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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초등

'방과후 영어 프로그램 금지?' 언론이 거짓말하고 있다

유치원·어린이집에서 영어 가르치면 불법이라고?



교육부가 지난 12월 27일 유치원·어린이집의 방과후 영어수업 개선 방안을 담은 ‘유아교육 혁신방안’을 발표하자, 이를 두고 찬반 여론이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다. 

한쪽에서는 유치원 방과후 프로그램에서 이루어지는 무분별한 영어 프로그램 교육이 아동기 인지발달 단계에서 부작용을 미칠 우려가 크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당장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영어수업을 금지하면 풍선효과로 인해 사교육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작 교육부의 발표는 방과후 영어수업을 전면 금지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방과후 과정을 유아·놀이 위주의 교육과정으로 개편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일부 언론과 이익단체들이 교육부의 개선 방안을 왜곡하면서,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커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동안 유치원·어린이집의 방과후 영어수업이 영·유아 발달에 맞지 않는 과도한 선행교육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런 상황에서 영·유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서로 다른 주장 사이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데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우선은 영·유아기의 과도한 영어학습 때문에 영어에 흥미를 잃는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유치원·어린이집의 방과후 영어학습이 금지되면 남들은 다 아이를 영어학원에 보낼 텐데, 우리 아이만 뒤떨어지게 할 수 없으니 결국은 비싼 영어학원을 따로 보낼 수밖에 없어 학원비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한다. 

그런데 학부모들이 간과되는 것이 하나 있다. 유치원·어린이집의 방과후 영어수업 방향은 영유아기 자녀의 성장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어학원비 이중부담을 말하기 전에 어떤 교육방식이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에 도움이 되는가를 우선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일방적 강의수업, 영유아에게 효과 없다 
많은 전문가들은 영어교육의 적기를 취학 전 영유아가 아니라 초등입학 이후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의 연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5년 육아정책연구소는 만5세, 초등3학년, 대학생 등 세 그룹을 대상으로 중국어 학습을 시키고, 연령집단에 따라 듣기, 말하기, 읽기 능력을 비교했다. 

그 결과 듣기 영역은 연령에 따라 차이를 거의 보이지 않았고, 말하기 영역은 만 5세 유아보다 초등학교 3학년 아동과 대학생에게 더 큰 효과가 나타났다. 읽기 영역은 대학생의 수업 효과가 가장 컸다. 결국 외국어 학습은 취학 전 유아에게 큰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결과였다. 

이와 관련해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2014년 유은혜 국회의원과 함께 전국 유치원·초등 교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현장의 교사와 교육전문가들 도한 영어 적기교육의 연령을 초등학교 입학 이후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 1학년 담임교사 중 75%, 유치원 원장·교사 중 59.2%가 취학 전 조기 영어교육에 반대한다고 밝힌 것이다.

교사집단의 조기영어교육 찬반 의견

*표 제공=사교육걱정없는세상

또한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운영되는 방과후 영어수업이 기관 내에서 유아교육 관련 자격을 가진 교사가 아닌 민간 교육업체에서 파견된 강사에 의해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전문적인 유아교육 지식이 없는 이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유아교육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교수-학습 원리가 무시한 채 일방적 강의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거기다 검증되지 않은 프로그램을 마구잡이로 운영하는 일이 많은 것도 문제다. 이병민 교수(서울대 영어교육학과)는 현재 어린이집의 특별활동 영어교육이 유아과정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특별활동 프로그램이 과연 초등학교 학생을 위한 것인지 중고등학생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으며, 아이들에게 이런 내용을 제시한다고 해서 그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영어학습 프로그램 관련 총체적 부실도 도마에
현재 영유아 대상의 보육 내용은 ‘표준보육과정’에, 교육 내용은 ‘누리과정’에 규정돼 있다. 영유아 발달 특성을 고려해 분리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 유치원·어린이집·방과후 특별활동은 프로그램 내용이나 교재, 교구, 강사에 대한 기준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사교육걱정이 2014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아이사랑보육포털에 공시된 서울시 어린이집 특별활동 업체 중 영어 관련 업체만 71곳 이상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많은 업체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영어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규모나 교육 형태 등은 거의 드러난 바가 없다. 또한 방과후 특별활동 업체와 일선 유치원·어린이집 사이의 리베이트 문제는 이미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어 학부모와 영유아의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업체에서 영유아 발달에 적합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급하고, 관련 지식이 없는 강사를 채용해 아이들을 가르칠 가능성이 큰데도 무리하게 방과후 영어수업을 지속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란 것이 교육계 전반의 시각이다.

