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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

고교학점제 도입, 순서가 한참 틀렸다

내신성취평가, 수능 절대평가, 외고·자사고 폐지 위한 정부의 큰 그림?



정부가 2022학년도부터 고교학점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한 이후, 교육계에서는 이에 대한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필수교과를 최소화 하고 학생의 교과 선택권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제도 자체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하지만 고교학점제 도입이 고교 교육, 더 나아가 대입 제도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 이루어진다면 혼란만 야기될 뿐이라는 지적이 많다. 

고교학점제는 단순히 교과가 많아지고 학생들이 원하는 교과를 선택해 듣는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고교 내신 성취평가제, 외고·자사고 폐지 문제, 수능 절대평가 등 교육 문제 전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해 이수하고, 누적학점이 기준에 도달할 경우 졸업을 인정받는 제도다. 교육과정에서 규정한 필수 이수 단위를 제외한 범위 내에서 과목을 선택해 수강하는 방식이다. 진로맞춤형 교육을 추진하겠다는 현 정부의 대표적인 교육 공약 중 하나다. 

교육부 또한 고교학점제가 학사제도 전반의 변화가 필요한 제도이며,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고 있다. 

교육부는 “2022년 도입을 목표로 제도 개선과 인프라 확충을 추진할 예정이며, 제도가 안정적으로 고교 현장에 뿌리 내릴 수 있도록 학점제형 학사제도를 완전히 적용하기보다는 교육과정 다양화 등에 중점을 두고 적용 가능한 요소부터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수능이 여전히 공고한 힘을 발휘하고 있고 고교 내신이 현재와 같이 상대평가로 산정된다면, 학생들은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하게 자신의 진로와 적성보다 대입 비중이 큰 교과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 실효성에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도 교과 수업 인원이 13명 이상 되지 않으면 성적을 받을 수 없어, 학생들은 듣고 싶은 수업 대신 수능 비중이 커서 학생들이 많이 몰리는 교과를 선택하는 상황이다. 

고교 내신성취평가제, 외고·자사고 폐지가 먼저다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필수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 교육과정이다. 교육부는 “학점제 취지와 운영 방식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교육과정을 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가 도입돼 다양한 교과가 개설되면 예컨대 외고의 ‘심화 영어 회화·작문’ 국제고의 ‘국제 관계와 국제기구’ 자사고의 ‘사회문제 탐구’ 교과를 일반고에서도 개설할 수 있어, 일반고의 역량 강화와 함께 현재의 고교 서열화 문제도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거기다 지난 11월 2일 교육부는 외고와 자사고, 국제고의 우선선발권을 이르면 내년부터 폐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 학교의 우선선발 제도가 고교 입시 경쟁과 과도한 사교육을 부추겨왔다는 지적이 계속되자,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올해 말까지 개정해 특목고와 자사고가 일반고와 동시에 입시를 실시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학생들이 고교를 선택할 때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은 고교학점제나 교육과정이 아닌 고교 내신제도다. 고교 내신이 현행과 같은 9등급 상대평가제로 산정되면 외고와 자사고 학생들은 내신에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학업 성취도가 높은 학생들 사이에서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등수로 성적을 내는 상대평가제는 이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외고와 자사고는 교육 인프라가 좋고 면학 분위기가 잘 조성돼 있는데다 학생부종합전형이 강화되면서 이에 따른 대비를 잘하는 학교도 많다. 따라서 상위권 성적대 학생들은 내신의 불리함을 감수하고 외고와 자사고에 진학하는 경향이 컸다. 

그런데 내신성취평가제가 도입되면 성취도 90% 이상일 경우 모두 A등급을 받기 때문에 외고와 자사고 학생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던 내신의 굴레가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외고·자사고에 대한 상위권 학생들의 선호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가 공약대로 외고·자사고 폐지를 밀어붙이지 않고 시장 상황에 맡겨둔다면 외고·자사고 폐지는 요원한 일이 된다.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내신 성취평가제 동시 도입해야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 도입 문제도 고교학점제와 무관하지 않다.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는 사교육비를 줄이고 학생의 학습 부담을 경감시키는 제도로 인정받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지난 8월 교육부의 ‘수능 절대평가 전환 정책’에 대해 1,004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찬성이 51%, 반대가 28%로 찬성 비율이 두 배 높았다. 특히 이 제도의 직접적 적용 당사자들인 초·중·고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경우, 찬성 57%, 반대 32%로 찬성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교육부의 ‘일부 과목 절대평가안’과 ‘전과목 절대평가안’에 대해 1안의 찬성률은 35%, 2안은 45%로, 국민들은 2안인 전과목 절대평가안을 더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직접 당사자인 중학생 학부모는 1안에 대해 단 27%만이 찬성한 반면, 2안은 45%가 찬성했다. 1안과 2안 중 사교육 및 학생의 학습 부담을 경감시키는 데 적합한 안이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는 1안은 25%, 2안은 43%가 선택했다. 

