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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SW교육, ‘한국적’ 코딩교육으로 한계 드러내나

창의성 교육 한다면서, 일방주의 코딩 교육이 웬 말?



SW교육에 드리운 편의주의의 그림자 
내년부터 실시되는 중·고등학교 코딩 교육이 지나치게 교사의 편의성만을 추구해, 정작 교육적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학생들의 창의성과 컴퓨팅적 사고 능력, 논리력 등을 키우기 위해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미래형 교육과정인 소프트웨어(SW)교육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2018학년도부터 중·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SW교육을 시작해, 다음해인 2019학년도에는 초등학교 5,6학년에게 SW교육을 시작한다. 

SW교육의 일환으로 준비한 것이 컴퓨터의 언어를 다루는 법을 배우는 코딩 교육이다. ‘알파고 시대’를 대비해야 하는 지금, 창의성과 사고력, 논리력, 융합적 사고 능력 등의 인지 능력과 소통과 협동 등의 비인지 능력을 함께 키울 수 있는 코딩 교육이 시의 적절하게 도입됐다는 평가다. 

그런데 내년에 사용하게 될 중학교 소프트웨어 교과서 15종 가운데 14종이 ‘엔트리(Entry)’ 프로그램을 활용해 코딩 부분을 기술했고, 단 1종만이 ‘스크래치(Scratch)’ 프로그램을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일선 학교 대부분이 스크래치가 아닌 엔트리 프로그램으로 코딩 교육을 시작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엔트리가 스크래치보다 교육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엔트리가 점령한 코딩 교육, 첫발부터 ‘삐걱’ 
엔트리와 스크래치는 모두 프로그램을 만드는 코딩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제작된 도구 프로그램이다.

스크래치는 MIT에서 개발한 코딩 교육 도구로, 게임을 통해 프로그래밍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학생들이 명령어가 적힌 블록을 원하는 대로 쌓고 옮기면서 소리와 애니메이션 등을 활용해 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 

네이버 자회사인 엔트리연구소에서 제작한 엔트리(Entry)는 스크래치와 마찬가지로 블록형 코딩 방식을 따른다. 기본 언어로 한국어를 사용하고 명령어도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쉬운 언어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해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스크래치와 엔트리 프로그램을 모두 교육에 적용해 봤다는 명문소프트웨어학원 최지안 강사는 “엔트리가 스크래치에 비해 복잡한 표현이 안 되는 부분이 있고 메뉴도 약간 다르다”고 말했다. 

최 강사는 학생들이 코딩 교육을 통해 창의성과 컴퓨팅적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려면 다양한 방향으로 사고를 넓혀 자기 나름대로의 문제해결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이런 면에서 보면 스크래치가 적합하다고 밝혔다. 학생 스스로 생각하고 창의력을 발휘해아 하는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엔트리는 편의성이 강조돼 프로그램을 익히기는 쉽지만, 정작 창의성이나 컴퓨팅적 사고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소프트웨어 교과서 15종 가운데 14종에 엔트리가 활용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엔트리는 담당 교사가 시간을 들여 코딩 교수법을 연구하지 않아도 될 만큼 교안을 완벽하게 제작해 교사에게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SW교육이 학생의 창의성과 논리력을 키워준다는 애초의 취지는 약해지고, 교사의 편의가 프로그램 선택의 최우선 조건이 되는 것은 큰 문제다. 

물론 이렇게 된 데는 당장 내년부터 SW교육이 시작되는데도 일선 학교의 SW교육 기반이 제대로 조성되지 않았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존재한다. SW교육 전문 교사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반 교사라도 쉽게 가르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엔트리에 비해 스크래치가 창의성과 컴퓨팅적 사고력을 기르는 데 효과가 더 뛰어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실제 교실에서는 엔트리를 사용하는 모순된 상황이 발생한다. 

스크래치와 엔트리, 무엇을 택해야 하나 
스크래치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코딩 교육 프로그램이다. 세계 각국의 학생들이 만든 결과물을 온라인상에 저장해서 언제 어디서든 공유할 수 있고, 공유한 결과물은 누구든지 수정하거나 바꾸거나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스크래치를 통해 만든 게임 중에는 상용화돼 있는 것보다 더 재미있게 만들어진 것도 있다. 학생들이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재창조하는 것이다. 