영어 선행학습 부추기는 결과 낳을 수도
유치원·어린이집의 방과후 영어학습이 선행학습을 부추긴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영어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국가교육과정에 포함된다. 따라서 선행교육규제법에 의해 초등 1~2학년 방과후 교실에서는 영어 학습이 금지돼 왔다. 

하지만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영어수업을 허용하면 유아시기에 배운 영어 성취도를 유지하기 위해 초등 저학년 때도 사교육을 지속해야 하는 결과를 만들 우려가 있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과도한 학습량을 지우고 결국에는 학습의 즐거움마저 빼앗는 선행학습을 뿌리 뽑기 위해서라도 영어 선행학습을 부추기는 유치원·어린이집의 방과후 영어학습은 지양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강의식 영어수업 엄격 규제와 놀이체험식 영어활동 확산 함께 이뤄져야 
교육부는 앞선 발표에서 유치원·어린이집의 방과후 영어학습을 인지학습 위주가 아닌 체험과 놀이 위주의 유아 주도 교육과정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의 발표대로 교육과정이 운영된다면 아이들이 학습이라는 부담 없이 방과후 프로그램을 통해 영어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남아 있다. 유치원·어린이집의 방과후 영어 프로그램에 대한 관리와 감독이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영어에 대한 놀이 체험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운영하려면 상당한 품과 기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당국이 이에 대한 관리와 감독을 소홀히 한다면 영어 놀이 체험은 흐지부지되고 다시 예전의 강의식 영어수업으로 되돌아갈 우려가 크다. 

또한 영어학원 등 사교육업체에서 영유아 대상 영어 선행학습이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공교육기관인 학교와 유치원·어린이집에서만 영어학습을 규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많다.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은 고가의 영어학원을 다니며 놀이와 체험을 통해 영어와 친해진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가정 아이들은 사실상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만 놀이와 체험을 통해 영어를 제대로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유치원·어린이집의 방과후 영어교육을 규제 일변도로 제어하고 필요한 지원을 해주지 않으면,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프로그램을 미흡하게 운영할 경우 바람직한 영어활동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교육 불평등이 야기된다는 것이다. 

방과후 영어 프로그램, '영어수업'이 아닌 '영어활동'이 돼야
결국 칼자루는 당국이 쥐고 있다. 영유아기 아이들이 영어를 학습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놀이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려면 유아 발달단계에 부적합한 강의식 영어 선행학습을 막고 놀이식 체험 프로그램 위주로 방과후 영어활동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국이 유치원·어린이집의 방과후 과정에서 수직적 강의 형태의 영어학습이 일어나지 않도록 엄격히 규제하는 한편, 놀이 체험식 영어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개발하고 교수법을 일선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적극적으로 전파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방과후 프로그램 업체에 대한 엄격한 관리 감독도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더불어 이 과정을 초등 1~2학년 방과후활동에까지 확산해, 초 1~2 학부모들이 무리하게 영어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도록 하고 아이들이 재미있고 흥미롭게 영어를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교육계 다수의 시각이다. 

교육부가 유아교육의 철학을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학부모들의 영어 학습에 대한 욕구와 아이들의 교육 평등권을 보장해 주고, 한편으로 과도한 학습 부담에서 아이들을 해방시켜 주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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