그런데 만약 수능이 전과목 절대평가로 가면 대학들이 정시모집을 축소하고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이나 교과전형 위주로 대입 요강을 정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내신의 중요도는 지금보다 훨씬 커지게 된다. 그런데도 여전히 내신상대평가를 유지한다면 고교학점제는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내신 점수를 잘 받기 위해 학생들은 수강생이 많이 몰리는 교과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학생들은 내신을 잘 받기 위해 지금보다 훨씬 치열한 내신 경쟁에 내몰린다. 이는 진로맞춤형 교육과 고교 교육 정상화를 목표로 한 정부의 제도 도입 취지와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결국 고교학점제와 고교 내신성취평가제,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 외고·자사고 폐지 문제 등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어 함께 풀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들이다. 교육계에서 고교학점제와 내신 성취평가제 실시 발표에 앞서 시행령 개정을 통한 외고, 자사고 폐지 발표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교총 “대입에 유리한 교과 위주로 쏠릴 우려”
고교학점제에 대한 우려는 교육현장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이 지난 6월 전국 초·중·고 교원 2,07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모바일 조사 결과를 보자. 응답자의 47.4%가 고교학점제 도입에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고, 부정적으로 생각한 이유로 ‘대입에 유리한 교과목 위주로 쏠릴 우려가 있어서’가 43.2%로 가장 많았다. 

교총은 “고교학점제가 학생이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반영해 원하는 교과목을 수강하고 학습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제도라고 생각한다”고 하면서도 “고교학점제가 시행되기 위해서는 교육여건 조성과 내신평가, 대입제도, 도농격차 등 사전에 조성되고 해결되어야 할 과제들이 너무 많은 만큼, 철저한 준비와 함께 제도 변경에 따른 학생들과 교사, 학교의 혼란이 없도록 꼼꼼하게 점진적으로 추진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들은 “평가체제 및 대입제도의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아무리 다양한 과목이 개설돼 있어도 내신 성적을 받는 데 불리하거나 대입에 반영되지 않으면 특정과목에 쏠리거나 꺼려할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대학 진학이 학생들에게 가장 큰 과제임을 고려하면 내신평가체제와 대입제도의 개선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들은 “고교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종합적 방안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밝혔다. 교총은 교육부가 고교학점제를 체택한 미국, 핀란등 등 해외 사례를 언급했는데, 그 나라들은 학점을 채우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졸업시험과 졸업 자격기준 등을 강화해 학습의 질을 전반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교육부의 발표에서는 이에 대한 사항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교총은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해서 학습의 질이 높아지는 것이 아닌 만큼, 미이수·재이수·졸업제도 등 고교 학습의 질을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종합적으로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다. 

전교조 “수능 중심 고교 교육부터 손봐야” 
한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고교학점제 도입에 대해 교총보다 더욱 강경한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교조는 고교학점제가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므로, 합의도 없이 전면 도입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교조는 고교학점제를 도입할 경우 ▲학교와 교사에게 과목 개설권의 자유를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지 ▲학년별 교육과정을 폐지해 사실상 학년제가 폐지되는 것인지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위해 학급이 사실상 해체되는 것인지 ▲다른 학교와 사회기관에서는 학점 이수가 가능한지 ▲낙제 제도를 도입하는지 ▲내신평가는 절대평가-교사별 평가를 하는 것인지 ▲그럴 경우 현재 대입제도와 어떻게 조응할 수 있는지 ▲일반학교에도 직업과목이 개설되는지 등 많은 문제들이 제기되는데, 이에 대해 교육 관계자간의 합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한 “교육부가 내년부터 고교학점제 연구학교를 운영한다고 하는데, 연구학교는 사실상 2015 교육과정 내에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며 “고교학점제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실제로는 과목 선택권을 약간 확대하는 수준에 불과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교조는 “현재 한국의 고교 교육에서 가장 큰 문제는 수능 중심의 대입 경쟁이 고등학교 교육을 지배하면서, 수능에서 비중이 높은 영어와 수학에 대해 과도한 몰입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보편적 지성 발달과 가치관 형성에 있어 결정적인 시기인 10대 후반에 한국의 학생들은 영어와 수학 공부에 모든 에너지를 소모한다. 반면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 등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극히 협소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히 2015 교육과정에서는 교과군 별 필수 이수 단위가 매우 낮기 때문에 학습 편식 현상이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꼬집으며 “보다 시급한 문제는 국·영·수 중심의 입시 중심 교육을 바꾸는 것이며, 현 체재 하에서는 수능 중심 과목의 학습 편식을 가중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어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교학점제, 정부 ‘교육 개혁’ 큰 그림의 일부일까 
결국 고교학점제는 고교 내신성취평가제와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제 도입, 외고·자사고 폐지, 학생부종합전형 보완 등과 동시에 추진돼야 할 제도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나마 만만한 고교학점제 도입을 우선적으로 명시하고, 교육 기득권자들과 사교육 단체 등의 반발이 예상되는 고교 내신성취평가제와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제 도입, 외고·자사고 폐지 문제는 결정을 가능한 한 뒤로 미루고 있어, 눈치 보기 행정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교학점제 도입이 줏대 없이 갈팡질팡하는 정부의 민낯을 보여주는 방증이 될지, 아니면 사교육비와 학생의 학업 부담을 완화하고 더 나아가 입시 중심의 고교 교육을 제 자리로 돌리는 교육 개혁을 위한 정부의 큰 그림 중 일부가 될지는 정부의 다음 행보에 의해 결정된다. 

정부는 고교학점제 도입 카드를 가장 먼저 꺼내 들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고교 내신성취평가제와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제 도입, 외고·자사고 폐지 카드를 언제 어떻게 꺼내들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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