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생활기록부의 ‘독서활동사항’은 내신과 수능 공부로 바쁜 고교생들에게 다소 부담스러운 영역이다. 평균 200~300페이지 분량의 책을 한 권도 아니고 여러 권 읽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서활동사항을 절대 ‘빈 칸’으로 두어서는 안 된다. 왜일까. 

독서활동이 중요한 첫 번째 이유는 지원자의 ‘학업 역량’을 논리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학교생활기록부 지면상으로만 본다면 독서활동은 교과 관련 부분과 떨어져있다. 하지만 독서활동은 교과 내신 성적, 그리고 세부능력특기사항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세부능력특기사항에 “수학에 흥미가 크며 수학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함으로써 뛰어난 수학적 사고력을 갖고 있음”이라고 기재 되어 있는데 수학 관련 독서활동사항이 하나도 없다면? 입학사정관들이 신뢰감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 우수한 수학 교과 성적은 물론 수학 관련 독서활동까지 겸비하고 있다면 입학사정관들을 충분히 설득시킬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독서활동은 지원자의 ‘전공적합성’ 및 ‘진로 계획’을 드러내는 데도 효과적이다. 가령 심리학과 면접에서 ‘지원자의 향후 진로계획에 대해 이야기해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아동청소년병리학 관련 책에서 읽은 병리 현상을 설명하고, 아동청소년상담사가 된 뒤 이를 어떻게 해결한 것인지 이야기한다면 해당 책을 읽지 않은 경쟁자들보다 더욱 생생한 사례를 통해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독서활동을 시작하려니 어떤 책부터 읽어야하는지 막막한 것도 사실. 계열별로 어떤 책을 어떻게 읽는 것이 좋을지 살펴보자. 인문계열에 이어 이번에는 자연계열을 살펴본다. 

자연계열 학생들은 어디서부터 독서활동을 시작하면 좋을까. 고민된다면 수학 및 과학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이슈에서부터 시작해보자. 

환경 파괴는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부터 현재까지, 오랜 시간 동안 매우 중요하게 논의돼 온 이슈다. 특히 일부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더하다. 그만큼 자연계열 논술이나 면접에서도 자주 다루어지는 주제. 환경과 관련된 주제의 책을 한 권이라도 꼼꼼하게 읽어둔다면 독서활동은 물론 논술과 면접 대비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환경을 주제로 한 여러 책들 가운데서 특히 고교생들이 읽기 좋은 책이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이다. 

‘침묵의 봄’은 1950년대 당시 널리 쓰이던 살충제, ‘DDT’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책을 통해 DDT가 조류를 비롯한 많은 동물들을 죽이고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이 덕분에 현재 DDT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있으며, 인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를 깨닫게 됐다. 

특히 과학 또는 공학을 전공하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이라면 어떤 세부전공을 선택하든 환경 문제에 대한 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주는 이점 또한 분명하지만, 과학 기술에 의한 환경 파괴 또한 매우 심하기 때문이다. 즉, 모든 자연계열 학생들은 단순히 과학 기술의 발전에만 몰두해서는 안 되며, 기술 발전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환경 문제를 줄이고 해결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며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기술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분석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선 어떤 노력을 기울어야 하는지 고민해보는 것이 좋다.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레이첼 카슨이 되어 환경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해본다면 과학자 또는 공학자로서 아주 중요한 덕목 한 가지를 이미 갖춘 셈이다. 이는 면접 중 ‘전공과 관련된 인성영역 평가’에서 매우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 

자연계열 학생들에게 수학 및 과학 역량은 필수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인문학적 소양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대학에서는 자연계열 학생이라도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반대로 인문계열 학생이라도 수학·과학적 소양을 갖춘 학생들을 선호하는 추세. 내년부터 도입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아예 ‘문·이과 통합’ 교육을 실시할 정도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연계열 학생들은 이를 간과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상위권일수록 수학 및 과학 역량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아 경쟁자들과 차별화되는 포인트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 때 인문학적 소양을 드러내는 독서활동이 효과적인 차별화 전략이 될 수 있는 것. 그러나 자연계열 학생들에게 대뜸 ‘인문학 서적을 읽어라’고 하니 막막해하는 학생도 많다. 

이 때 가장 좋은 인문학 도입서가 역사책이다. 과학적·공학적 지식이 인류에게 유용한 과학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방법을 알려줄 수는 있지만, 어떤 것을 만들어야할지는 오직 인문학만이 알려줄 수 있다. 어떤 과학 기술이든 그것은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체 어떤 것이 인간을 위한 기술이냐는 것. 이 때 역사책을 뒤져보면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보다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특히 ‘거꾸로 읽는 세계사(유시민)’은 인류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역사적 사건과, 또한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왔던 역사적 사건들을 풍성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혁명이나 전쟁을 보면 때로는 인간을 위한 것이었고, 때로는 인간의 욕심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과학과 공학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이러한 고민을 통해 과학과 공학이 가져야 할 올바른 방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자연계열 학생들은 수학이나 과학처럼 ‘딱 떨어지는 정답’이 나오는 공부에 익숙하다. 하지만 역사엔 정답이 없다. 우리가 아는 역사도 절대적 진리가 아닌, 다양한 시각에 의해 해석된 결과물일 뿐이다. 이 책을 통해 역사가 어떻게 해석됐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인문학적 소양에서 요구하는 복합적 사고 능력, 다각적 해석 능력 또한 기를 수 있다. 역사를 암기 과목으로 인식하지 않고 자신의 해석과 상상력을 더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능력은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요구하는 창의적 인재상과도 부합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렇다면 독서활동을 통해 전공적합성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자연계열 학생들의 영원한 로망, ‘의학계열’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 

의학계열로의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이 갖추어야 할 역량은 학문적 지식만이 아니다. 의사는 ‘사람’을 치료하고 살리는 직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만큼 인성도 중요하다. 실제로 대학들도 의학계열 학생들을 선발할 때는 학업 능력 못지않게 지원자의 인성을 중요하게 평가한다. 따라서 의사를 꿈꾸는 학생들이라면 의사로서 갖추어야 할 인성, 특히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이 때 책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켄 키지)’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책의 배경은 ‘정신병원’이며 등장인물은 환자와 수간호사다. 수간호사들은 병원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환자를 강압적으로 관리하며,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는다. 그들의 주장은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는 환자를 단순히 치료만 하면 되는 것일까? 의사에게 환자는 어떤 의미인가? 이 책을 읽으며 의사로서 가질 수 있는 의문에 대해 하나씩 정리해보자. 이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답변을 만들어가다 보면 단순히 ‘성적이 높아서’가 아닌, 자신이 의사를 꿈꾸는 이유에 대해서도 보다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에듀동아 김지연 기자 jiyeon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