스크래치의 단점은 참고할 만한 책이 다양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본 입문서는 있지만, 응용·활용하는 방법을 알기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해 놓은 책은 거의 없다. 정답이 정해진 책으로 공부하면 창의력과 사고능력을 키울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신 전 세계 학생들이 스크래치를 이용해 만들어서 올려둔 방대한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자기 나름대로 변형해서 새롭게 만들어 보는, 살아있는 학습을 권한다. 교사들이 스크래치를 기피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가 크다. 

엔트리는 특별히 머리를 쓸 필요 없이 엔트리의 설정대로 따라가면 문제가 다 해결된다. 캐릭터가 귀엽고, 미리 저장된 기본 툴을 활용해 만들기가 쉽다. 매뉴얼이 친절하게 구성돼 있어 따라 하기만 해도 금방 배운다. 무료 동영상 수업을 통해 혼자서도 배울 수 있고 참고할 만한 책이 많다. 

하지만 그런 만큼 학생들이 창의성이나 사고력, 논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도 적다. 스크래치를 배운 학생은 엔트리를 금방 익히지만, 엔트리를 배운 학생은 스크래치를 배우는 데 시간과 노력이 더 든다. 또한 엔트리는 이제 막 시작한 단계라 스크래치에 비해 공유 프로그램이 적고 사용자도 사실상 아시아권에 한정돼 있어, 전 세계 학생들과의 교류가 활발하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다.

만약 환경을 살리는 방법을 주제로 프로그램 제작 과제가 던져진다면, 엔트리 이용자는 엔트리가 이미 구현해 둔 프로그램 툴을 가져다 그대로 쓰면 되지만, 스크래치 이용자는 프로그램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결과물만 놓고 보면 엔트리 이용자의 것이 훨씬 그럴 듯해 보이고, 스크래치 이용자의 것은 어설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결과물 중 어느 쪽에 창의성과 사고능력이 발휘됐는가를 따지면 스크래치 쪽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창의성과 컴퓨팅적 사고력 키워주는 진짜 SW교육이 필요하다 
우리가 SW교육을 하는 이유를 떠올려 보면, 이미 만들어져 있는 설정을 단순하게 변형시키는 학습보다는 자신만의 창의성을 발휘해 새롭게 만들어 가는 과정 자체를 경험하는 것이 더 교육적인 것임임은 자명하다. 결국 엔트리 프로그램을 이용한다고 해서 컴퓨팅적 사고력을 전혀 키울 수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스크래치보다 효과가 적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다.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의 성급한 성과주의가 창의성과 사고력을 키우는 데 필요한 SW교육에까지 그 영향을 뻗치고 있다는 점은 대단히 우려할 만한 일이다. 과정 지향의 교육이 아닌 결과 지향 교육은 필연적으로 창의성과 사고능력을 빼앗고, SW교육을 단순 암기형 반복학습과 성적 중심주의로 퇴행시킬 공산이 크다. 

21년 동안 SW교육학원을 운영해온 한국창의과학진흥협회 권상조 이사는 “코딩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는 스크래치나 엔트리 모두 유용하다. 하지만 컴퓨터 언어 교육 면에서 볼 때, 엔트리 중심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만년 2등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스크래치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서양 문화권에서 주로 사용되는 반면, 집단과 규범을 중시하는 동양문화권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것을 봐도 차이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개인보다 집단이 우선시되는 문화에서는 개인이 창의력을 발휘하기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권 이사는 “코딩을 어렵게 느끼는 학생들에게 블록형 언어 프로그램인 스크래치나 엔트리 교육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고교 1, 2학년이 되면 스크래치나 엔트리를 벗어나 파이선이나 C언어 등 본격적인 컴퓨터 언어를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좀 어렵더라도 체계적이고 깊이 있게 컴퓨터 언어를 배울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SW교육이 초중등 교육을 끝으로 단절되지 않고 대학과 사회에서도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추세대로 간다면 대다수의 중학교가 엔트리 활용 교과서를 채택해 SW교육을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15종 교과서 가운데 14종이 엔트리 활용 책이고 가르치기도 편하니, 구태여 스크래치 활용 교과서를 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SW교육의 취지를 명확히 이해하고 교육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학교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국민 중 많은 수가 초중고교에서 6년 이상 영어를 배우고도 주입식·암기식 문제풀이 일변도로 공부해 외국인과 제대로 된 영어 대화 몇 마디를 못하는 것은 우리 교육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 내년부터 새로 시작될 SW교육마저 이와 같은 전철을 밟아갈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창의성과 컴퓨팅적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 이제라도 제대로 점검해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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