학교 신설에 들어가는 비용은 대략 300억~500억원(1개교당). 총 사업비 100억원 이상인 교육사업의 경우 해당 지역 교육청에서 발주하면 중투(심사위원 9명)에서 최종심사를 한다. 중투는 1년에 세 차례가량 열리고 한 번에 70~80건의 대규모 교육사업을 심사한다. 이 때문에 학부모들은 중투 최종 심사장 앞에서 진을 치며 학교 신설을 요구하기도 했다. 


학교 신설에 관한 중투의 주요 심사 기준은 ‘학생 발생률’이다. 학생 발생률, 즉 해당 지역에서 앞으로 입학생 수요가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는지를 평가한다. 전직 중투위원은 “인구 유입이 많은 경기도 신도시의 경우 도심 외곽에 소규모 신도시가 군데군데 생기면서 민원에 따라 학교를 곳곳에 지어준 적이 있다. 하지만 막상 개교하니 입학생이 4분의 1 수준에 그치는 곳이 많았을 뿐더러 학생이 꾸준히 유입된 곳은 드물었다”고 했다. 신설보다는 증축이나 인근 지역으로의 분산 배치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신도시가 확장되면서 인근의 다른 신도시와 경계가 모호해져 대규모 신도시가 예견될 경우, 적극적으로 학교 신설을 추진해야 한다는 학부모 의견도 무시할 수 없어 보인다. 앞서 사례로 든 광명 소하지구의 경우 지난 2015년 가리대, 설월리 일원의 개발제한구역(21만5514㎡)이 추가로 해제되면서 도시개발구역 77만6453㎡가 확장됐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1만4000여명의 인구가 더 유입돼, 애초 중소규모 신도시였던 소하지구(현 소하1‧2동 약 6만8000명)는 총 7만2000명에 달하는 대규모 도시로 탈바꿈한다. 소하1동의 경우 소하초(37학급), 구름산초(54학급)에서 총 91학급, 2911명이 재학 중인데, 이들이 배정될 소하중은 38학급 1145명으로 현재도 학생 과밀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광명시교육지원청은 소하2동까지 학군을 넓혔지만, 추가 개발로 인해 인구가 유입되면 과밀학급 문제가 재발할 수 있다는 게 일부 학부모의 주장이다. 


◇ 학령인구 감소 VS 전국 통계일 뿐 … 학생 발생률 놓고 ‘팽팽’ 


갈등의 평행선엔 통계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이 있다. 지난달 교육부가 발표한 ‘2017년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전국 중학생 수는 138만1334명으로 지난해보다 5.2%(7만6156명) 줄었다. 중학교는 3213곳으로 지난해보다 4곳이 더 늘었다. 중학생 수는 1980년 247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올해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6월 공개한 ‘장래인구 추계 시도편(2015~2045)’에는 저출산으로 인해 0~14세 유소년 인구가 2020년까지 전국적으로 46만명 감소(2015년 대비)하고, 이 중 수도권에서만 22만명이 줄어들 것이라 예측한다. 여기에 중등학령(12~14세)만 떼어놓고 보면, 2015년 158만명에서 2025년 140만명으로 점차 줄다가 2045년엔 117만명까지 내려간다. 전체 학령인구(6~21세)도 2015년 892만명에서 30년 후인 2045년엔 612만명으로, 31.4% 줄어들 것으로 추산한다. 


경기도의 한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학령인구 감소가 지금도 중등학령에 뚜렷이 나타나고 있고, 앞으로 30년간 감소세가 큰 폭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을 통계가 입증하고 있지만, 학부모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내년에 자녀를 중학교에 보내야 하는 학부모들은 5년, 10년 앞을 예견한 ‘전국 통계’ 때문에 신도시 내 부족한 중학교와 그에 따른 과밀학급, 원거리 통학 문제를 감내할 수만은 없다는 입장이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시흥 배곧신도시의 이민식(가명•34)씨는 “정부의 통계는 도시와 농촌, 구도심과 신도시 등의 변수를 포함하지 않는다”며 “주민들은 도시계획을 믿고 입주했는데 정작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학교를 지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으니 황당할 뿐”이라고 했다. 


학부모들의 주장과 요구는 간단하다. 분양과정에서 중학교가 신설될 거란 홍보를 믿고 입주했지만, 입주 후 계획된 중학교 부지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를 계획대로 지어달란 말이다. 반면 해당 지역 교육청은 교육부가 설립 승인을 하지 않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고, 학교 신설 인‧허가권을 쥔 교육부는 해당 지역에 향후 ‘학생 발생률’이 높지 않다는 점을 불승인 근거로 제시한다. 이에 학부모들은 “도시계획단계에서 교육 수요 예측에 실패했으니 교육청, 교육부, 건설사까지 학교 신설 방안을 책임 있는 자세로 재논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이처럼 신도시 내 중학교 신설 문제는 교육청과 교육부가 폭탄 돌리기 하듯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 애먼 학생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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