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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네 집 가지마”… 자녀 친구도 못 믿을 세상

‘어금니 아빠’ 사건 이후 자녀 주변인 ‘불신’ 분위기 ↑



“모르는 사람 조심하라고 가르쳤는데, 이젠 ‘친구는 물론 그 부모도 믿지 마라’고 교육해야 할 지경이네요.” (가명·이현민·서울 구로구)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일명 ‘어금니 아빠 사건’의 전말이 조금씩 밝혀지면서, 부모들 사이에선 낯선 사람뿐 아니라 아이 친구 혹은 그 가족까지도 믿지 못하는 ‘불신’이 팽배해지고 있다. 아이 주변의 모든 사람이 경계 대상이 된 셈이다. 


서울 중랑경찰서는 ‘어금니 아빠’로 알려진 이영학(35)씨가 여중생 딸의 친구인 김모(14)양을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13일 밝혔다. 경찰은 이날 이씨를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상 강제추행 살인과 형법상 추행유인·사체유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이 밝힌 이씨의 범행 동기는 바로 ‘성욕 해소 욕구’. 이씨는 지난달 30일 수면제를 먹고 잠든 피해자 김양을 상대로 성추행하다, 이튿날 그가 깨어나 저항하자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경찰은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이씨는 애초에 성적 욕구를 해소할 목적으로 초등학교 때 집에 자주 놀러 오던 김양을 지목, 딸과 함께 범행을 계획했다고 진술했다"며 “특히 딸에겐 지난달 초 아내가 투신해 죽은 뒤 “엄마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설득, 피해자를 집으로 유인하도록 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사건의 실체가 하나씩 벗겨지면서, 온 국민이 충격에 휩싸였다. 특히 자녀를 둔 부모들은 그야말로 ‘아연실색(啞然失色)’한 반응이다. 방송에 나와 희귀 난치병을 앓으면서 같은 병이 유전된 딸을 극진히 보살핀다던 이씨가 이처럼 딸 친구를 참혹하게 살해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충격적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피해자와 초등학교 때부터 집을 왕래하며 친하게 지냈던 이씨의 딸도 범행에 가담했다고 밝혀지면서 더욱 논란이 일고 있다. 주부 김연화(가명·서울 영등포구)씨는 “외부에선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귀병 딸을 돌보는 ‘천사표’ 아빠인 척하고, 뒤에선 피해 아이의 착한 마음을 이용해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다니 소름 돋는다”며 “딸만 둘을 둔 엄마로서 앞으로 아이들에게 세상에 누굴 믿으라고 가르쳐야 할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학부모들이 자주 찾는 인터넷 지역맘 커뮤니티에선 ‘희대의 사기꾼이자 딸 친구를 죽인 살인마’ 등 분노 섞인 게시글이 쏟아졌다. 


이 같은 분노는 점차 자녀의 친구와 그 부모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초등생 자녀를 둔 강윤희(가명·서울 서초구)씨는 이번 사건 이후 아이들에게 “낯선 사람은 물론, 학급 친구 집에도 혼자서 놀러 가지 말고 음식 등도 받아먹지 마라”고 당부했다. 강씨는 “모르는 사람도 아닌 친구 집 가는 것조차 안심할 수 없는 세상”이라며 “아직 어린 아이들이 이를 이해하긴 쉽지 않겠지만, 제 자식을 지키기 위해선 이런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한숨지었다. 또 다른 부모 역시 “사건 이후 방과후 아이와 부쩍 자주 연락을 하고 있다”며 “딸이든 아들이든 이젠 아이의 친구와 그 부모까지도 조사해봐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며 한탄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부모들의 반응에 대해선 충분히 공감하지만, 이를 너무 단정적이고 폐쇄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건 위험하다고 강조한다. 박순진 대구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처럼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행동에 제약을 두는 것은 오히려 사회 공동체의 신뢰를 더욱 허무는 일”이라고 말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부모들이 이번 사건을 통해 사회적인 두려움을 느꼈다고 해서 자녀의 주변 관계를 단절시키고 서로에게 마음의 울타리를 쌓는 일은 상당히 위험한 생각”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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